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언제나 겨울 장작 마련 궁리
무거운 고사목 끌어오느라 몸살까지

소나무 뒤에 참나무, 불때기도 요령
보일러 난방 길든 세대엔 불편해도
혈액순환 좋은 온돌방 건강에 최고

어릴 적 저녁 무렵 굴뚝 보고 부엌행
모정 담긴 보리쌀 한 움큼에 "헤헤헤"

가을 날씨는 낮에는 셔츠만 입어도 되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겉옷을 걸쳐야 할 만큼 밤낮의 일교차가 심합니다. 산골은 더합니다. 며칠 전부터 토굴에 군불을 안 넣고 그냥 자려니 새벽녘에는 추웠습니다. 아무래도 아래채 처마 밑에 쌓아놓은 장작을 좀 헐어 군불을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군불을 넣으려면 장작이 많이 듭니다. 토굴은 온돌구들인데 뭔 장작이 그리 드는지? 더구나 작업장으로 쓰는 아래채의 벽난로 땔감까지 더하면 빼곡하게 쌓아놓은 장작도 한겨울을 지내기에는 빠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이맘 때면 항상 장작을 장만할 궁리를 하게 됩니다. 지난해인가, '범어사 모 암자, 불법 진입도로 개설로 금정산 허리를 싹둑'이라는 제목의 부산일보 기사 중에서 무단 벌목한 현장 사진을 보고서는 '저 놈의 나쁜 암자! 저 놈의 나쁜 땡초'라고 구시렁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것 실어 와서 장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군불장작이 워낙 많이 들다 보니 겨울철에 나무만 보면 그런 소갈머리 없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난 열흘 동안 나무를 하러 뒷산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생나무는 베면 안 됩니다. 고사목만 베야 하며, 고사목일지라도 소나무는 안 됩니다. 소나무 고사목은 재선충 때문에 이동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결국 잡목 중에서 고사된 것만 골라야 하다 보니 일이 많이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렇지만 고사목 중에서 삭은 것은 퍼석해서 불살이 시원찮고 금새 타 버려서 못씁니다. 고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단단한 게 불살이 좋고 불길이 오래가서 좋습니다. 그런 고사목은 무겁기가 생나무와 매일반이어서 옮기는 데 애를 먹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다 보니 낑낑대며 끌어와 뒤뜰에 쌓느라 몸살이 다 났습니다. 그래도 한겨울 방바닥에서 뜨끈하게 지내자면 장작을 미리미리 확보해 둬야 하므로 매년 같은 고역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품이 숱하게 드는 그런 고생을 매년 감수하는 게 한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추운 겨울에 밖에서 언 몸을 금방 풀어 주던 온돌방에 대한 향수도 한몫 한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뭐니뭐니 온돌방바닥이 보일러방바닥보다 건강에 좋기 때문입니다. 보일러로 데운 방바닥은 윗목과 아랫목에 온도 차이가 없어 공기순환이 잘 안 됩니다. 그에 비해 온돌방바닥은 아랫목과 윗목에 온도 차이가 있으므로 기압차에 따른 공기 흐름이 용이합니다. 당연히 잠잘 때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니 몸에 이로운 것입니다.  

온돌을 놓을 때 한 가지 유의사항이 있습니다. 온돌방은 새벽녘에는 구들장이 식어 윗목에 떠다 놓은 자리끼에 살얼음이 얼 만큼 기온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칫하면 오들오들 떨게 됩니다. 단추 하나 누르면 언제라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보일러 난방에 길들여진 요새 사람들에겐 몹시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크게 염려할 것까진 없습니다. 황토층을 두껍게 하고 방 크기를 사방 여섯 자 내외로 하면 해결됩니다. 대개 아궁이 하나에 방고래를 세 골로 합니다. 방이 더 크면 아궁이가 두 개는 되어야 윗목까지 온기가 갑니다. 우리 집의 토굴 바닥에는 황토를 한 자나 얹었고 방도 사방 여섯 자에 맞췄습니다. 그래서 군불을 한 번 넣으면 이틀은 너끈하게 견딥니다.
 
