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시인 이상(1910~1937)의 시 '이런 시'의 한 구절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게 바치는 절절한 고백이다.

디자이너 오경아·캘리그래퍼 강병인
정원 주제 올 여름 첫 번째 전시회
조각·회화·도자·목조·섬유 작가 6명
다양한 재현과 서로 다른 변주 선보여

 

▲ 큐빅하우스 밑에 설치된 '한글정원'전의 일부.
이 구절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큐빅하우스 아래 야외전시회 '한글 정원-마음을 읽는 정원'전을 위해 설치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클레이아크 입구에서부터 땀 흘리며 야외전시장까지 올라온 관람객들 중에는 저 시 구절에서 문득 옛 사랑을 떠올리며 가슴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클레이아크에서는 '주제가 있는 정원'을 매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여름에 그 첫 번째 전시로 '한글 정원-마음을 읽는 정원'전을 선보인다. 지난 5월 24일 시작해 오는 11월 2일까지 계속된다. 이 야외전시회는 정원 조성 계획을 맡은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와,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는 캘리그래퍼 강병인 씨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회는 이상의 '이런 시' 그리고 김소월(1902~1934)의 '진달래꽃' '초혼' '엄마야 누나야' '눈' '산유화' '둥근 해' 등 6편의 시에서 멋진 구절을 뽑아내 꾸민 것이다. 강병인의 멋스러운 글씨로 다시 읽는 시들은 긴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원본 시를 다시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벤치 두 개를 감싼 작은 집, 작은 꽃나무들이 야외전시장을 수놓고 있다.
 
야외전시장을 둘러본 뒤 큐빅하우스로 들어서면 올해의 특별전 '어울림-Mixed up With(믹스드 업 위드)'전을 만나게 된다. 오는 6월 5일부터 10월 5일까지. 조각, 회화, 도자, 목조, 섬유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6명의 작가들이 참가한다. '어울림'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재현이나 서로 다른 변주를 선보이는 전시회이다.
 
한장원은 목공예를 기반으로 작업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폐목재들을 이용한 작업 'Holy space(홀리 스페이스. 성스러운 공간)'를 선보인다. 그는 수명이 다해 버려진 폐목재들을 수거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다. 폐목재를 다시 가공한 것은 새 원목 같다. 폐목재 그대로 사용한 작품에서는 바람과 벌레들의 흔적, 그리고 독특한 상처들이 보인다. 그 흔적들은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숱한 상처를 입고 그 상처까지 간직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떠올려준다.
 
양상근의 작품 '존재의 사유'는 예술가의 고뇌를 자연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검고, 붉고, 하얀 자갈들이 공중에서 하나의 구(求)를 이룬다. 구의 주위에는 손안에 잡힐 정도 크기의 돌멩이들이 수없이 달려있고, 바닥에는 묵직한 바윗돌이 놓여졌다. 모두 도자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무심하게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도 의미 있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 변대용의 '메두사' 시리즈는 외로움과 소통의 부재를 표현하고 있다. 김병찬 기자

변대용의 작품 '장님과 메두사'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를 모티브로 한다. 이 작품에서 메두사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차라리 슬픈 느낌을 준다. 잘린 머리카락과 공허한 눈, 슬픈 표정의 메두사이다. 누구도 가까이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과 소통의 부재를 표현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메두사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꼭꼭 숨겨놓은 짙은 외로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김정아의 작품 '파티'는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다. 화려한 색채와 구성이 돋보이는 환상 속의 세계이다. 이 환상의 세계는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작가가 그 괴리감과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보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송계영의 작품 '식물세포공장', '동물 만들기', '키메라' '복제' 등은 곱게 짠 화려하고 큰 레이스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작품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람 인체의 일부분이 뒤섞인 인공적인 생명체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자연의 인위적 변형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인위적 변형에 따른 위험과 재앙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작가는 흑연을 입힌 종이를 일일이 칼로 오려내 형태를 만들었다. 큰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 선과 면을 살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칼질을 하는, 힘든 작업 현장을 상상하면서 보아야 할 작품이다.
 
고관호는 '구(求) 시리즈'를 통해 조각가로서 자신만의 매스(Mass, 덩어리감)을 찾고자 한다. 그는 식물의 열매가 지닌 물리적인 속성을 깊이 탐구한 뒤 이 작품을 구상했다. 철사를 수직과 수평으로 쌓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여러 개의 구는 무게, 밀도 등이 다르게 표현돼 있어서 서로 비교해 보면 시각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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