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삼아 운동장 가장자리를 박음질하듯 걷는다. 한 바퀴 돌고 먼 산 한 번 쳐다본다. 산은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고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이 없다. 연두는 세월이 지나면 초록으로 변하고 초록은 다시 주황으로, 주황은 나뭇잎으로 다 떨어져 버리고 나목(裸木)의 색으로 남는 것이 계절의 색깔인 것 같다. 따뜻한 봄날의
정월 대보름달을 볼 수 없다는 일기예보가 야속했다. 가족의 건강과 김해시민의 안녕, 나아가 남북관계가 불안한 우리나라의 평화를 달님께 빌어야 하는데… 날이 흐려 하늘이 살짝 내려앉은 듯한 저녁나절에 척사(擲柶)대회가 있다는 친구의 서실로 향했다. 서실에서 귀밝이술과 산나물에 오곡밥을 먹고 편을 갈라 척사대회를 했다. 신명나는 윷놀이 두어 판에
그가 쓰는 시와 수필이 좋아 내가 따르는 시인 한 사람이 마산에 살고 있다. 가끔 마산으로 찾아가 형, 동생 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다. 새해 들어 부탁한 원고를 잘 써 주어 감사 인사도 드릴 겸 마산을 찾았다. 이번에도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은 축하를 받아야 할 일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해에 신청한
푸른 초원 위에서 양 두 마리가 풀을 뜯는 그림에 '康安萬事如意(강안만사여의·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연하장을 친구로부터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을미년의 마지막을 맞았다. 를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들도 연초에 계획한 일들을 모두 이루셨는지 궁금하다. 많은 일을 계획하고 실천한다고는 하였으나
김해는 비교적 '젊은 도시'로 불린다. 김해 시민 평균연령은 35.7세로 전국 평균 38.1세보다 2.4세 정도 낮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영·유아나 어린이 인구도 많은 편이다. 올해 11월 들어 김해를 전국에 알린 좋지 못한 뉴스가 한 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 사건으로 생각된다. 내용
국화의 계절이다. 국화 하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와 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국화 옆에서'는 시에서 중요시하는 낯설게 하기의 본보기로 배웠다. 시인은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 국화라고 했으니 낯설다. 은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일본문화의 틀에 대해 1944년 6월
가끔 열차를 탈 때가 있다. 그때는 양복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시집을 한 권 챙겨서 간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책은 거추장스럽지 않아 쉽게 꺼내어 조용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는 열차 안에서 책을 보면 멀미 증세가 와 얼마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사람다워지기 위해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최근에 볼일이 생겨 KTX를
천명에는 대략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는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이고, 둘째는 타고난 운명이며, 셋째는 하늘의 명령이다. 이 뜻을 두고 볼 때 두루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이라고 했을 때 죽음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죽음은 삶에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부분으로, 어떻게 아름답게 살다가 죽느냐가
장정 소포는 군에 보낸 자식의 어머니들을 눈물짓게 한다. 그 옛날 나의 어머니가 그랬고 현재 나의 아내가 그렇다. 아내는 며칠째 거실에 놓여 있는 장정 소포를 보면서 눈물짓고 있다. 지난 4월 말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육군훈련소에 다녀왔다. 아들이 어느덧 성년이 되어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입대를 시켰다. 아들은 군에 가기 위해 지원을 네 번 하여
김해에 터를 잡고 살아오는 동안 강산이 세 번 변했다. 살면서 김해의 공간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참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김해는 김수로왕이 세운 가락국의 도읍지로 우리나라의 도읍지인 서울과 지형적으로 닮은 점이 많았다. 풍수에서 길지(吉地)의 중요한 요소가 첫째는 산이고, 둘째는 물, 셋째는 방위이다. 이 세 요소의 배치와 형상 및 조합에 따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어 더 더웠다. 아들은 무던한 성품은 좋았으나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걱정이었다. 아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자식 키우기가 내 마음 같지 않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공공연히 아들에게 "너도 결혼해서 너 닮은 자식 한번 낳아봐
친한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감상이 오갔다. 영화를 대부분 보았는지 모두 한마디씩 느낌을 말했다. 한 후배가 "영화 '국제시장'은 제목이 '아버지의 인생'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대해 다른 의견이 없었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말했듯이 국제시장은 하나의 배경이었다. 주인공 덕수(황정민
을미년 새해가 밝은 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새해 들어 각자가 새 각오로 이루고자 한 일들이 잘 실천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까지 잘 지켜가며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작심삼일'로 벌써 포기한 사람도 있을 터이다. 매년 새해의 출발선에 서면 나도 남들처럼 계획을 세우고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연말에 가서는 대체로 성공하지 못해 허무한 마음을 지
지난달에 에서 시행하는 NIE(신문 활용 교육·Newspaper In Education) 시범학교 교육사업 '우리 지역 언론인과의 만남'의 강사로 김해고등학교에 다녀왔다. NIE 시범학교 교육사업은 경남도에서 지원하는 지역신문발전 지원 사업 중 하나다. 김해지역 NIE시범학교인 중·고교를 대상으로 지역신문에
슬하에 대학생 딸과 아들을 두고 있다. 둘은 2학기 들어 부쩍 귀가가 늦었다. 나는 밤 11시를 넘기지 말고 들어오라고 했다. 11시가 넘어가면 조심해서 빨리 들어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들어오기 전에는 아내와 내가 번갈아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린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은 밥상머리에서 종종 "아빠는 너무 보수적이야"하고 말을 하곤 한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를 다녀가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도적질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존경하는 고해 신부의 작은 십자가를 훔쳐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직자들은 신도에게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성직자들도 사람인 이상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기에 남에게 용서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시골 초
나의 선조 양사언 할아버지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로서 오르고 또 오르면 사람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고장 김해에는 사람이 아무리 오르려 해도 오르지 못할 뫼가 두 개 있다. 사춘기 시절 나는 뒷동산을 자주 올랐다. 시골집 뒤란을 지나 산마루에 오르면 금줄을 두른
해마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축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이 축구 경기를 통해 울분을 달랜 이유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광복절 날 면 소재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한 마을 대항 축구대회 때문이다. 대략 여남은 개 마을에서 동네청년들을 주축으로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여 팀을 꾸려 자웅을 겨루었는데 그 풍경이 아련하다. 잡초가 듬성듬성 나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서는 것으로 본다. 실존에 있어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로서가 아니라 개인이 처해있는 현실 속에서 개별적 '존재'로 이해된다. 개별적 존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하나를 택하여 불안으로 삶을 살아간다. 살아가는 일이 시시포스 신화처럼 바위를 산으로 밀어 올리고, 올리고 나면 굴러 내려오고, 또 밀어
솔베이지의 노래처럼 애절한 기다림이 없어도 여름이 찾아왔다. 지난 5월 가정의 달은 세월호 사고 여파로 여느 달보다 차분했다. 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이리라. 가정의 달 5월은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달이다. 모 라디오 방송에서 가정의 달 특집으로 '가족의 탄생'이란 슬로건으로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소개해주는 내용을 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