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농성밖에 없네요."
 
경남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푸념이 아니다. 전남 진도에서 생때 같은 자식들을 잃고 정부의 무책임에 몸서리치는 안산 학부모들의 애끓는 하소연도 아니다. 우리 김해의 시골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내뱉는 고통의 신음이다.
 
생림면 봉림리 산성마을 어르신들은 최근들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14일에는 봉림산업단지 시행자인 D화학 입구에서 농성을 했다. 18일에도 같은 자리에서 농성을 했다. 경남도 등이 봉림산단 허가 절차 진행을 위해 현장 답사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농성장에서는 깊게 패인 어르신들의 얼굴 주름 사이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르신들의 지친 어깨 너머로는 '난개발로 생림면민 다 죽는다'는 현수막만 무심히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지난 1년 동안 봉림산단 반대 운동을 벌여왔다. 김해시청과 경남도청에서 연이어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어르신 등이 업무방해혐의로 D화학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해시민, 언론 누구 하나도 그들의 말을 상세히 들어주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사태에는 지면을 한껏 할애하던 자칭 '진보언론'들도 봉림리 어르신들의 호소에 대해서는 입과 귀를 닫아 버렸다.
 
농성 현장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70세가 넘는 어르신들이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힘들게 농성을 벌이고 있었지만, 취재를 한 언론은 <김해뉴스> 하나뿐이었다. 격려차 찾은 시민들도 전혀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기도회에서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지난 24일에는 낙동강유역환경청 직원들이 환경영향평가 조사를 위해 봉림리를 찾았다. 어르신들은 젊은 직원들의 손을 잡고 애걸하다시피 하며 "제발 산업단지를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는 권한이 없다"는 말만 하고 휑하니 돌아가 버렸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우리 소관이 아니다"란 말만 반복한 공무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돈을 달라는 것도, 땅을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 집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살게 해달라는 거예요. 힘이 없으니 버티기가 힘드네요. 없는 사람 주머니 긁어 권력이나 돈 있는 사람과 야합하는 게 김해시 행정의 현주소인가요?" 마을 어르신들의 애절한 목소리는, 그러나 듣는 사람 하나 없이 무척산에 부딪혀 되돌아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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