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로 세번째 수확을 거두고 맨살을 드러낸 봉하마을 친환경 생태농업의 속살. 정자의 '사람사는 세상' 현판엔 농토의 흙냄새도 함께 배어난다. 사진 = 박정훈객원기자

지난 2008년 4월 KBS의 <다큐멘터리 3일>은 퇴임 후 최초로 고향에 정착한 전직 대통령의 일상을 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요즘 행복하시냐는 피디의 질문에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명쾌하게 답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수없이 밀려드는 방문객들을 일일이 맞이하는 와중에서도 오리농법에 대한 수업을 듣고, 현장 실습을 하고, 장군차를 심고, 화포천 정화 활동을 벌였다.
주민들조차 반신반의하던 오리농법에 대해 '오리실장'을 자처하며 독려하던 그는 프로그램 말미에서 아주 담담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걱정이 되지요. '하자! 하자!' 해놓고 잘 안되면 얼마나 곤란하겠어요. 그런데 약간의 불안이 있다고 새로운 도전을 안 하면 발전이 안 되거든요. 다른 마을이나 다른 사람들은 다 변화하는데 우리만 그냥 옛날 그대로만 계속 가면 발전이 문제가 아니고 낙오하죠. 그러니까 하기는 꼭 해야되는데 걱정이 많죠. 불안하죠. 항상.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걱정과 불안 속에 출발한 봉하의 친환경농업이 올 해로 세번째 수확을 거두었다. 비록 '오리실장'은 고인이 됐지만 친환경농업의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지난 2008년 14농가 2만4천여평으로 출발했던 것이 올해엔 100여 농가 30만평으로 확대되었다. 수확량 역시 50t에서 530t으로 늘어났으며 참여 농가의 소득은 평균 1.5배 증가했다. 이만하면 걱정과 불안이 희망으로 반전되었다는 평가를 내릴만 하다. 하지만 봉하마을 친환경농업의 진정한 가치는 그 외형 보다는 오히려 내용에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초기만 하더라도 농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화포천 생태복원과 봉화산 숲 가꾸기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농사를 빼고 농촌을 아름답고 생태적으로 가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자 조류독감의 와중에서도 14명의 마을주민들을 설득해 친환경쌀작목반을 구성했다. 무엇보다 봉하마을의 생태농업은 흙과 물을 살리고 작물의 내재적 생명력을 활성화 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자운영과 호밀등 녹비작물을 심고 토착미생물을 채취·배양하여 논에 뿌려줌으로써 땅속 미생물과 지렁이나 땅강아지 등 소동물이 살 수 있는 토양기반을 조성했다. 수질개선과 수량확보를 위한 환경감시 활동과 수로공사도 병행했다. 어릴 때부터 튼튼한 모를 선별하기 위해 소금물로 부실한 볍씨를 골라내고, 튼튼한 볍씨만을 골라 한방영양제와 천혜녹즙 등 종자기반액에 침전시킨 다음 파종했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사용하는 대신 오리와 우렁이를 풀어 병충해를 방제하고 잡초를 제거했다. 그래도 풀이 나는 논에는 자원봉사자까지 가세해 '잡초와의 전쟁'을 벌이며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힘겨운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 봉하마을의 둠벙
생태계 복원에 중점을 둔 봉하마을의 친환경농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둠벙'이다. 둠벙은 논 주변에 웅덩이를 파서 물을 모아두고 필요시 논물을 댈 수 있도록 한 작은 저류지다. 이곳은 단순히 물을 공급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서곤충과 어류들이 사시사철 번식하고 생존하는 터전이었다. 하지만 관개수로가 정비되고 양수기가 보급되면서 둠벙은 하나둘 사라졌다. 둠벙이 사라지니 바다-강-하천-지천-수로-도랑-웅덩이-논으로 이어지던 물길이 끊어지고, 물길이 끊어지니 생태계 또한 단절되고 교란됐다. 봉하마을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둠벙을 복원하기 시작해 총 11개의 둠벙과 생태연못을 조성했다. 초기에는 수생식물과 어류 등을 인위적으로 이식했지만, 지금은 수서곤충과 어류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논과 도랑, 둠벙에는 소금쟁이, 물방개 등 다양한 수서곤충들과 송사리, 미꾸라지 등이 활개를 치고 이를 먹이로 하는 개구리, 거미, 잠자리, 메뚜기가 들판에 득실거리고, 또 이를 먹이로 하는 제비, 왜가리, 백로, 해오라기는 물론 말똥가리,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의 맹금류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급기야 족제비, 너구리, 고라니, 멧돼지에 이르는 먹이사슬의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불과 3년만에 이뤄낸 성과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자연은 늘 인간의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선사한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정성들여 재배한 쌀도 저장과 가공 과정이 관리되지 못하면 맛이 떨어지고 저품질의 쌀이 섞이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봉하마을에서는 지난 2009년 10월 미곡종합처리장(RPC)인 '봉하마을 친환경쌀 방앗간(봉하RPC)'을 건립했다. 특히 봉하RPC는 거액을 들여 단백질·아밀로스·수분 함량을 분석하는 성분 분석기와 완전미의 비율을 분석하는 품위측정기 등을 도입했다. 전국에 있는 260여개 RPC 가운데 이런 장비를 갖춘 곳은 10%에 불과하다. 이로써 봉하RPC는 가공 과정에서 고품질의 완전미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과 쌀의 품질과 품종을 구분해서 도정함으로써 생산이력추적제를 실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공유하고 실천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지속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봉하마을은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농법인 (주)봉하마을을 설립했다. (주)봉하마을은 고품질 쌀의 생산·가공·판매를 일원화함은 물론이고 쌀막걸리, 누룽지, 쌀국수, 떡국떡 등의 2차 가공식품 개발까지 추진하고 있다. 봉하쌀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쌀을 (주)봉하마을이 높은 가격에 전량 수매함은 물론이고 이후 판매 수익까지 배당 받음으로써 2중의 수익구조를 가지게 된 셈이다.

