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창수 대금 이수자가 직접 만든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봄비가 대나무 잎을 흔든다. 몸을 파르르 떨며 댓잎이 깨어난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금 소리. 대밭 한 가운데에 시멘트로 벽을 지어 세운 4층 건물이 서 있다. 대금 소리는 건물 안에서 맴돌다가 창문을 타고 밖으로 새어 나온다. 60대의 한 남자가 건물 안에서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대금 소리에 취해 방문객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내동 사거리에 있는 목창수(61) 대금 이수자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만드는 것에 손재주
스님이 대금 부는 모습 보고 매료
무형문화재 김동표 선생에게서 전수
18년 동안 연주도 하고 직접 만들어

“한 땀 한 땀 대금 만들 때 늘 설레 
만족할 수 있는 멋진 작품 꼭 만들 것”

목창수의 작업실 앞에는 차 한 대가 서서 문을 지키고 있다. 수문장 같다.
 

▲ 대금을 만드는 작업에 쓰는 공구들
작업실은 한 평 남짓. 한 순간, 대나무 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파릇한 청색의 대나무와 옅은 갈색의 대나무가 뒤엉켜 있다. 대나무 위에는 대패, 톱, 망치 같은 공구들이 걸려 있다.  작업대 위에는 대나무에 구멍을 뚫는 전동 기계가 있고, 지금 막 생명을 얻은 대금이 있다. 작업대 위쪽 벽면에는 차례로 순서를 기다리는 듯 대나무 10여 개가 걸려있다. 목창수는 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난로 위에 놓아두었던 따뜻한 고구마와 귤을 대접했다. 대나무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쓴 냄새가 난로의 온기에 섞여 코 안으로 들어왔다.
 
목창수는 어린 시절부터 만드는 데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중학생 시절에 정교하고 큰 배 모형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꽤 좋았던지 완성된 배 모형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목창수가 대금을 접한 건 우연이었다. 그는 40대 초반까지는 고서와 미술작품의 가격을 책정하고 다루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아는 스님이 대금을 부는 모습을 보고 대금 소리에 매료돼 버렸다.
 
"대금 소리가 저에게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대금 소리에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대금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먹고 살기 바빠 선뜻 시작을 못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스님의 대금 소리를 듣자 마치 운명처럼 어느새 손에 대금이 들려 있었죠."
 
그는 그 일이 있은 직후부터 학교 선배에게서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기초를 익힌 뒤로는 더 욕심이 났다. 그래서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보유자인 김동표(73) 선생을 찾아 갔다. 그에게서 본격적으로 대금을 사사한 뒤 전수관을 열 수 있는 이수자 허락을 받았다. 그는 내동 사거리에 있는 자신의 건물 4층에 전수관을 열었다. 전수관을 연지는 약 10년 됐다.
 
그는 '김해대금사랑회'도 운영한다. '김해대금사랑회'는 가야대학교 평생교육관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모임이다. 지금의 그는 주촌복지관에서 대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더 애착을 갖고 하는 일은 대금을 직접 만드는 것이다.
 
▲ 자연 건조중인 대나무들.
"대금을 불 때와 만들 때의 마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금을 불 때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신경을 쓰지만, 어째서인지 나중에는 그 소리에 제가 심취해 있습니다. 고요해지는 거죠. 대금을 만들 때는 언제나 설렙니다. 언젠가는 정말 좋은 대금, 내가 만족해 하면서 불 수 있는 대금을 만들리라는 목표가 있습니다."
 
목창수는 지난 18년 동안 해마다 대금을 100개 정도 만든다. 모두 한땀한땀 정성을 들여 수작업으로 만든 것들이다. 그는 대금을 만들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작업실에서 한 번 몰두하기 시작하면 밤을 새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대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나무를 채취하는 것입니다. 아무 대나무나 대금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대금으로 만들 수 있는 대는 두 개의 골이 있는 쌍골이어야 합니다."
 
