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제69주년 광복절이었다.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김해에서는 한 두 건의 달리기 행사가 전부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해에서는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도, 시설도, 행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접한 밀양과 부산만 해도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이 도시들에서는 독립운동기념관을 세워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활동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해마다 각종 세미나·추모행사 등을 열어 선열들의 뜻을 기리기도 한다. 이들 지역의 독립운동 기념 활동을 살펴봤다.

2008년 6월 개관 … 현재 67명 명패 부착
국사편찬위·국가보훈처 남은 자료 바탕
야외광장 36인 흉상 비롯 기록물 탄탄
지역에선 학술강연·책자 발간 등 활발


▲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앞 광장에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36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광복절 전날인 지난 14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손을 잡고 밀양시립박물관 안에 마련된 독립기념관을 찾은 홍 모(47·밀양시 내이동)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선조들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자녀 세대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역사적 아픔과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이야기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홍 씨는 아들과 함께 독립기념관 안의 전시물들을 진지한 표정으로 살폈다. 4년 전 밀양으로 왔다는 그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아들을 위해서 왔지만, 나도 많이 배워간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20일 개관한 밀양시립박물관과 독립운동기념관에는 매달 3천여 명이 발걸음을 한다. 특히 밀양의 독립운동사를 알기 쉽게 전시해 놓은 독립운동기념관에는 밀양은 물론 서울,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역사에 관심을 가진 개인, 단체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은 밀양시립박물관 1층 564㎡의 공간에 설치돼 있다. 기념관 입구 벽면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67명의 명패가 부착돼 있다. 명패 한 쪽에는 빈 공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새로 서훈을 받거나 발견되는 독립운동가들을 모실 자리라고 한다. 독립운동기념관 개관 당시에는 명패가 55개였는데, 지금은 12개가 더 늘었다. 태극기 아래에는 추모 의식을 위한 향로가 놓여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이 무엇인지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도 설치돼 있다.

▲ 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된 독립운동가들의 유품을 살펴보는 밀양 시민.

독립운동기념관 내부에는 3·1밀양만세운동, 3·1운동에서 시작된 밀양 청년·농민·노동운동의 전개 과정 자료 및 관련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최수봉 의사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등 밀양 독립운동의 당시 상황을 작은 모형으로 꾸며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박물관의 딱딱한 이미지를 개선시켜 주는 세련된 인테리어, 그리고 독립운동 관련문서를 기념관 내부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찬찬히 읽어볼 수 있도록 한 배려도 돋보였다.

밀양 청년들이 주축이었던 항일투쟁조직 의열단의 활동 상황과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했다는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도 기록물과 사진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조선의용대 대원들의 복장과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들도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독립운동기념관 앞 야외광장에는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36인의 흉상과 '선열의 불꽃'을 나타내는 대형 조형물도 설치돼 있다. 흉상이 설치된 공간에서는 해마다 광복절에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을 주축으로 한 추모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밀양시립박물관 관계자는 "한 독립운동가의 가족은 매달 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아와 선조의 흉상 앞에 꽃다발을 놓고 간다. 다른 독립운동가의 자손은 아이들과 손을 잡고 찾아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들과 독립유공자들은 밀양시가 이런 시설을 마련해줘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하기도 한다. 나라를 위해 애쓴 자랑스러운 인물들이 밀양에 많았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독립운동기념관 설립에는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밀양지역 시민단체들의 활동, 그리고 밀양시의 적극적인 협조가 밑바탕이 됐다.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시민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역사 학술 세미나를 열고 독립운동가 추모 시설 건설을 주장했다.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의 손정태(67) 소장은 "밀양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석정 윤세주 선생의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던 중 2008년에 밀양시립박물관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산 문제를 고려해 박물관 안에 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된 자료들은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보훈처에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재정리한 것들이다. 전시물품은 남아 있는 게 부족해 기념관 개관 당시 실물과 흡사하게 제작한 게 많다고 한다. 일부 전시물품들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기증했다. 손 소장은 "직접 중국 태항산 호가장 전투 현장을 찾아가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했던 물품을 수집해 오기도 했지만, 여건상 아직 전시는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독립운동기념관이 세워진 후에도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밀양 각 단체들의 활동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2008년 12월 창립된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의 회원 33명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장소를 직접 방문하거나 학술강연회를 열기도 한다. 지난 2월에는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67명의 업적을 담은 <밀양의 항일독립운동>을 발간했다. 또 밀양의 고등학교 학생 500여 명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독립 운동사 교실'이라는 방과 후 교실을 열어 호평을 받았다.

손 소장은 "밀양은 작은 도시지만 매우 뜨거우면서도 뛰어난 독립투쟁을 벌인 곳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밀양의 의인들이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하면 밀양의 독립운동사 연구나 시설은 잘 돼 있는 편이다. 역사를 기록물로 남기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은 역사를 바로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밀양=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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