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서 일본 가는 항구들지금부터 2천 년 전에 가야인 들은 남해안 가야의 어느 항구에서 출발해서 일본열도로 건너갔던 것일까요? 지난번에 소개했던 것처럼 '삼국지 왜인전'이 전하는 대로 구야한국, 그러니까 지금 경남 김해의 항구에서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부산의 동래에서 창원, 마산, 고성, 거제, 사천, 진주, 하동에 이르는 남해안 지역에도 가야의 여러 나라는 존재하였고, 이러한 가야의 여러 나라는 제각각의 항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독로국은 동래가 아니다우선
■일본에 이르는 길한반도 남부의 가야에서 일본열도 서북단 규슈에 이르는 바닷길은 이미 1700년 전에 중국 사람 진수에 의해 기록되어있습니다. 3세기 후반 무렵에 펴낸 삼국지 '왜인전'의 첫머리에는 당시 중국 군현의 대방군(현 황해도로 추정)에서 한민족의 소국들이 있는 마한의 서해안과 변한의 남해안을 거쳐 일본열도 왜인들의 나라에 도착하는 경로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삼국지 왜인전에 기록된 뱃길회현리 엽전 화천이 주요 물증6세기 중반까지 활발한 교류일본 땅 이름 등엔 가야 흔적 "왜인은 대방 동남쪽의 큰 바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가야사를 찾으러 일본으로 갑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일관계지만, 일본고대사와 일본 열도에 널려 있는 고대문화유적은 오히려 가야사를 복원할 수 있는 보고입니다. 고대 일본에서 가야는 가야인들 자신이 떠나 온 고향이기도 했고, 선진국으로 '동경의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야에 대한 왜인들의 관심은 본토인 한국보다 훨씬 많은 가야 관련의 기록을 남기게 했습니다. 가야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던 흔적과 그 당시 일본 열도의 왜 왕권과 한반도 남부의 가야제국 사이에서 진행됐던 정치적 문화적
지난 11월 28일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정교과서 시안으로 를 공개하고, 지난달 23일까지 열람케 하면서 여론을 수렴했다. 그러나 지난달 27일에 발표한 내용은 국정교과서 채택결정 1년 유예와 검인정교과서 병행이었다. 에서 김해의 관심사인 가야사서술을 훑어 본 감상은 우선 '과거로 돌아간
온 나라가 요동치고 있는데 한가롭게 인도에 다녀왔다. 사실 한가롭다는 건 어폐가 있다. 최근 몇 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주제로 인제대 박물관대학이 기획, 운영했던 마지막 일정이었다. 평생교육프로그램의 주관자로서 현지답사까지 인솔할 책임이 있었다. 인도, 인도의 사람·역사·문화를 다룬 강의를 1년이나 듣고 두 차례 독서토론회, 음식&m
'최순실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광풍은 최 씨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부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어찌 보면 이화여대가 '최순실 난리굿'의 제1막이었던 셈이다. 우선 이 바람에 최경희 총장이 날아갔다. 대학 입시와 학사 부정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연지사였다. 최 총장은 벌써 사임해야 했을 사람이었다.
땅은 지진으로 흔들리고, 하늘은 태풍 '차바'로 거칠었는데, 우리 인간세상은 김영란 법 시행의 혼돈으로 괜시리 어지럽다. 각중에 오래 전 일본 유학 시절의 기억 두 가지가 떠올랐다. 먼저 유학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입관 전에 뵙기라도 해야겠는데, 마침 아내의 여권이 연장신청 중이어서 영사관에 묶여 있었다. 원래
낙동강은 김해의 강이다. 낙동강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경상도 상주의 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라 소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상주는 고려시대 지방행정조직인 12목의 하나였고, 조선초기에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경상도의 수부였다. 그래서 서울을 뜻하는 낙양(洛陽)으로도 불렸는데, 그 동쪽을 흐른다 하여 낙동강이라 했
600년 가야 도읍으로서의 전통이 있고 무려 53만 시민의 도시에 설마 시립박물관이 없었던가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선 오히려 생뚱맞게 들리는 제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와 위상을 가진 우리 김해에 김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걸어온 모습을 수집하고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시립박물관은 아직 없다. 국립김해박물관이 있고, 대성
