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직 잠든 새벽에 김해의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 버스와 경전철을 타고 직장이나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다. 거꾸로 밤새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활기찬 김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새벽 첫 버스, 첫 경전철을 타고 김해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만났다.

오전 5시… 시내버스 첫차 출발
정류장엔 벌써 출·퇴근하는 이들
총총걸음으로 전조등 불빛 반겨


오전 4시 30분. 아직 김해는 깊이 잠들어 있다. 밝은 달빛 아래 줄 지어 서 있던 삼계동 버스차고지의 전광판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털털' 소리와 함께 1번버스 기사 서현수(55) 씨가 적막을 깨며 차에 시동을 건다. "날씨가 추워져서 출발 전에 버스 엔진을 켜 놔야 합니다. 버스 운행 전에 배부터 든든히 채웁시다."

서 씨는 구내식당으로 들어간다. 갓 지은 쌀밥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그를 맞이한다. 1번버스는 운전기사 2명이 일주일 단위로 오전, 오후로 교대 운행한다. 오전 운행은 오전 5시에 시작해 오후 1시에 끝난다. 서 씨는 "오전 운행을 하려면 4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 매일 하던 일이다 보니 이제는 힘든 줄 모르겠다"며 서둘러 식판을 비운다.

▲ 1번 버스기사 서현수 씨가 새벽 첫차에 시동을 걸고 있다.

오전 5시. 서 씨가 운전대에 앉았다. 주황빛 전조등으로 어둠을 가르며 첫 시내버스 운행을 시작한다. 버스 차창 밖으로 형광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원이 도로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밤 도시가 내뱉은 토사물을 묵묵히 치우고 있는 중이다.

차창 밖 풍경이 여러 번 바뀐 뒤 삼계동 동원로얄듀크아파트 정류장에서 첫 승객이 탑승했다. 부원동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정은(40·여) 씨다. 그는 "오전 6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오전 근무를 하려면 첫차를 타야 한다. 피곤하지만 일찍 출근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박은영(45·여) 씨가 소형카트를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오른다. 밤새 장사를 하다 이제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얼굴에는 고단함이 가득했다. 그는 "첫 차에는 늘 같은 사람들이 탄다. 밤 새 뜬 눈으로 지샌 경비원,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한 청소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들"이라며 웃는다.

버스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삼계동 매정공원 정류장에 다가간다. 멀리서 주황빛 전조등을 빛내며 달려오는 버스를 발견한 사람들이 총총걸음으로 버스를 반긴다. 삼계동에서 야간근무를 선 뒤 퇴근하는 경비원 윤기현(70) 씨가 차에 올랐다. 그는 "하루 종일 일하다 퇴근한다"며 찬바람에 언 몸을 버스 창가에 기대 녹인다. 병원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이주순(53·여) 씨는 환자와 간호사, 의사의 아침식사를 챙기기 위해 첫 차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감하는 시민들을 태운 채 부원동으로 달렸다.

부원동에 들어서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안녕하세요." 박명자(62·여) 시가 서 씨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버스에 오른다. 그는 먼저 타고 있던 다른 여성들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이제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다. 더 추우면 뭐 입고 댕기노?" "오늘은 겨울 맛이 좀 나네", "아이고, 내가 탄다고 버스를 따뜻하게 데워놨나 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주제로 버스에 이야기꽃이 핀다.

▲ 첫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박 씨는 전날 오후 8시부터 오전 3시 30분까지 건물 청소를 하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이제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오다 가다 버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다 보니 첫차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람이 됐다. 가끔 첫차에 타야 하는 사람들이 안 보이면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면서 "오전 5시 30~40분 사이에 집에 도착한다. 얼른 따뜻한 방에 몸을 눕히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5시 38분. "이번 정류장은 이 버스의 종점인 안동 경남은행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버스 안에는 승객이 하나도 없다. 서 씨는 40분 넘게 버스를 운전했지만 쉬지 않고 지내동으로 다시 달린다. 그는 "오전에는 쉬지 않고 버스를 운전해야 한다.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사정 때문에 늦을 수도 있다. 조금만 늦으면 승객들이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투덜댄다. 승객들은 지각할까 봐 조바심에 그런 말을 한다"며 운전대를 꽉 잡았다.

"활기찬 아침입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인사와 함께 지내동에서 삼계동까지 다시 버스 운행이 시작됐다. 서 씨는 "운행 중에 라디오를 크게 틀면 안 된다. 운전기사의 눈은 앞을 보고 귀는 뒤를 향해 있어야 한다. 뒤에서 '쿵' 소리라도 나면 승객이 넘어지지는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차가 왜 이리 늦어요?" 오전 5시 55분. 안동육거리 정류장에 서자 마자 버스에 올라 타던 승객이 인사 대신 불평을 털어놓는다. 다른 승객들도 그의 불평에 동조한다. "그러게, 오늘은 첫 차가 늦네요. 6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이를 어쩐담." 승객들의 투정 어린 말도 잠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모인 버스 안은 다시 동네 사랑방처럼 변한다.

"요즘 통 안 보이더니 어디 갔었수?", "매일 출근했어요. 오늘 버스가 조금 늦게 온 덕분에 이렇게 만났네요." 버스의 빈자리가 하나 둘씩 다시 채워졌다. 정류장마다 승객들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삼계동 종점에 가까워지자 승객들로 가득했던 자리는 다시 비워졌다.

어두운 도시를 비추던 새벽달은 지평선 너머로 기울었다. 오전 6시 30분. 버스는 다시 삼계동 버스차고지로 돌아왔다. 차의 시동이 꺼졌다. 김해 시내를 달린 첫 차 운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저기 멀리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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