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수용 따라 농사 접어 "백수신세"
착공 지연에 "기름진 쌀 나오던 땅인데
흩어진 이웃들과 함께 살날은 까마득"
추석 앞두고 착잡한 마음에 눈시울만


"이 넓은 김해평야를 택지개발한다고 다 수용해놓고 이제 와서 개발이 늦어질거라고 하면 농민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노는 땅에 농사를 한 해 더 지었으면 추석 때 농민들이 허리라도 펼텐데…."

율하2지구 도시개발 때문에 LH공사에 논을 모두 팔고 지난해 추수를 마지막으로 농사를 접었던 장유 모산마을 박승수(65) 통장(김해뉴스 지난해 10월 23일자 2면 보도)이 1년 만에 자신의 논 앞에 다시 섰다. 지난해 이맘 때만 해도 황금물결이 일렁였던 그의 논에는 지금 어른 허리 높이만큼 자란 잡초만 무성하다.

▲ 장유 모산마을 박승수 통장이 잡초만 무성한 자신의 옛 논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박 통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논 잃고 백수 신세가 됐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원래 이곳에 논 1천 평(3천300㎡)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율하 2지구 도시개발을 시행하는 LH공사가 장유동 114만2천921㎡ 부지에 대규모 택지개발 공사를 벌인다면서 모산마을까지 수용하는 바람에 그의 논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박 통장이 평생 일터로 삼아왔던 논은 이후 1년이 다 지나도록 아직 착공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택지개발을 시작할 예정이었던 LH공사가 사업투자금 부담 때문에 민간사업자와 공동으로 택지를 개발하기로 계획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LH공사는 착공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 못한 채 현재 공동사업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2016년 12월로 예정된 완공시기도 불투명한 상태다.

박 통장은 "모를 심으면 기름진 쌀이 나오던 땅이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으니 주민들의 심정이 오죽하겠나. 모산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말부터 뿔뿔이 흩어졌다. 임시방편으로 좁은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자식들 집에 얹혀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다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 날 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이 언제 올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처음에 LH공사 측에서 땅을 사고 싶다며 찾아왔을 때는 'LH공사가 전적으로 이 사업을 맡아서 할 것이니 사업이 잘못될 걱정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제 와서 민간사업자를 모집해 같이 하겠다고 하면 주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셈이 된다. 지금도 LH공사 측은 민간사업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하지만 그 말을 어떻게 다 믿을 수 있나"라고 토로했다.

사업 착공이 늦어지면서 이주자 택지 제공 대상자 발표도 늦어지고 있다. 대상자는 택지개발 때문에 수용된 부지를 소유했거나 부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모산마을과 장유마을 주민 중에서 120가구나 된다. 두 마을의 총 가구 수가 230여 가구였던 점을 감안하면 마을 주민 중 절반 이상이 택지를 돌려받기 위해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박 통장은 "가장 큰 문제는 농사만 짓고 살던 모산마을 주민들이 변변한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고, 60~70대 농민들이 호미와 낫을 버리고 뭘 할 수 있겠나. 택지개발이 끝나면 여기서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거나 땅에 건물을 지어 임대를 해서 여생 동안 먹고 살아야한다. 착공이 무기한 늦어진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이 이처럼 큰 피해를 보고 있지만 LH공사는 주민들의 고충을 무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곧 주민대책위를 꾸려 LH공사 본사에 항의방문을 하러 할 예정이라고 한다. 박 통장은 "어떤 사람들은 토지 보상을 받아 돈을 많이 벌었으니 부럽다고 하더라. 보상이 문제인가. 논과 집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살 집이 언제 완성될지 알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추석을 앞두고 이렇게 마음이 공허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대해 LH공사 경남지역본부 율하2지구 담당자는 "착공이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현재 공동사업자 신청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율하2지구 도시개발사업은 충분히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다. 민간사업자를 공모 설명회를 열 당시에도 여러 건설사가 참석했고 관심을 보였다"며 주민들의 걱정을 일축했다.  

김해뉴스 /김명규 기자 kmk@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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