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힘과 지략 갖춘 아이들
나라에서 역적 누명 씌워 죽여버린 탓
진례 청주 송씨 집안에도 큰 걱정
"이제부터 숨기고 잘 다스리겠습니다"

진례면에는 청주 송씨(淸州 宋氏) 집성촌이 많다. 그 중에서도 학문 높은 선비가 많이 났다 하여 김해부사가 석축을 쌓아 보호한 마을이 있으니 바로 담안(장내·墻內)이다.
 
조선 정조 임금 때 담안마을에 송임(宋琳)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태어날 때 울음소리부터 범상치 않더니 송임은 세 살배기 아기 때 돌절구를 밀어버렸다. 범상치 않은 아들의 힘을 본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했다. 황급히 아기를 안아서 옷을 벗기고 겨드랑이를 살펴보았다. 솜털만 보송보송할 뿐 겨드랑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기가 혹시 아기장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상을 바꿀 힘과 지략을 갖춘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들리면 나라에서는 그 아기를 찾아내어 역적의 누명을 씌워 죽여 버렸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화근을 미리 없애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어쩌다 아기장수가 태어나면 아무도 몰래 아기를 죽이는 참혹한 일도 있었다.
 
송임의 어머니는 어렵게 얻은 자식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울면서 남편과 의논했다.
 
"설마 우리 임이가 아기장수는 아니겠지요? 혹시라도 모를 일이라 겁이 납니다."

그러나 송임의 아버지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넘겼다.

"임진년에 김해읍성에서 순절하신 할아버지께서도 힘이 좋으셨소. 허나 그 힘을 나라를 위해 쓰셨지요. 우리 임이도 그럴 재목인가 보니 지레 염려하지 말구려."

임진년 왜란 때 김해읍성에서 순절한 송빈(宋賓)은 송임의 7대조였다. 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순절 후 이조참판에 추서되었다. 후손들은 뒷산에 첨모재란 재실을 짓고 극진히 우모(寓慕)했다.

그러나 송임의 아버지도 사실은 걱정이 되었다. 하여 날마다 아들을 유심히 살폈다. 송임의 힘은 정말이지 남달랐다.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밭을 갈다 넘어진 황소를 번쩍 들어 일으켜세우질 않나, 진흙탕에 빠진 수레를 일으켜 혼자 끌어내질 않나…. 아버지도 마침내 송임의 예사롭지 않은 힘을 마냥 내버려 둘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아버지는 송임에게 먹을 것을 조금만 주도록 했다. 만약 힘을 쓰기라도 하면 엄히 꾸짖었다. 글공부도 하지 못하도록 책과 종이를 아예 주지 않았다.

"때가 되어 네 힘을 쓸 곳을 찾기 전까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

부모는 송임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러나 송임은 영특해서 서당에 다니는 동무들에게서 몰래 글을 배웠다. 배가 고프면 집 밖으로 나가 힘을 써주고 먹을 것을 얻어 배를 채웠다. 유서 깊은 양반가문에 태어났는데도 글도 읽지 말라 하고, 남다른 힘을 타고 났는데도 그 힘을 쓰지 말라 하니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 그림=김기영 화가
열네 살이 되자 송임은 김해의 씨름판을 장치고(혼자 판을 휩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의 걱정은 여간 크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군사가 들이닥쳐 아들을 잡아갈 것만 같아 늘 조마조마했다. 하루는 송임이 씨름판에서 탄 황소를 몰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송임을 마당에 꿇어앉히고 절굿공이로 몹시 치게 했다. 하인이 달려들어 내리쳤지만 절굿공이만 부러질 뿐 송임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다섯 개의 절굿공이가 부러진 뒤 아버지는 송임을 사랑으로 불러들였다.

"네 힘이 얼마나 되느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씨름판에서 아직 상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밤마다 불티재까지 단숨에 올라가서 탕건바위를 열 번 들었다 놓았다 한 후에 노티재까지 달리는데 반의 반 식경밖에 걸리지 않고, 노티재에서 활천고개까지 한 식경에 능히 달린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송임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우리 집안은 이제 망하게 생겼다."

"저를 머슴 대하듯 하시더니 이제는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니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송임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탄식하며 말했다.

"내 첨모재에 제사를 지낼 때마다 힘센 장군감 하나 점지해주시면 송자 빈자 할아버지의 한을 풀리라 빌었더니라. 하지만 임아. 신하의 학문이 임금을 넘어서면 이는 교만이라 곧 불충이요, 장수의 무예가 지나치게 출중하면 나라에 위협이 되는 법이니 역시 불충이니라. 이것이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의 법이다. 불충은 곧 역모이니 너의 출중한 힘으로 인해 너와 우리 집안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구나."

그때 어머니가 사랑으로 달려왔다. 어머니는 아기장수 이야기를 들려주며 통곡했다. 부모의 진심을 알게 된 송임은 그제서야 잘못을 빌었다.

"용서하십시오. 소자의 소견이 좁아 큰 걱정을 끼쳤습니다. 이제부터 힘을 숨기고 잘 다스리겠습니다."

