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경흠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김해공항의 서북쪽 끝 부대 담장이 둘러쳐진 주변 마을은 그 이름이 칠점(七點)이다. 이 마을의 이름은 부대 담장 안에 일곱 개 가운데 겨우 한 봉우리 남아 있는 칠점산에서 나왔다. 칠점산은 1978년 부산으로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해의 상징으로서 수많은 시인묵객들은 김해를 그릴 때 삼차강(三叉江)과 함께 특히 이곳을 떠올렸다. 이제는 부산의 것이 되었으니, 김해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참으로 큰 자랑거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하나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안동에 있는 초현대(招賢臺)다. 모든 대가 그러하듯 초현대는 신어산(神魚山)에서 흘러내린 신어천 물가의 바위 언덕이다. 첩첩이 쌓인 바위 꼭대기에는 정자가 있고, 주변으로 숲이 빼곡히 들어차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을 선물하는 곳이다. 또한 서쪽 바위벽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어 풍광의 완성도를 더해주고 있다.
 
이 초현대는 초선대(招仙臺)라고도 한다. 김수로왕의 맏아들인 거등왕(居登王·재위 기간 199~259년)이 즉위하여 가락국을 다스릴 때 칠점산에서 악기를 타며 지내는 참시선인을 불러 바둑을 두며 노닐던 곳이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현재 남아 있는 마애불은 당시 거등왕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건물들이 막히고 일곱 개의 봉우리 가운데 하나만 남은 데다 그마저도 담장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 초선대에서는 칠점산이 잘 보였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신어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초선대와 참시선인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칠점산의 일곱 봉우리가 초록 연꽃잎인 양 동동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야말로 신선이 사는 곳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다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더욱 저 너머에 있을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환상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신선을 불렀다고 하면 초선대가 옳고, 현명한 사람을 불렀다고 하면 초현대가 옳다. 거등왕은 과연 이 신비로운 세계에서 신선을 만났을까, 현인을 만났을까?
 
신선이라고 알려진 참시가 어질고도 총명한 사람이기도 했다면, 참시는 단순한 거등왕의 신선놀음 상대를 넘어 정치적 조언자의 역할도 함께 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시선인은 햇빛 비칠 '참(日에 山)'자와 처음 '시(始)'자를 이름으로 하였다. 그대로 풀이하자면 '햇빛이 비치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아침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를 거등왕의 정치적 입장에서 생각하면 김수로왕에게서 시작된 가락국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왕위를 이어받은 거등왕 시대 초의 혼돈을 걷어내고 새로운 국가의 질서를 연다는 뜻이 된다. 이름 외에도 참시선인이 거등왕의 정치적 조력자로 역할하였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그가 악기를 탔다는 내용이다. <예기>에서는 '음악은 화합을 도모하고 예는 분별을 도모한다. 화합하면 서로 친해지고 분별되면 서로 존경한다. 음악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방탕해지고, 예절을 너무 강조하면 서로 멀어진다. 인정을 화합시키고, 풍모를 격식화하는 것이 예악의 목적이다'라고 하였다. 거등왕이 새로운 국가의 질서를 위한 예의 제정을 도모하자, 여기에 부응하여 음악으로써 예악, 즉 질서와 화합의 완성을 기하였던 사람이 바로 참시선인이다.
 
새로운 왕조의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중요한 바탕이 되는 경우는 대단히 많다. 예를 들면 신라 3대 유리왕의 '도솔가(兜率歌)'와 '회소곡(會蘇曲)'은 새 국가의 새로운 통치 이념 및 제도 정비와 맞물려 창작되었다. 또한 고구려 2대 유리왕도 '황조가(黃鳥歌)'라는 노래를 통하여 왕비 송씨의 죽음과 화희와 치희의 다툼으로 상징되는 분열된 당시의 상황을 화합으로 이끌어가고자 하였다. 향가(鄕歌) 가운데도 융천사(融天師)의 '혜성가(彗星歌)', 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兜率歌)', 충담사(忠談師)의 '안민가(安民歌)' 등은 국가의 위난을 극복하거나 정치의 일신을 도모하려는 노래라는 사실은 배경설화의 해석에서 뚜렷이 알 수 있다. <고려사>의 '악지'에 기록된 많은 노래들 또한 정치적 요구와 관련된 것들이 많을 뿐 아니라, 조선조 초기를 대표하는 악장은 정치적 화합을 위한 음악적 행위의 대표적인 것이다.
 
칠점산은 참시선인의 신선 세계요, 초현대는 거등왕의 인간 세계다. 그러나 거등왕이 불렀을 때 신선 세계의 참시선인은 인간의 세계인 초현대로 왔으며, 초현대에 온 순간 그는 신선이 아닌 거등왕의 고민스러운 현실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현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신선의 세계는 인간이 참으로 동경하는 곳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발을 뗄 수 없는 인간은 그곳으로 갈 수 없다. 그러니 신선을 인간의 현실로 불러낼 수밖에.
 
칠점산은 현재 부산에 속해 있고, 초현대는 김해에 속해 있다. 원래 두 세계는 둘이면서도 하나가 사라지면 둘 다 역할을 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다. 참시선인과 거등왕의 관계가 그러했듯 김해와 부산은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신선 세계의 아름다운 풍광과 정서를 유지하면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를 함께해야 할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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