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주 김해문인협회 회장·인제대 행정실장
그가 쓰는 시와 수필이 좋아 내가 따르는 시인 한 사람이 마산에 살고 있다. 가끔 마산으로 찾아가 형, 동생 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다. 새해 들어 부탁한 원고를 잘 써 주어 감사 인사도 드릴 겸 마산을 찾았다. 이번에도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은 축하를 받아야 할 일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해에 신청한 명예퇴직이 이제서야 받아들여져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30년 가까이 지켜온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가슴 한편이 짠했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교단에 섰을 터인데, 그 직업을 그만두는 마당에 축하할 일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도 좋아하는 시를 실컷 쓸 수 있게 됐으니 좋지 않으냐, 사람이 물러날 때도 알아야지 하면서 굳이 축하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시인의 마음은 진심이었겠지만, 나로서는 마지못해 마음에도 없는 축하를 했다.
 
그와 술을 마시며 교단에 처음 섰던 일, 학생들과의 추억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근처에 있는 무학산을 자주 오르는데, 높지는 않지만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면서 오르길 권했다. 거기에는 고운봉이 있다고 했다. '최초의 시인'이라 불러도 무방한 신라시대 최치원이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했다. 그는 그러더니 뜬금없이 선문답 같은 질문을 했다.
 
"산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래서 "산이 존재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산이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산은 무학산처럼 높지 않아도 아름다움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했다.
 
학교사회에서 대학은 총장, 초·중·고등학교에는 교장이 있다. 총장은 교수, 교장은 교사 신분이다. 교수보다 높아서 총장이 되고, 교사보다 높아서 교장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총장은 교수사회에서, 교장은 교사사회에서 태도가 아름다운 사람이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그냥 넘겨들을 수도 있었지만, 큰 깨우침으로 다가왔다. 그는 술을 한잔 기울이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글귀를 하나 주겠다고 했다.
 
거기에는 '山不在高, 有仙則名(산부재고, 유선즉명)'이라는 복사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있으면 이름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당나라 유우석(772~842)이 지은 '陋室銘(누실명)'의 첫 구절이다. 누실명은 글자 그대로 누추한 집을 새긴다는 뜻이다. 자기를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지은 시다.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수부재심, 유룡즉령. 사시누실, 유오덕형)'이 된다. '물은 깊음에 있지 않고, 용이 있으면 영험하며, 누추한 방에는 오직 나의 향기로운 덕이 있을 뿐'이라는 내용이다.
 
김해는 총선과 김해시장·시의원 재선거로 어수선하다. 예비후보가 20명 가까이 등록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한 것 같다. 그 이유를 물으면 누실명의 글귀로 대신하고 싶다. "사람도 산이나 물과 마찬가지로 인품은 높이와 깊이에 있지 않고 사람의 태도 즉 아름다움에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으로서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면 누추한 곳에 가더라도 맑은 향기를 피워 올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학을 하는 문인들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은 저술 권수에 있지 않고 내용에 있다. 내용이 좋지 않은 책을 많이 출간하는 것은 종이 낭비로서, 환경을 해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마산까지 시인을 만나러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글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의 태도가 좋아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 가든 태도가 아름답고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도록 모름지기 힘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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