"시절이 태평하여 너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함이 안타깝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것이니 몸과
마음을 잘 간수하여야 한다."

제 처지를 알아차린 송임은 스스로 힘을 다스리고 숨기는 일에 힘썼다. 한 끼에 쌀 두 되 닭 세 마리를 먹어치우던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오밤중에 집을 뛰쳐나가 불티재에서 노티재, 활천고개까지 달음박질하고 오던 일도 그만두었다. 몰래 읽던 책도 다 불살라버리고 머슴들과 농사일을 했다.

청년이 된 송임은 키가 9척이나 되었다. 기골이 장대한데다 날렵하기가 비호 같았으며, 목소리는 우렁찼다. 또 도량이 크고 성품이 활달해서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김해부는 물론이고 사방 고을의 여러 장사들과 형제처럼 교류하며 지내니, 차츰 농사일을 팽개치고 집 밖으로 나돌게 되었다.

백방으로 아들의 힘을 다스릴 방도를 구하던 송임의 어머니는 어느 날 한 도승을 만났다.

"불티재 너머에 돌부처를 모시게. 그러면 아들의 힘을 제법 꺾을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못이 있거든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하게."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못이라니, 아기장수의 짝이라는 용마가 태어나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그대 아들의 말은 아니네. 하지만 아들의 힘이 워낙 특별하니 미리 조심해야 한다네."

아들이 아기장수가 아니라는 말에 송임의 어머니는 한시름이 놓였다. 그래서 당장 돌부처를 깎을 돌을 구하고 장인을 불렀다. 불티재 너머에 돌부처 불상을 깎아 세운 송임의 어머니는 아들이 제 명을 다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런 후에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못이 있는지 은밀하게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나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못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남편에게 꾸지람이나 들었다.

"유학을 하는 선비로서 그처럼 용렬한 짓을 한다면 세간의 웃음을 살 것이오. 임이가 이제 마음을 잡은 듯하니 장가를 들여 내보냅시다."

장가를 든 송임은 고모실로 살림을 났다.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 뒷산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바위를 캐내고 나무를 뽑아 밭을 일구어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을 혼자서 다 해치웠다. 그러고도 힘이 남으면 멀리 날음산고개까지 단숨에 달려가 그 아래에 있는 못에 뛰어들었다. 넓은 못을 헤엄치며 다니는데 바닥까지 내려갔다 박차고 오르기를 반복하니 못은 금방 진흙탕이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목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이태가 지난 뒤 송임은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송임은 자신을 꼭 빼닮은 아들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기를 빤히 바라볼 때면 섬뜩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었다.

"그놈 참. 애비 보기를 마치 아랫사람 보듯 하질 않나."

송임은 아들을 본 체 만 체 하고는 농사일에 전념했다. 논밭에서 한바탕 힘을 쓴 뒤에는 날음산고개 아래 못에 목욕을 하러 갔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고부터 날음산고개 아래 못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면 꼭 말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송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렇게 말 울음소리를 들은 뒤로는 이상하게도 힘을 다스리기 어려워졌다. 오밤중에도 힘이 솟아 주체할 수 없었으며, 절반으로 줄였던 식사량도 다시 늘어났다.

날마다 먹고 마시는데 양이 차지 않으니 송임은 다시 씨름판을 기웃거렸다. 김해 씨름판에서는 상대가 없어 창원이며 밀양, 상주, 안동까지 원정을 다녔다. 황소를 타면 그 자리에서 잡게 해서 먹고 마시니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줄줄 따라다녔다. 힘을 쓰기 시작하자 자꾸 힘을 쓸 일이 생겼다.

송임은 활천고개에서는 새색시를 물고 가던 호랑이를 만나 단 두 주먹에 때려잡았다. 밤마다 김해읍성에 나타나 사람을 해코지하는 처녀귀신과 맞장도 떴다. 의령에서는 이무기를 맨손으로 해치웠고, 창원에서는 곰 두 마리를 상대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송임을 송장군이라 부르며 치켜세웠다. 송임은 기고만장해졌다.

"송장군에게 가서 물어 보자. 내가 그른지, 네가 그른지."

"송장군이라면 저 불한당을 단숨에 제압해버릴 것이야. 어서 가서 모셔오게."

우렁찬 목소리로 송임이 호통을 치면 아무리 험한 싸움판이라도 곧 끝장이 나고 말았다. 어마어마한 힘과 기세에 눌려 감히 대들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송임이 나타나는 곳이면 그가 힘 쓰고 몸놀리는 것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송임은 큰 바위를 번쩍 들어 힘을 보여주거나, 기둥이나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리는 등의 재주를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장난거리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관리나 부자들은 먹을 것과 술을 그득히 차려놓고 송임의 힘과 재주를 보고자 했다.

힘 쓰는 일에 재미를 들이다 보니 송임은 집에 붙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며칠씩, 몇 달씩 집을 비우기 예사였다. 어쩌다 집에 들러도 아기며 농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해뉴스
조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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