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동포회 오철암·조동진 씨

러시아 고려인 추석은 양력 8월 15일
마을 뒷산 절 터 모여 잔치마당 벌여


"해마다 8월 15일이 되면 사할린 전역이 들썩여요. 너나 할 것 없이 추석과 해방절을 즐기지요."

김해사할린동포회 오철암(72) 회장의 말이다. 그는 러시아 사할린 마카로프에서 태어난 고려인 1세대다. 부모의 고향은 경남 합천이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 4월 일본이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하기 시작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강제징용은 심해졌다. 그해 오 회장의 부모는 부산을 거쳐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오 회장은 조선인 50가구가 모여 살던 마카로프에서 1943년 태어났다.

▲ 사할린 동포 오철암(왼쪽) 씨와 조동진 씨가 고려인의 추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삶의 터전은 바뀌었지만 한국의 문화는 사할린에서도 꽃을 피웠다. 1990년 9월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수교가 이뤄지기 전까지 사할린의 고려인에게는 북한이 더 친숙한 존재였다. 음력보다는 양력 문화가 더 익숙했기 때문에 한민족 최대 명절로 꼽히는 추석은 사할린에서는 양력 8월 15일이 됐다.

오 회장은 "8월 15일은 참 풍요로운 날이었다. 어릴 시절 추석 때 어른보다 큰 그네를 보고 황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찌나 크던지…. 마을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씨름을 했다. 1등을 하면 상품으로 송아지를 가지고 갔다"고 회상했다. 사할린의 8월 15일은 추석이면서 일본으로부터 러시아가 해방된 '해방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8월 15일은 고려인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기다리는 기념일이다.

오 회장은 "마을 뒷산에 일본인이 지은 절 터가 하나 있었다. 추석이 되면 절 터는 잔치마당으로 변했다. 마을에서는 콩을 삶는 냄새가 구수하게 진동했다. 콩을 삶는 아주머니들 틈에서 따끈한 콩을 주워 먹기도 했다. 국시(국수)나 떡을 만들어 이웃끼리 나눠 먹는 날이었다"고 설명했다.

오 회장의 말을 듣고 있던 조동진(70) 씨도 추석 추억 보따리를 하나 둘 풀었다. 그도 1945년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태어나서 자란 고려인 1세대다. 그의 아버지는 1941년, 어머니는 1943년 강제징용을 당해 사할린에 갔다. 조 씨는 "한국의 추석과 마찬가지로 사할린에서도 집집마다 추석날 아침에 나물과 고기 등을 놓고 차례를 지냈다. 학창시절에는 차례를 지낸 뒤 조선학교에 가서 친구들끼리 공을 차거나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고 회상했다.

애초 고려인들만의 소박한 잔치였던 추석은 1989년 이후 규모가 커졌다. 이 때부터 해마다 사할린 주정부와 유즈노사할린스 시의 지원을 받아 야외경기장에서 추석 겸 해방절 행사가 진행됐다. 행사를 즐기는 인원만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고려인 뿐 아니라 러시아인 등 다른 민족도 참여했다.

김해지역 사할린 동포들은 해마다 6월이면 사할린으로 돌아간다. 사할린에 두고 온 가족, 친척을 만나 양력 추석을 보내고 9월에 다시 김해로 돌아온다. 조 씨는 "사할린에 가면 추석에 앞서 벌초를 한다. 추석날에는 성묘를 한다. 차례를 지내고 난 뒤에는 추석, 해방절 행사장에 간다. 유즈노사할린스크와 자매결연을 맺은 대구, 서울, 인천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와서 행사를 즐긴다"면서 "올해는 한국 가수들도 많이 가서 추석과 해방절을 축하했다"며 웃었다.

9월 한국으로 돌아온 고려인들에게 한국의 추석날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이들은 2012년부터 한국가스공사의 지원을 받아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거제도, 여수 등으로 관광을 떠난다. 오 회장은 "한국가스공사, 김해시, 경남도, 율하12주공 아파트 이경희 통장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한국에서 즐겁게 보내고 있다. 사할린 동포들에게 보내 주는 따뜻한 배려가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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