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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벗어나 찾아온 산골에도 파란색 공장 지붕들이 곧 들이닥치겠지…(1)산골에 살며 - 산골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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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07.15 09:15
  • 호수 231
  • 14면
  • 주정이 판화가(report@gimhaenews.co.kr)

김해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인인 주정이(72) 판화가가 <김해뉴스>에 '귀향일기'를 연재합니다. 김해가 고향인 그는 김해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7세 때부터 30여 년간 타향에서 예술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생림면 안금마을의 숲 속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집을 지어 정착했습니다. 주 판화가는 문화예술은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등 김해의 모든 분야에 대한 식견을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펼쳐 보일 예정입니다.

공기 맑고 물 좋다는 옛말도 무색하게
호랑이 피해 온 곳이 호랑이굴이라니

산짐승 날짐승도 지치고 힘들게들 사니
얼마 전 몸에 탈이 난 것도 그 때문인가

얼마 전 몸에 탈이 났다. 나이가 들면 무시로 찾아오는 이런 저런 잔병 치레 탈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니 어럽쇼! 증세가 만만치 않고 길어질 조짐이라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가면 으레 하는 여러 가지 검사나 촬영을 마친 뒤 의사가 "혈압이 상당히 높다. 우선 혈압을 내리는 처방을 하겠다. 그리고 탈난 원인은 딱히 '이거다'라고 대기는 마땅찮다. 나이가 들어 신체기능이 많이 떨어진 게 탈이 난 요인 중 하나다. 심한 운동을 하지 말고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
 
병원 문을 나서며 "탈난 원인은 딱히…"라는 의사의 말을 다시 떠올리다 '나이보다는 행여 그놈의 공장 때문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마을에는 폐비닐을 녹여 알갱이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그 공장에서는 냄새가 많이 난다. 특히 사람들이 다 잠든 오밤중에 몰래 뿜어댈 때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벼룩도 낯짝이 있지. 마을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한다. 공장이 들어올 때 큰돈을 받았다고도 하거니와 마을 노인회가 관광을 간다, 마을 청년회가 야유회를 간다고 할 때마다 늘 손을 벌리기 때문이다.
 
몸에 탈이 나서 고치려면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 어쩌겠나? 며칠 동안 병원을 들락거리며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더니 좀 덜하다 싶긴 하였다. 그래도 어지럼증과 기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근 열흘을 하루 종일 누웠다가 앉았다가 하며 방바닥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짜증이 났다.
 
그래서 "제기랄!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라고 구시렁댔더니 할멈이 엿듣고선 "고만한 걸로 안 죽소! 의사 시키는 대로나 잘하소!"라고 핀잔을 줬다. 다행히 대략 3주 정도 통원치료를 하니 할멈 말마따나 안 죽고 탈도 잡혔다. 그래도 또 탈이 날까 봐 겁이 나서 의사가 일러준 대로 열심히 걷기를 한다. 예전 사람들이 밥을 먹고 나면 소화를 시킨다고 어슬렁어슬렁 마실 나가던 습관처럼 나도 밥을 먹은 뒤 마을 뒷길로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나간다.
 

   
▲ 신어동천을 넘어온 바람 한 줄기가 대밭 댓잎을 스치며 서걱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정이 판화가의 안식처인 안금마을 기와집 지붕과 대나무밭 풍경. 작가는 이 편안함이 도시화에 밀려 얼마나 갈지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어동천을 넘어온 바람 한줄기가 집 뒤 대밭을 지나며 서걱서걱 댓잎 부비는 소리를 내는 아침 나절, 마을 뒤편 나뭇길로 산책을 나섰다. 도중에 옆집 청년과 마주쳤다. 청년이 백줴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암만 하지 말래도 그럽니다"라기에 '뭔 소린가?' 하다가 바로 알아차렸다. 아까 산책길 초입에 있던 밭고랑에 마을 노파 한 명이 붙어 있는 걸 봤다. 그 노파는 청년의 모친이다. 그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청년의 말은 연로한 모친이 노상 밭고랑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뜻이다.
 
