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동 소락마을 의좋던 다리·부리 형제
형 다리 심술궂은 여자와 혼인 후 변해
노모와 동생 부리를 초가집으로 내몰아

개울가에서 만난 '말하는 자라'로 큰돈
욕심 난 형과 형수 억지 부려 빼앗아가
자라 죽은 자리 대나무숲 돼 다리 망해
 

옛날 상동면 우계리 소락마을에 다리와 부리 형제가 있었다. 부지런하고 착한 형제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의좋게 살았다.
 
그런데 형 다리가 장가를 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심술궂고 욕심 많은 다리의 아내 때문에 집안에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동생과 시어머니가 함께 사는 것에 불만을 품은 다리의 아내는 여러 거짓말과 이간질로 다리와 부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또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도 갈라놓았다.
 
아내의 말만 듣고 심술궂고 욕심이 많아진 다리는 그동안 부리와 함께 마련한 집과 땅을 혼자 차지해버렸다. 그리고 부리로 하여금 어머니를 모시고 여차리 용성마을로 제금을 나게 했다. 자기는 자식도 있고 제사도 지내야 한다면서 늙은 어머니와 살게 된 부리에게는 다 허물어져가는 초가집 한 채만 마련해주었다.
 
마음씨가 착한 부리는 다리를 원망하지 않고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이사를 갔다. 소락에서 용성으로 가자면 구비가 아흔아홉 개나 되는 멀고 험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첫날밤을 치른 새신랑이 고갯길 닦는 부역에 끌려나갔다가 돌아오니 아이가 아홉 살이 되어 있더라 해서 아홉 살 고개라 부르는 고개였다.
 
그렇게 용성에 살게 된 부리는 날품팔이를 하며 살아갔다. 틈이 나면 용성천이나 후포천에 가서 고기를 잡아 멀리 용산포까지 가서 팔기도 했다. 하지만 늙은 몸으로 아홉 살 고개를 넘고서 병을 얻은 어머니께 약은 고사하고 쌀밥 한 번 지어드릴 수 없었다. 부리는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 오늘도 깡보리밥에 된장국뿐이라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쌀밥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끼니때마다 부리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다. 나는 배불리 잘 먹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아라."

여러 달이 지나서 아버지 제삿날이 되었다. 병든 어머니를 두고 혼자 제사 지내러 가자니 부리는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다녀오너라. 나는 잘 있다고 네 형에게 전하고, 아버지 제사를 모시느라 수고가 많다고 네 형수에게도 꼭 전하거라. 그리고 돌아올 땐 떡 좀 얻어 오너라. 내가 떡이 먹고 싶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
 
부리는 혼자 길을 나섰다. 점심나절부터 부지런히 걸었지만 아홉 살 고개를 넘어 소락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부리는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다리는 부리가 게으름을 피우다 늦게 왔다고 나무랐다. 그러면서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장작을 나르게 했다. 부리가 장작 한 아름을 들고 부엌으로 가니 형수가 부엌문을 쾅 닫으며 쏘아붙였다.
 
"제사 음식은 벌써 다 만들었어요. 이제 와서 장작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광에 가서 상을 내오고 병풍도 가져와요. 방과 마루도 깨끗이 닦아야지요."
 
부엌에서 솔솔 풍겨나는 음식 냄새 때문에 부리는 배가 더 고팠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상과 병풍을 챙겨 제사 준비를 거들었다.
 
제사를 지내고 나자 다리의 아내는 부리에게 떡을 차려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쫓아 보내고 싶었지만 다리가 지켜보고 있으니 하는 수 없었던 것이다. 부리는 상에 놓인 떡을 보자 그만 어머니 생각이 났다. 떡은 고사하고 쌀밥 구경을 한지도 오래 된 어머니를 생각하자 한 조각도 먹을 수 없었다. 하염없이 떡을 쳐다보던 부리는 형수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떡이 먹고 싶다 하셨어요. 저는 안 먹어도 되니 좀 싸 가면 안 될까요?"

다리가 보고 있는 데서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던 다리의 아내는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께 드릴 떡은 따로 싸 두었으니 걱정 말고 드세요."

"고맙습니다, 형수님."

부리는 넙죽 절을 하고는 허겁지겁 떡을 먹기 시작했다. 다리의 아내는 부리가 먹고 있는 떡이 몹시 아까웠다.
 
'저렇게나 많이 먹고서 또 싸 달라니, 욕심도 많구나. 내가 조금이라도 인정을 베풀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서 얻어먹으려 할 거야.'
 
다리의 아내는 부리가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집으로 돌아가는 부리에게 떡 대신 똥을 담은 보자기를 내주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부리는 떡보자기를 들고 아홉 살 고개로 향했다. 어머니께 어서 떡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 쉬지 않고 걸었다. 구비 구비 고갯길을 절반 넘게 넘은 뒤에야 부리는 땀을 식히려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런데 개울가에 앉아 있자니 어디선가 지독한 구린내가 났다.
 
"정말 고약하군.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것이야?"