"다 늙어 다니지도 못하거나 병들어 눕게 되었을 때 링거 꽂아주는 복지 말고, 다닐 수 있을 때 즐길 수 있는 문화 복지도 좀 해라!" 김해인으로 창원시의 공직에서 은퇴하고 인제대학교 박물관대학에 5년 동안 다니고 있는 허영하 선생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전자는 일반적인 사회복지를 말하지만, 후자는 보다 적극적인 문화복지를 이르는 모양
조선 세종 7년, 1425년에 편찬된 는 우리 김해인의 특징을 강간(强簡), 역농(力農), 호학(好學)의 세 단어로 표현하였다. 김해라는 자연지리적 공간에서 살아 온 김해인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했던 인문지리지의 기술이다. 기록자의 선입관이나 주장도 포함되었겠지만 400년 지나 1833년에 간행된 에도 똑 같이
대성동고분박물관에 내걸린 세계유산잠정목록 등재 축하 플래카드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저 혼자 나부끼고 있다. 2013년 12월 대성동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가는 대기명단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눈여겨 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 내용과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대성동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김해
우리나라에서 럭비는 전형적인 비인기종목이지만, 지난 해 9~10월 종주국 영국에서 열렸던 제8회 럭비월드컵은 FIFA월드컵과 하계올림픽 다음 가는 세계 3대 스포츠이벤트였다. 40여 일의 대회기간 내내 각국 응원단과 시민들의 물결로 영국 전역이 들끓었고, TV로는 209개국의 7억 7천200만 가구에 중계돼 수십억 명의 시청자들을 흥분케 하였다. 우리나라에
2010년 12월 1일 창간호부터 2년을 계속해 온 김해순례의 발걸음이 드디어 오늘 마침표를 찍는다. 시간에 쫓기던 자료찾기와 마을답사, 글짓기와 분량조절에 손톱을 깨물며 머리를 싸맸던 길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시내 9개동과 시외 1읍 7개 면의 역사와 사연 모두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더라도 시내의 중심 '분산'에서 시작했던 발걸음
고려~조선시대에는 김해에서 양산으로 가는 길을 황산도(黃山道)라 했다. 김해부의 남역(南驛, 김해시 삼정동)을 나서, 덕산역(德山驛, 대동면 덕산리)을 지나고, 월당나루(대동면 월산리)에서 낙동강을 건너, 양산군의 황산역(黃山驛, 양산시 물금리)까지 가는 길이라 황산도라 했다. 그러나 는 이미 가야와 신라가 군사적으로 충돌하던 전장을
지난 두 차례의 상동순례에서 돌아보지 못한 마을이 있다. 서쪽의 우계리와 남쪽의 묵방리다. 먼저 이 마을들을 돌아본 후에 김해 순례의 마지막 발걸음이 될 대동면을 찾아보려 한다. 상동면소재지에서 대포천을 따라 오르며 시내 좌우에 늘어서 있는 우계, 소락, 광재의 3개 마을이 우계리다. 소락교 서쪽 끝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소락2교(2002.6)로 대포천을
이른 아침 KTX로 서울을 가다 보니 지난번에 한탄만 거듭했던 감로사 터가 낙동강 너머로 따스하게 보였다. 아침 햇살 가득한 배산임수의 작은 마을이 그렇게 예쁘고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고려·조선시대의 명찰 감로사가 자리했던 이유가 새삼스러워지면서도, 절 대신에 가득 들어찬 공장들을 보며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김해 동쪽의 윗동네라 상동(上東)이라 했다. 지난 8월 현재 1천666 가구, 3천661명(남 1천981)의 주민 수는 김해에서 가장 적은 것이지만, 무척산 남쪽에서 신어산 북쪽에 걸쳐 있는 70.58㎢의 면적은 김해에서 가장 넓다. 그만큼 인구가 희박하다는 얘기인데, 입주공장은 무려 910여 개에 이르고 있다. 1개 공장에 최소한 10명의 근로자만 셈하더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이작들판이 아름답고, 들판의 북쪽 가장자리를 휘감아 도는 낙동강은 모처럼의 볼륨을 자랑한다. 김해 생림과 밀양 삼랑진 사이의 낙동강에는 5개나 되는 각양각색의 다리들이 걸쳐 있다. 생림 북부의 마사리, 안양리, 도요리를 돌아보는 생림순례의 마지막 발걸음은 낙동강에 얽힌 사연과 다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모양이다. 지난번에 걸음을
코발트블루의 가을 하늘과 순백의 면사무소가 이루는 콘트라스트가 눈부시다. 초록의 정원수들과 어울려 나래 펴는 학 모양 사무소 양쪽에 말끔한 보건지소와 복지회관이 있다. 일 보는 주민이 적어선지 너른 주차장의 시원한 공간이 방학 중의 학교 같은 분위기다. 맞은편에 일렬횡대로 늘어선 5기의 비석들은 고장의 전설을 얘기한다. 흔한 지방수령들의 송덕비이지만 맨 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