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공간 '생의 한가운데' 박태남 대표가 책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 ‘생의 한가운데' 입구

복잡한 인간 이해하기 위한 장소 필요해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주인공처럼
주체적 존재 의미 만드는 공간 되길 소망

저명인사 강의에 골목 독서회까지
녹색평론 독자 모임·달달 인문학도 진행
에세이 쓰기 모임 결과물로 책 출판 계획

녹록지 않은 현실에 허덕일 때 많지만
인문학 대표공간 되는 그날까지 힘낼 터


'생의 한가운데'는 내동 금관대로 1365번 길에 있었다. 가정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좁은 골목길 중간에 외딴 섬 같은 하얀 건물이 있었다. 코발트 블루 색의 낮은 울타리가 하얀 외벽 건물과 대비되면서 시원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마당에는 식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부레옥잠, 수국, 허브 등등. 화단의 식물들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이슬비로 마른 목을 축이고 있었다. 흙 속으로 쏙쏙 흡수되고 있는 빗방울들은 마치 무언가를 공부하는 사람들 같기도 했다. 지식은 양분이라고 했던가? '생의 한가운데'를 찾는 사람들은 인문학의 비를 맞고 인문학에 흠뻑 빠져들려는 사람들이었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이른 아침시간이었는데, '생의 한가운데'에서는 인제대 하상필 교수가 진행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독이 한창이었다. 뒷자리에서 일단 수업을 지켜봤다. 10여 명이 디귿 자 형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돌아가며 책을 낭독하고 그 의미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 뒤 하 교수가 명료한 설명을 덧붙였다. 니체의 사상에 한발 다가간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이 끝나자 박태남 대표가 커피 한 잔을 기자 앞에 내려놓았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하 교수도 함께 앉았다. 하 교수는 약 6개월을 '생의 한가운데'에서 강연을 해 온 터였다. 먼저 하 교수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생의 한가운데'는 어떤 곳인가요?"
 
"'생의 한 가운데'는 생명의 터전과 같은 곳입니다. 인문학이 움트고, 성장하고, 개화할 수 있도록 하는 곳입니다. 지적 기대감을 유발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박 대표는 엷은 미소를 띤 채 하 교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생의 한가운데'를 만들기 전에는 삼계로얄작은도서관 관장으로 일했다. 그 때부터 인문학 강의에 대해 열정을 보였다. 현재 '생의 한가운데'에서 열리는 '달달 인문학 강의'는 박 대표가 관장으로 있을 때부터 시행해 온 것이다. 박 대표는 "도서관 관장으로 있을 때, '막걸리 인문학', '달달 인문학' 등 도서관과 빈 사무실 등을 활용한 인문학 강좌를 개최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이들과 생각이 다르고 공간의 한계를 느낀 탓에, 자체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이곳에 '생의 한가운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 내부에 있는 작은 카페테리아

그렇다면 박 대표는 인문학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인문학 공부는 자신을 위한 공부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자아가 뚜렷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더 성장하고 있는지, 자신이 나아진다는 게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질문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학문입니다. 복잡한 존재인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시간을 필요로 하죠. 단발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인문학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관점'도 바뀝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나갈 장이 필요했고,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녹아들어 번져나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하면 관점이 바뀐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박 대표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인기강사에게 열광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지속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인기강사에 연연하지 않고 프로그램에 집중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꽃이 아니라 군불 같은 것입니다. 인문학을 배우다보면,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 당하는 느낌에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복잡한 게 인간…."
 
박 대표가 문득 말꼬리를 흐렸다. 힘든 시간들이 떠올랐던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루는 연지공원에 산책을 갔습니다. 연지공원 평지에 똑같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는 일찍 꽃이 피었고, 어떤 나무는 늦게 꽃이 피었습니다. 각자 피는 시기가 달랐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처한 각각의 미묘한 자리마다 다른 빛이 비칠 수 있다, 모든 일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지금의 어려움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사람 위주의 운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서히 마음속에 꼬여있던 매듭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관점이 바뀌자 한 순간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박 대표는 지금은 사람 위주의 운영을 위한 에너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같은 다른 차원의 문제와 고민들을 안고 '생의 한가운데'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생의 한가운데'의 일주일은 바삐 흘러간다. 월요일 오전 10~12시에는 문개주 선생의 논어 강독시간이 마련돼 있다. 수요일 오전 10~12시에는 하상필 교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수업이 있다. 매월 둘째 넷째 목요일 오후 7시 30분~9시 30분에는 독서모임인 '골목 독서회'를 개최하고, 매월 20일 이후 금요일 오후 7시에는 '김해 녹색평론 독자 모임'을 갖는다. 이외에도 매달 한 번 '달달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어 초청강연을 연다. 인문 마실 영화보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하상필 교수의 강의 장면

박 대표는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더욱더 정열적으로 변해갔다.
 
"'생의 한가운데'가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인문학 공간의 이름을 '생의 한 가운데'라고 지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독일 여류소설가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게다가 능력까지 있는 남자가 있었지만, 그에게 의지하지 않고 편안함, 안락함과 거리를 두면서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갔습니다. 이 주인공의 삶이 이 공간을 만든 의미와 지향점입니다."
 
박 대표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평소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에세이 쓰기 모임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헤어지면서 박 대표가 손을 건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립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이곳에 오시기 바랍니다."
 
김해뉴스 /강보금 기자 amond@gimhaenews.co.kr


≫ 박태남/경북 상주 출신. 어린이책 시민연대 김해지회장, 김해교육연대 상임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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