그런 청년에게 "어쩌겠소? 마! 노인이 하고픈 대로 두세요"라고 훈수 같잖은 한마디를 건네고 마을 뒤편으로 끝집인 월강 댁 돌담을 막 벗어나려는 참이었다. 저만치 산기슭의 다랑이 밭에 어미 고라니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내려와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먼발치이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는가? 어미 고라니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그 순간 얼른 발길을 물리며 돌담 아래로 몸을 숙였다. 월강 댁 돌담은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군데군데 흐트러진 상태다. 몸을 숨긴다고 숨겼으나 등짝이 매처럼 드러났다. 몸을 더 낮췄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반 얼굴만 빠끔 내밀어 고라니 쪽을 다시 살펴봤다. 어미 고라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만 멀뚱거린다. 새끼 고라니들도 어미의 발치에서 파릇한 잎사귀를 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새 산에는 큰 나무가 워낙 무성하다. 그 아래는 온통 그늘이 져 낙엽만 쌓였지 망개나무 같은 잔 나무는 물론이고 풀도 잘 나지 않는 얼추 맨땅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먹을거리가 모자란 산짐승들이 먹을거리를 찾아서 산 밑으로 내려오는 일이 빈번하다. 고라니 가족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고라니 가족이 아침 성찬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광경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산책이야 저녁나절에 다시 하면 될 것을 굳이 고라니가족의 행복한 시간을 훼방 놓을 것 뭐 있나?'라는 생각에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산책을 중도에 파하고 되돌아가는 길에 이번에는 밭고랑에서 보았던 노파와 마주쳤다. 그는 "산짐승이 열무밭을 절딴(결단) 내 싸서…"라며 지나간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소쿠리에는 약을 버무린 떡밥이 한 움큼 담겨져 있었다. 아마도 앞서 마주친 그 청년이 밭고랑에 붙은 모친을 보고선 "또 그러고 있어요? 암만 그라면 뭐해요! 산짐승만 좋은 일 나지!"라고 투정을 했을 것이다. 노파는 청년의 그런 투정이야 귀가 닳도록 듣는 터라 듣는 둥 마는 둥 "와? 열무밭에 짐승 붙었더나?"라고 딴소리를 하고선 산짐승을 쫓는 일이 급해 얼른 약을 버무린 떡밥소쿠리를 챙겨 들고 부랴부랴 다랑이 밭으로 가는 참이었다.
 
노파는 한집 건너에 사는 가까운 이웃이다. 나이가 여든을 한참 넘었지만, 허리가 꼬부랑한 것 말고는 정신도 맑고 날만 새면 밭일을 할 만큼 몸도 그만하다. 노파는 일찍이 논밭을 자식들에게 얼추 나눠 주었고, 몇 해 전에는 몇 동가리 남아 있던 것마저 내주었다. 지금 노파가 부치는 땅이래야 문밖의 두 마지기 하고 산기슭의 다랑이 밭이 전부다.
 
   
▲ 밭일을 하고 있는 이웃집 노인. 평생을 그리 살아왔으니 자식들의 만류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노파는 엄동설한만 빼고는 날만 새면 밭고랑에 붙어 살며 철마다 온갖 작물을 다 심고 애나게 키워서 장날이나 새벽시장에 내다 판다. 그런 노파에게 대처에 나가 사는 자식이든 옆에 끼고 있는 자식이든 생활비고 용돈이고 대줄 테니 일 좀 그만두라고 어지간히 성화를 해도 노파는 맨날 "오냐 오냐" 빈 대답만 일삼을 뿐이다.
 
사실 산골 늙은이 살림이야 노파의 그런 벌이만으로도 그럭저럭 꾸려지겠지만, 따로 새 나가야 할 데가 있어 그리 녹녹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파의 속사정을 눈치로 대충은 알고 있다. 어느 집이고 여러 자식이 다 편안하게 잘 사는 예는 흔치 않다. 열 손가락 다 다르듯 한두 자식은 꼭 살림이 빠지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노파로서는 자식들이 꼬박꼬박 생활비를 준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마음도 편할 것 없다며 몸을 꿈적거릴 수 있는 동안은 자신의 요량으로 살겠다는 속내인 것이다.
 
그런 노파에겐 구근 한 알, 채소 한 잎이 여간 소중한 것이 아닌 것이다. 노파의 그런 사정을 안다면 농작물을 해코지하는 짐승들을 구박하는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훠이 훠이 쫓는 것까진 그렇다 하더라도 간간히 뿌린 떡밥에 산짐승들이 죽어나가는 걸 목도할 때는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집 마당에 날아든 올빼미. 무슨 이유인지 날지도 못하는 걸 삼사일 돌봤더니 기력을 차렸다.
한 달쯤 됐을까. 집 마당에서 난데없이 올빼미 한 마리가 푸드덕거렸다. 날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그냥 두면 들고양이에게 당할까봐 급히 우리를 만들어 물을 떠 주고 잘게 썬 고기도 넣어주며 삼사일 건사해 기력을 회복시켜 날려 보낸 적이 있다. 지금의 농촌에선 채소든 과수든 농약을 안 치고 무슨 농사가 되나,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작물에 농약을 친다. 또 쓰고 난 농약용기가 논두렁 밭두렁 구석구석에 널브려져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거의 안 한다. 심지어 비닐이고 뭐고 마구 태우고, 안 타는 쓰레기는 땅에 파묻고 만다. 이게 농촌 환경의 실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딱히 그 올빼미가 노파의 떡밥에 당한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암튼! 공기 맑고 물 좋은 산골은 옛말이다. 지금의 산골은 예전 같은 청정지역이 아니다. 대도시에 인접한 산골은 여기고 저기고 대동소이할 게다. 공기 탁한 도시를 벗어나자고 온 곳이란 게 '호랑이를 피하면 호랑이 굴을 만난다'더니 딱 그 꼴이다. 마을 건너편 산기슭이 파란색 공장 지붕으로 뒤덮인 것으로 봐서는 내 집 있는 이쪽도 얼마 못 가 점령될 게 불 보듯 뻔해졌다. 이대로 눌러앉아 살아야 할지 더 깊은 산골을 찾아봐야 할지, 심란한 마음이 잦아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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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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