그는 주로 남부와 영남지역의 대밭을 찾아 간다. 대나무 중 쌍골 대나무를 찾는 일은 심마니가 산삼을 찾는 일 만큼이나 힘들다고 한다. 쌍골 대나무는 대나무의 변이 종으로 항상 나는 곳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하루 온종일 재료를 찾아 다녀도 허탕을 치는 날이 다수이고, 운이 좋아야 서너 개의 대를 채취 할 수 있다며 아쉬워했다. 게다가 대를 채취할 수 있는 기간도 따로 있다. 매년 12월 초부터 약 보름간만 대나무를 채취할 수 있다. 그 이외의 기간에 채취하면 대가 다 자라지 못해 좋은 재료가 되지 못한다. 대나무는 뿌리째 뽑는다. 대나무를 뽑은 자리는 땅을 꼼꼼히 메워줘야 다음 해에 다시 그 자리에서 대나무가 잘 자란다고 한다.
 
채취해 온 대나무를 바로 대금으로 만들 수는 없다. 수분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약 6개월의 자연 건조시간을 거친다. 대나무를 건조시키고 나면 재료 선별에 들어간다. 대금을 만드는 데 좋은 대나무는 대 살이 두껍고 대의 굵기가 일정한 것이다. 또한 내경(대 내부의 구멍)이 일정해야 한다. 엄선된 재료는 이차적으로 곧게 펴는 작업에 들어간다. 대나무에 토치로 열을 가하면 대의 재질은 연해지고 겉껍질이 자연스레 벗겨져 깨끗하게 다듬어 진다. 대금은 곧아야 음이 일정하고 고르게 나온다. 열을 가한 대를 곧게 펴 고정시키는 장치에 일주일가량 고정시켜 놓으면 비로소 대금을 만드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 벽면에 걸린 대금들.
본격적인 첫 작업은 취구 및 지공, 청공을 뚫는 일이다. 대금에는 총 9개의 구멍이 있다. 소리를 내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 취구와 손가락으로 짚어 음정을 결정하는 지공 6개, 대금 특유의 유연하면서 장쾌한 음색을 만들어 주는 청공 그리고 음높이를 조절하기 위한 칠성공이 있다. 청공은 악기 중 대금에만 있는 부분이다. 청공은 취구와 지공 사이에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뚫는다. 청공은 갈대의 속막(청)을 붙여 막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청가리개로 구멍을 가린다.
 
다음으로 하는 일은 악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인 음정 맞추기다. 대금은 대마다 또는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음색이 다 다르다고 한다. 사람이 들었을 때 편안하면서 듣기 좋은 음색을 가진 대금이 좋은 대금이다. 마지막으로 대가 습기를 먹고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금의 내부를 락카칠을 해 코팅을 한다. 또한 대나무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줄을 감는 작업도 한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마치면 하나의 대금이 탄생한다. 대금 하나를 만드는 데는 대를 채취 하는 시간과 자연건조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한 달 내외가 걸린다고 한다.
 
목창수는 "특히 요즘엔 대나무를 구하기가 참 어렵다. 대밭을 밀어 공장들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중에는 실력자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대금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취재를 한 화요일에는 동창생들로 구성된 음악 밴드 '투투브라더스'의 연습이 있었다. 그는 연습실로 향하기 직전에 대금 한 소절을 연주해 보였다. 목창수의 대금 소리는 그의 작업실 문을 열고 나가더니 아스팔트 길 위에 뿌려지기도 했고, 길 가의 가로수를 타고 놀기도 했고, 차도를 쌩 하고 내달리기도 했다. 그는 홀로 대금을 연주했으나 고독해 보이지 않고 재밌는 놀이를 하는 듯 했다.

≫목창수/대금산조(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보유자 김동표 선생으로부터 전수관 개설을 인정 받은 이수자. 가야대학교 평생교육관에서 7년동안 학생 지도. 주촌복지관과 내동 전수관에서 매주 토요일 수업. 
 
김해뉴스 /강보금 기자 amon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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