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 내동 한진그룹 사원아파트에 '아빠 힘내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나흘 전이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한진중공업 사측이 사원아파트를 비워달라는 기한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월 14일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사람은 170명. 이 가운데 50여 명이 김해 내동 한진그룹 사원아파트에 산다.
 
김해을 보선 투표일인 지난 27일. 이 날 해고 노동자들은 휴일 아닌 휴일을 맞았다. 선거일에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기 때문. 오전 10시께가 되자 아파트 입구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열 명 가량 모여 들었다. 투표를 하러 가거나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천병호(51) 씨는 이들을 '총 맞은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한진중공업에서 일했다는 천 씨는 "해고 당시 회사로부터 받은 돈은 5천여만 원이 전부"라고 했다. 그에게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이 있다. 이사는 생각도 할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죠. 그래도 여기서 무너지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물러날 곳 없는 사람은 천 씨뿐만이 아니다. 이정희(44) 씨는 얼마 전 은행에서 2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큰아들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회사로부터 학자금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퇴직금으로 받은 2천만 원은 손도 대지 않았다. "이 돈은 복직하면 바로 돌려줘야지요."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가는 이 씨 뒤로 '아빠, 힘내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이들이 살고 있는 한진사원아파트는 3년 계약에 보증금은 340만 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계약 연장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에게 갑자기 집을 나가라는 말은 길바닥에 내모는 것과 다름없었다. 근처 22평형 대 같은 규모의 아파트로 옮기려면 적어도 1억 원은 더 필요하다. 340만 원에 퇴직금을 합쳐도 한참 모자란다.
 
▲ 아파트 입구에 걸려 있는 '한진중공업 살려내자'라는 현수막은 이 곳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왼쪽)지난 27일 해고 노동자들이 한진중공업 사태를 바로 잡아달라는 탄원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오른쪽)

그런데도 사측의 태도는 강경하기만 하다. 경영난을 이유로 들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진중공업 정철상 부장은 "계약서에서도 나와 있듯이 사원이어야 사원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다"며 "정리해고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퇴거 요청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리해고에 대해서도 이를 번복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회사 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경영이 어렵다던 조남호 회장이 한진중공업 주주들에게 174억원에 이르는 주식배당을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웠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 공문을 보낸 다음 날에 '주식 1주당 0.01주'를 배당한다는 결정을 했다. 노조 관계자는 "생산직 1천200명 가운데 400명을 줄이겠다는 방침은 사실상 부산 영도조선소의 폐업 수순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해 내동 한진사원아파트 거주 가족대책위 위원장 도경정(33) 씨는 이 날도 아이를 업고 나섰다. 부산 영도에서 열리는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남편 김동섭(35) 씨는 영도조선소에서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기약 없는 싸움이다. 8개월 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의 등에 업혀 있다. "책 한 권 못 사주고 매일 어깨띠만 매고 다니니. 애기한테 제일 미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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