또 하나, 군불을 넣는데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군불을 넣는다는 게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고 불만 붙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땔감 중에서 불살이 좋기로는 소나무가 으뜸이지만, 불살이 센 대신에 빨리 타 불길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반면에 참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불살은 약하지만 시름시름 오래 타고 잔불이 새벽까지 갑니다. 그래서 소나무는 처음 구들장을 데우는 초불에 좋고 참나무는 데워진 구들장이 식지 않고 오래 가도록 하는 뒷불땔감으로 적당합니다. 땔감 넣는 순서를 잘 따라야 새벽녘에 추워서 오들오들 떠는 낭패를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아궁이에 장작불이 오랜만에 지펴지자 토굴 한쪽에 세워진 굴뚝에서 아련한 추억을 담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토굴을 짓고 처음 군불을 넣을 때였습니다. 이웃사람이 일러준 대로 아궁이바닥에 불쏘시개로 '갈비'(솔가리·소나무 마른 잎)를 깔고 잔나뭇가지를 얹은 뒤 위에 장작을 두세 단 얹어 불을 댕겼습니다. 마른 갈비가 화약처럼 확 타면서 어렵사리 장작으로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그날 이후 몇 해 동안 장작에 불이 잘 붙고 아궁이에 불도 잘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탈이 났습니다. 늘 하던 방식대로 했는데도 웬일인지 불쏘시개만 타고 정작 장작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고 껍질만 태운 채 꺼져 버렸습니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습니다. 불쏘시개 갈비를 좀 많이 넣고 다시 해 봤습니다. 그래도 허사였고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눈이 따갑고 재채기가 났습니다. 더구나 아궁이 앞에 한참 쭈그리고 앉아 용을 쓰다 보니 허리도 몹시 아팠습니다. 더는 못 참고 매운 연기 때문에 나온 눈물을 훔치며 허리를 좀 펼 요량으로 아궁이에서 물러났습니다.
 
허리를 펴다가 굴뚝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굴뚝에 연기가 전혀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아궁이에 불이 안 드는 이유를 알아차렸습니다. 굴뚝이 막힌 모양이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토굴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 구멍에 긴 대막대기를 넣어 쑤셨습니다. 그러나 쉽사리 뚫리질 않았습니다. 처마의 낙수가 주춧돌 깬다더니, 미세한 그을음이 쌓여서 굳어 굴뚝이 단단히 막혀버린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낫으로 대막대기 끝을 죽창처럼 뾰쪽하게 깎아서 한참을 더 쑤시고 나서야 겨우 뚫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뒤 지붕에서 내려와 다시 아궁이에 불을 넣어 봤습니다. 이제서야 장작에 불이 잘 붙고 불길도 아궁이 깊숙이 잘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온돌방 군불 넣기는 장작 마련에서부터 굴뚝청소까지 이래저래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아궁이에 뒷불용 참나무 장작을 너댓 개 더 집어넣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굴뚝연기를 바라보노라니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배가 출출한 저녁 무렵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부엌에 들어가면 보리쌀을 삶아 소쿠리에 담고 있던 어머니가 보리쌀 한 움큼을 건네주곤 하였습니다. 좀 설익기는 해도 오돌오돌한 보리쌀은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에 우선 허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다가 '그래! 아궁이에 불이 있고 솥도 걸려 있겠다, 예전에 삶은 보리쌀 한번 먹어 볼까나'하고 본채의 할멈더러 보리쌀을 물에 좀 불려놓으라고 일렀습니다. 그랬더니 할멈이 "먹을거리 귀하던 그 시절에나 먹었지, 지금 뭔 맛으로 먹는대요"라며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에 질세라 저는 "누가 맛으로 먹는다 했나? 추억을 한 움큼 먹겠단 거지"라고 한 구절 구시렁댔습니다.




김해뉴스


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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