▲ 그림=박점숙 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코를 킁킁거리던 부리는 구린내가 자기가 들고 온 보자기에서 나는 것을 알았다. 부랴부랴 보자기를 풀어 보니 떡이 아니라 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람. 형수님께서 분명히 떡을 싸주셨는데 떡이 똥이 되어 버렸네. 이상한 일이야."

부리는 똥떡 보자기를 멀리 던져버리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머니께 떡이 똥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똥이 되었어도 떡은 떡 아니냐. 그거라도 찾아오너라."

어머니가 하도 간절하게 말했기 때문에 부리는 하는 수 없이 똥떡을 버린 개울을 찾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똥떡이 보이지 않았다. 부리는 개울가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부리에게 말을 걸었다.

"착한 부리님. 뭘 그리 찾고 있나요?"

소리 나는 곳을 찾아보니 발치에 납작하고 둥그스름한 등딱지를 가진 자라가 가늘게 튀어나온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다. 부리는 신기해서 쳐다보았다.

"나는 말하는 자라랍니다. 이 개울에 오래 살아서 여기서 일어난 일은 다 알고 있지요."

"정말이냐? 그럼 내 똥떡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고 있니?"

자라가 주둥이를 끄떡끄떡하며 말했다.

"착한 부리님. 그 똥떡은 내가 먹어버렸어요. 마침 배가 고팠거든요."

"그랬구나… 이제 어머니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부리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라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딱하게 됐군요, 착한 부리님. 그렇다면 똥떡 대신 진짜 떡을 마련해드려야지요. 나를 용산포에 데려다 주세요."

그러더니 자라는 등딱지 속에 머리와 다리를 쏙 집어넣었다. 부리는 자라를 들고 고갯길을 한참이나 걸어 용산포로 갔다. 용산포는 낙동강을 따라 들고 나는 배가 많은 포구였다. 배가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보니 사람도 많았다. 부리는 자라를 큰 돌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자라가 말하기 시작했다.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나는 말하는 자라랍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어요!"

자라가 말을 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자라는 사람들에게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 부리에게 돈을 주었다.

"착한 부리님. 이 돈으로 떡을 사서 어머니께 갖다 드리세요."

부리는 자라를 꼭 안고 떡을 사러 갔다. 떡을 본 어머니는 몹시 기뻐했다. 다음날에도 부리는 자라를 데리고 용산포로 갔다. 자라가 들려주는 토끼와 노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또 돈을 주었다. 말하는 자라 이야기는 한 입 건너 두 입, 두 입 건너 세 입으로 널리 퍼졌다. 말하는 자라를 구경하려고 용산포로 모여드는 사람이 자꾸 늘어났다. 부리는 자라를 데리고 날마다 용산포에 갔다. 자라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덕분에 부리는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부리는 더이상 용산포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다. 말하는 자라를 보려고 사람들이 부리의 집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말하는 자라 덕분에 부리는 부자가 되었고, 어머니의 병도 말끔히 나았다.

▲ 그림=박점숙 화가
부리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다리와 다리의 아내는 심술이 났다. 그래서 아홉 살 고개를 넘어 부리를 찾아갔다. 좋은 집에서 어머니와 편안하게 살고 있는 부리를 본 다리와 다리의 아내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부리는 말하는 자라를 얻어 부자가 된 사연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이 자라는 우리 것이네요. 똥떡을 준 것은 바로 나니까요."

다리의 아내가 억지를 부렸다. 다리도 맞장구를 쳤다.

"맞는 말이야. 말하는 자라를 내놓아라."

마음씨 착한 부리는 다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자라는 제 것이 아니니 자라의 생각은 어떤지 물어봐야 한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자라가 말했다.

"착한 부리님과 헤어지는 것은 슬프지만 형님 집으로 가겠어요."

다리와 다리의 아내는 자라가 말하는 것을 직접 듣고는 몹시 기뻤다. 그래서 얼른 자라를 뺏은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홉 살 고개를 넘어 자기 집으로 갔다. 얼른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 다리와 다리의 아내는 사람들을 잔뜩 불러모았다. 다리와 다리의 아내는 미리 돈을 내게 한 다음 자라에게 말을 시켰다. 그런데 자라는 등껍질 속에 머리와 다리를 집어넣은 채 옴짝도 하지 않았다.

"말하는 자라라고? 이런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사람들은 돈을 돌려받고는 불평을 터뜨리며 돌아가 버렸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자라는 등껍질 속에 머리와 다리를 집어넣고 움쩍도 하지 않았다.

"이 놈의 자라야.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다리가 자라를 뒤집기도 하고 호통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참다못한 다리는 마침내 절굿공이로 자라를 내리쳤다. 자라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다리는 죽은 자라를 대나무 숲에 파묻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라를 묻은 자리에서 커다란 죽순이 솟더니 하룻밤을 자고 나니 하늘을 찌를 듯이 큰 대나무가 되어버렸다. 다리는 이상하게 여겨 대나무를 잘라버렸지만 이튿날이 되자 더 많은 죽순이 솟았다. 다리와 다리의 아내는 날마다 죽순을 자르고 대나무를 베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대나무는 안방에도 건넛방에도, 광에도 외양간에도 마구 자라서 다리의 집은 망하고 말았다.





김해뉴스
조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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