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주 시인·인제대 행정실장
운동 삼아 운동장 가장자리를 박음질하듯 걷는다. 한 바퀴 돌고 먼 산 한 번 쳐다본다. 산은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고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이 없다. 연두는 세월이 지나면 초록으로 변하고 초록은 다시 주황으로, 주황은 나뭇잎으로 다 떨어져 버리고 나목(裸木)의 색으로 남는 것이 계절의 색깔인 것 같다. 따뜻한 봄날의 연두는 수채화처럼 내 몸으로까지 번져 가슴속에 자리한 봄의 사람까지 생각나게 한다.
 
그 사람은 수필을 쓰는 내게 너무나 큰 영향을 주었다. 정작 자신은 영향을 준 일도 없을뿐더러 알지도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대학의 교수로서 미래의 꿈과 삶에 힘을 주는 말을 제자들에게 많이 해주었음에도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만큼 겸손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람의 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삶의 모습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가 쓴 글은 살아온 소박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주옥같이 담아내어 큰 감동을 주었다. 무한 긍정의 에세이는 전범(典範)이 되다시피 했다. 나는 글을 시작할 때마다 에세이집을 뒤적이는 습관이 있다. 그러면 써지지 않던 글도 몇 줄 더 나아간다. 그의 삶은 주어진 환경에 맞서 시련을 이겨내는 희망의 메신저였다.
 
그 사람의 모습은 또 어떻고. 단발머리에 늘 미소가 가시지 않는 표정이다. 거기에 자기가 앓았던 소아마비가 천형(天刑)이 아닌 천혜(天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소녀였다. 소아마비로 다섯 살 때까지 앉지도 못하고 누워있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엄마의 등에 업혀 학교에 갔다고 했다.
 
이후 평생 목발에 의지해 삶을 살면서 암을 두 번씩이나 이겨내고 세 번째 암으로 돌아가셨다. 죽을 고비를 넘나드는 투병 중에도 책을 읽고 좋은 책을 집필하여 세파에 지친 우리의 가슴을 문학으로 위무해 주었다. 생활반경이 좁아 글감이 부족하면 숨김없이 마음을 고백하는 글을 쓰고 독자를 고해성사의 사제(司祭)로 모셨다던 그 사람, 사진으로 보았지만 천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친구를 생각하는 우정 또한 남달랐다고 한다. 김점선 화가와의 우정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수필가와 화가로 만나 문학을 이야기하며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암을 앓다가 따뜻한 봄날 친구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는 그 모습에서 사귐은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서강대학교 장영희(1952.9~2009.5) 교수가 장애인으로 영문학자로 문학을 사랑한 수필가로 삶을 살다가 떠난 지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흐르는 세월에도 아랑곳없이 고통 속에서 봄꽃같이 피워낸 글로 인해 내가 글을 쓰는 동안에는 생각이 날 것 같다.
 
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 중에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삶을 살다 갔거나 사는 사람이 많다. 책을 통해 아는 사람 중에서도 베토벤,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오토타케 히로타다, 닉 부이치치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지만 존경할만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장애인으로(장애인이 아닌) 제일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불굴의 의지로 성실하고 용기 있게 살다간(그냥 인간으로 불리길 원하는) 우리나라의 고(故) 장영희 교수이다.
 
장 교수는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습니다.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데는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데는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아름다운 삶으로 투자를 해서일까? 내 가슴속에 자리하는 장영희 교수는 잘 잊히지 않는다. 우리도 남에게 잊히지 않는 삶에 투자해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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