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주 김해문인협회 회장·인제대 행정실장
가끔 열차를 탈 때가 있다. 그때는 양복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시집을 한 권 챙겨서 간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책은 거추장스럽지 않아 쉽게 꺼내어 조용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는 열차 안에서 책을 보면 멀미 증세가 와 얼마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사람다워지기 위해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최근에 볼일이 생겨 KTX를 타고 서울에 다녀왔다. 열차표를 예매할 때는 옆자리에 누가 앉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늘 일어난다. 옆자리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앉으면 좋으련만 번번이 기대는 어긋난다. 이번에도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어 총질하는 게임을 시작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야 총질은 끝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승객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게임을 하거나 간혹 한두 사람은 스마트폰에 연결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멋쩍게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페이지 읽고 나니 눈도 침침하고 멀미 증세가 났다.
 
조용히 책을 덮고 천장에 매달린 TV로 눈을 돌렸다. 뉴스에서 정치인이 뇌물을 받고 잡혀갔다는 내용, 큰 기업이 경영권 문제로 부자·형제간 다투고 있다는 내용, 어느 학교에서 성폭력이 있었다는 내용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사람답지 않은 행동들이 부끄러워 창밖으로 눈길을 돌려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웃의 어느 나라는 달리는 열차와 지하철 안에서 시민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고, 다른 이웃 나라는 24시간 개방하는 서점이 성황을 이루어 거기에서 밤샘으로 책을 읽는다고 하고, 또 다른 나라는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책을 읽지 않을까? 옛날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 식량이 떨어져도, 비바람이 들이치고 눈이 와도 책 읽는 선비가 많았다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왜 이렇게 책을 안 읽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유구한 역사를 써 온 힘은 이웃의 나라들보다 뿌리 깊은 우수한 문화와 책 읽는 선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는 마당에 앞날이 슬슬 걱정된다. 현대에 와서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발달은 책을 멀리하게 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읽는 수고로움보다 보고 듣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 듣는 즐거움은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읽는 수고로움으로써 교양을 높이고 풍부한 감성이 길러지며 나아가 아름다운 사회가 이룩된다.
 
천장에 매달린 TV에서 이제는 이상한 광고가 들려온다.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비디오를 무제한 공짜로 볼 수 있게 제공한다는 광고다.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결국은 사람의 정서를 황폐화하겠다는 뜻으로 비쳐 내게는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책을 공짜로 무제한 볼 수 있게 했다면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뉴스에서 언급한 좋지 못한 소식들은 책을 읽지 않은 데서 오는 도덕 불감증에서 기인한다.
 
TV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과 환하게 불을 밝힌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읽는 모습 등 독서문화와 관련한 내용을 자주 보여준다면 좋지 않을까? 신문에서도 책을 소개하고 인생에서 책의 영향으로 삶이 바뀐 내용을 싣고 추천한다면 책을 읽는 사람이 늘지 않을까? (<김해뉴스>는 문화면에 책과 관련한 좋은 글로 한 면을 통으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주위의 곳곳에서 책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을 멀리하게 하는 매스컴과 열차 안에 읽을 만한 책 한 권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환경이 못내 유감이다.
 
책 읽기에 좋은 계절 가을로 접어들었다. 흔히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이는 책 읽는 것이 사람의 도리로 당연하기에 굳이 취미의 범주에 들여놓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요즈음은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떠나 드물 정도다. 많은 사람이 독서가 취미가 되어 책 읽기를 즐기며 살아가야 문화가 강한 행복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