▲ 지난 가을 수확을 앞둔 봉하마을 황금들녘 전경.
정확히 2년 7개월. 이 짧은 기간동안 봉하마을은 친환경농업을 통해 생태계를 복원하고, 가공시설의 안정화와 고도화를 이뤄내고, 품질관리와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영농법인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농산물인증(무농약농산물)과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사는 세상을 희망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로 일하며 5년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주)봉하마을의 김정호 대표. 그는 취재 과정 내내 "목적의식"과 "대통령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생태계 복원과 우리 농업의 경쟁력 확보라는 명확한 목적과 그 목적이 노무현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구체화됨을 재차 강조하기 위해서다.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서 친환경농업을 통해 생산되는 쌀은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봉하쌀이 가장 우수한 쌀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봉하쌀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쌀이고, 그 기대는 쌀시장 개방 보류기간이 끝나는 오는 2014년 이후 본격적으로 검증될 것이다.   

지난주 <김해뉴스> 창간호 '금바다칼럼'에서 연출가 이윤택 선생은 다음과 같은 주정이 화백의 말을 소개했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상상하고 창조해라. 그러면 그게 바로 김해의 새로운 신화다." 일개 브랜드가 신화로 대접 받는 세상이니 농업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걱정과 우려 속에 시작된 봉하마을의 친환경농업은 어쩌면 희망을 넘어 김해의 새로운 신화로 자리매김 할지도 모를 일이다. 먼 훗날 신화로 대접받을지도 모를 쌀 맛이 궁금하지 않으신가?

봉하쌀 구입처 : 온라인 봉하장터
http://shop.knowhow.or.kr  


봉하 2차 가공식품들
청량한 첫 맛 은은한 누룩향 '봉하쌀 생막걸리'

피땀흘려 농사 지은 쌀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2차 가공식품의 개발과 생산이 필수적이다. (주)봉하마을에서는 이를 위해 누룽지, 송편, 떡국떡 등을 개발·판매해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올해 9월에는 '봉하쌀 생막걸리'(사진)를 처음으로 출시했다. 특히 막걸리는 쌀 소비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여타 가공제품보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봉하쌀 생막걸리'는 전남 담양의 죽향도가에서 만들고 (주)봉하마을에서 판매한다. 죽향도가에서 생산하는 '대대포'란 생막걸리는 농림식품부가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을 기원하고 막걸리 붐을 확산 시키기 위해 실시한 '16강 막걸리' 선발대회에서 '지역 대표 막걸리'로 선정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나름 술 빚는 기술을 검증 받은 양조장이란 말씀이다. 친환경농업으로 생산된 쌀을 원료로, 술 맛을 낼 줄 아는 양조장에서 빚었으니 그 맛이 각별한 것은 당연지사, 경남 김해의 쌀이 전남 담양에서 술로 거듭나니 동서화합의 상징성까지 두루 갖춘 셈이다.

과연 그 맛은 어떨까? 우선 섬세하고 오밀조밀한 탄산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이 첫맛을 장식한다. 질 높은 쌀을 저온에서 천천히 발효시켰기 때문에 잡맛은 사라지고 쌀 특유의 풍미가 잘 살아있다. 누룩향이 적은 대신 미약하나마 곡주 특유의 사과향과 배향이 은근히 깔린다. 끝맛 역시 뮝기적 거리지 않고 산뜻하게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균형감이 좋은 술이란 느낌이다. 그런데 달다. 단맛이 치고 나오니 섬세한 산미가 죽어 버린다. '봉하쌀 생막걸리' 역시 우리 막걸리의 고질적인 병폐인 인공감미료(아스파탐) 사용이라는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중의 입맛이 그러한 것을.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아쉽게도 '봉하쌀 생막걸리'는 현재 봉하마을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첫 생산이다 보니 생산량이 한정된 탓이다. 그래도 봉하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이만한 특산물도 없을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테마식당에 들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겼다는 쇠고기국밥에 반주로 곁들여도 좋고 선물용으로도 괜찮은 아이템이다. 앞으로 생산량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고, 오래지 않아 죽향도가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주)봉하마을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한다.

구입문의 : (주)봉하마을 055-344-1230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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