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 인제대 교수.

600년 가야 도읍으로서의 전통이 있고 무려 53만 시민의 도시에 설마 시립박물관이 없었던가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선 오히려 생뚱맞게 들리는 제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와 위상을 가진 우리 김해에 김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걸어온 모습을 수집하고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시립박물관은 아직 없다. 국립김해박물관이 있고, 대성동고분박물관이 있어 시립박물관의 공백을 의식하지 못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고고학 전문박물관으로서 가야사의 장면과 가야인의 생활을 중요 유물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지만, 가야사가 김해 역사의 전부는 아니다. 가야 이후에도 김해에는 신라~고려~조선~근·현대를 거쳐온 1,400년이 넘는 역사가 있고, 이러한 역사는 오늘의 김해를 결정했던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시립의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대성동고분군의 조사 성과와 내용,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보여주는 차별성 있는 박물관으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가야사의 전부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 봉황동의 가락왕궁유적이나 주촌의 양동고분군과 대동의 예안리고분군 등과 같은 가락국사의 중요 유적조차 포함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며, 이미 개관 13년이 지나 궁핍하고 노화현상이 역력한 소형박물관이다. 이러한 전시와 시설로 김해시립박물관의 역할을 대신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주문이며 비문화적 발상이다. 2013년에 개최되었던 10주년 기념학술회의에서 필자가 대성동고분박물관의 확대 개편을 중심으로 시립박물관 설립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했던 것은 바로 이런 한계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의 제시였다.
 
풍문으로 듣게 되었지만 마침 지난 6월 말에 신임 허성곤 시장이 '박물관도시'를 선포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장군차박물관, 한글박물관, 문학·만화박물관의 설립 추진에 이어 시립박물관의 설립계획도 발표되었던 모양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의 주차장 부지에 오는 2020년의 완공을 목표로 68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라 한다. 그러나 부지선정과 예산규모에 대해서는 실망에 앞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잘못 발표되거나 잘못 전달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다.
 
2004년 개관의 경남도립미술관이 202억 원, 2013년 4월에 양산유물전시관으로 개관했다가 2014년 1월에 명칭을 바꾼 양산시립박물관이 190억 원 이상, 2012년 6월에 기존 의령박물관을 대신해 개관한 의령의병박물관에 10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경남도는 그렇다 하더라도 김해보다 규모가 작은 양산시는 물론, 2만 8,000명에 불과한 의령군의 절반에 불과한 예산으로 시립박물관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에는 놀라움과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시립박물관의 위상과 의미가 어떤 것인가, 또는 우리 김해시의 문화에 대한 인식과 수준이 어떠한 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예산규모로 실감이 가지 않는다면 경남도립미술관의 경남뮤지엄과 양산시립박물관의 위용을 찾아보면 좋을 것이고, 당장 우리 건축도자전문박물관의 클레이아크와 비교해 보아도 얼마나 걸맞지 않은 시립박물관을 구상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혹시 시청 한 구석 구지관 1층에서 김해의 시작에서 현재까지를 다이제스트로 전달하다 2월에 가야테마파크로 이전했던 '김해스토리뱅크' 정도를 시립박물관으로 계획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지난 달 말 김해시의회 4선의 박민정 의원은 5분 발언을 통해 김해시정 사상 처음으로 김해시사 편찬의 당위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였다. 인구 53만 명에 예산규모 1조 2,000억 원대의 김해시가 지금까지 자신의 역사를 정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며, 이제라도 김해시사의 편찬은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할 책무임을 설파하였다. 김해시립박물관의 설립은 김해시사 편찬과 보조를 맞춰 함께 가야할 최우선의 당면과제이다. 김해시사의 편찬이 흩어져 떠돌던 우리의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해 내는 일이라면, 김해시립박물관의 설립은 우리 김해인의 발자취를 유물이라는 물적 증거로 수집, 정리, 전시하는 일이다. 타 시군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김해시의 역사와 규모에 걸맞는 김해시립박물관의 설립이 계획되고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다만 '김해뮤지엄'처럼 '시립'이 붙지 않는 세련된 이름으로의 탄생을 기대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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