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27일 사퇴의 변을 밝혔습니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다양한 비리와 잘못된 관행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런 적폐들이 시정되어서…."
 
다음날, 대학교수인 한 후배가 식사 도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명백한 '관재(官災·관청에서 비롯된 재앙)'입니다. 하지만 이 참사의 교훈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 거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행정은 곧 공정(公正·공평하고 올바름)인데, 우리 사회에 공정이 뿌리내리려면 많은 세월이 지나야 할 겁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 거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행정은 곧 공정'이란 자조 섞인 말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김해에서 일어난 일들로서,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할 불미스러운 것들이 몇 가지 떠올랐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김해는 그럴 듯한 외양에 비해 상당히 위태로워 보입니다. 무엇보다 김해시 공무원들의 청렴도가 만년 하위권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김해시는 매년 정책을 수립해 1조 원 대의 예산을 집행하고, 각종 인허가 및 관리·감독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여러모로 허약하고 부조리가 많아 보입니다.
 
김해시보건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난해에 김해시보건소 공무원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습니다. 병의원, 약국, 식당 같은 직무 관련 업소들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역 의료계에서는 '사람을 새로 관리해야 하게 됐다'며 아쉬워한다는 후문이 있었습니다. 관과 업소의 유착 관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직원이 편의를 봐준 J병원은 의료기기업체 직원과 간호조무사가 의사를 대신해 무릎·척추·맹장수술을 해오다 문을 닫는 엽기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3월에는 '알루미늄 수돗물 사건'이 터졌습니다. 산업의학계에서 '알루미늄의 독성은 사람의 뼈와 뇌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직접적인 관련이 상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도, 김해시는 한동안 이 물을 몰래 시민들에게 공급했습니다. 발각된 뒤의 태도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김해시는 자료 유출의 당사자로 특정인들을 의심하거나 추궁했고, 한 직원은 억울하다며 경찰에 진정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시는 해당 정수장의 직원들을 대거 인사조치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을 잘 아는 내부자들의 또 다른 고발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내부 경고 무시, 사태 덮기 급급, 안전하다는 거짓말. 어디선가 많이 듣고 보아 오던 것들이었습니다.
 
'카드깡 사태'는 김해시 공무원들의 후안무치와 의식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김맹곤 시장은 수사 중인 창원지검을 찾아가 '관행' 운운하며 선처를 요구했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세월호 참사'가 전남 진도 바다에서 발생한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됩니다. 더 이상 공무원들의 자정을 기대하지 말고 민간이 참여하는 감사시스템 구축, 내부고발 활성화 등의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누가 김해시장이 되든 '행정=공정'이란 등식을 증명해 보이도록 강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가까운 장래에 누군가가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다양한 비리와 잘못된 관행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적폐들이 다 시정되었고…."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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