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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야는 일본이 동경했던 선진국”이영식 교수의 가야 찾아 일본 간다 ① 연재를 시작하며
  • 수정 2019.03.05 15:13
  • 게재 2019.02.26 14:30
  • 호수 411
  • 7면
  •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report@gimhaenews.co.kr)

 

 

 


우리가 잃어버렸던 가야사를 찾으러 일본으로 갑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일관계지만, 일본고대사와 일본 열도에 널려 있는 고대문화유적은 오히려 가야사를 복원할 수 있는 보고입니다. 고대 일본에서 가야는 가야인들 자신이 떠나 온 고향이기도 했고, 선진국으로 '동경의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야에 대한 왜인들의 관심은 본토인 한국보다 훨씬 많은 가야 관련의 기록을 남기게 했습니다. 가야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던 흔적과 그 당시 일본 열도의 왜 왕권과 한반도 남부의 가야제국 사이에서 진행됐던 정치적 문화적 교류는 수많은 물적 증거를 남겼습니다.

 

▲ 가야 시대 항구였던 김해 봉황동 유적지.

 

큐슈 등에 널려 있는 가야 유물 
고사기·일본서기에도 기록
일본 속 가야는 우리의 뒷모습




■가야 비추는 '두 가지 거울'
그래서 나는 가야사 복원에 기초가 되는 한국과 일본의 문헌적 고고학적 자료를 '두 장의 거울'에 비유하길 좋아합니다. 한국과 일본 열도 곳곳에 널려 있는 가야 관련의 자료는 한·일 양국 서로가 자신의 뒷모습을 비춰 볼 수 있는 또 다른 거울이 됩니다. 우리에게 '고사기'와 '일본서기' 같은 일본의 문헌 자료와 일본열도에서 출토되는 가야 계통의 유물들은 우리의 뒷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또 한 장의 거울이 되듯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우리나라의 문헌기록과 가야지역에서 출토되는 왜 계통의 유물들 역시 일본엔 또 다른 거울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가야사를 되살릴 수 있는 또 한 장의 거울을 찾으러 우리는 일본으로 가야 합니다.

 

 

▲ 2012년 6월 봉황동 유적지에서 발굴된 가야 시대 선박 옆면. 오른쪽 위편 사진은 일본 큐슈 미야자키현 사이토고분군에서 출토된 선박 모양 토기.



■기록·유물 대응한 객관적 복원
지금까지 '일본에서 가야 찾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극히 아마추어적인 관심에서 문자기록과 고고자료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하거나 땅이름과 민간 설화 같은 전승 자료에만 의지했던 '국수주의'나 '문화 우월론' 같은 시각과 방법으로 일관되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연재 역시 이런 자료들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엄밀한 사료 비판을 견뎌낸 문헌기록과 고고자료를 대응시켜서 정합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객관적 가야사의 복원을 꿈꾸려 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가야지역에서 출발하여 쓰시마와 이키섬을 징검다리로 대한해협을 건너서 큐슈를 출발점으로 서일본지역을 거쳐서, 고대 일본의 중심이었던 간사이 지역을 살펴보면서, 현대 일본의 중심지 도쿄가 있는 간토 지방까지 기행의 형식으로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다만 신문이란 좁은 지면 탓에 하나의 지역을 몇 개의 글로 쪼갤 수밖에 없을 수도 있고, 많은 사진 자료를 첨부하지도 못할 것 같은 제약도 있지만, 독자 여러분의 기억력과 상상력에 의지하고자 합니다.


■가야의 어원은 '가라'
'가야'의 어원은 '가라'입니다. '가라'는 '강가나 산자락의 마을'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로 '가야'의 다른 표기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경북 고령의 대가야 왕 하지는 서기 479년에 중국 양쯔강 하구의 남제까지 사신을 보내 자신을 '가라국왕'이라 소개했습니다. 경남 김해의 가야국 왕 수로는 나라를 세워 '가라의 나라'란 뜻으로 '가락국'이라 불렀습니다. 고려시대인 1076년, 요즘 김해시장 격인 금관주·지사는 가야의 역사를 '가락국기'로 기록했습니다. '훈민정음'에서 '나라의 말씀'을 '나랏말씀'으로 표기했던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렇게 '가라'는 '가야'의 어원이었고, 가야인들 스스로 주장했던 국명이었으며, '삼국사기·삼국유사·일본서기' 등에 '가야'의 다른 표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 옛날 배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항해를 재현한 모습.

■가야는 일본 최초의 외국
현대 일본어사전에서 '가라'에 해당하는 일본어 발음의 '카라(カラ)'를 찾아보면, '일본어 내지 일본문화를 모르는 외국인 또는 외국제의 물건을 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야의 가라 곧 카라는 일본에서 외국인이나 외국물품 또는 외국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일본에서 같은 발음의 '카라'에 대한 한자표기는 加羅 → 韓 또는 辛 → 唐의 순서로 변해 갔습니다. 원래 고대 일본어의 한자표기는 한가지 음에 대해 한가지 글자를 부치는 것으로 시작한 다음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면서 두가지 음 이상의 소리를 한가지 한자로 줄여서 표기하게도 됩니다.

현대 일본어에서 외국을 뜻하는 '카라'는 가야에서 비롯돼, 왜인들의 교류 범위가 넓어져 백제·신라·고구려를 상대하게 되면서 한(韓)의 종족이나 고대 한국을 뜻하는 '카라(韓)' 또는 그 한자의 의미와는 다르게 소리만 전하는 '카라(辛)'로 바뀌었다가, 7세기경부터 중국의 수나라나 당나라와 직접 통하게 되면서 외국을 뜻하는 대명사 '카라'에 '당(唐)'의 한자를 부쳐 표기하게 되었던 겁니다.


■가야는 고대 일본의 명품수출국
그래서 지금도 일본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최고급 외국제 물품, 이른바 명품을 말할 때는 '카라모노(唐物)'라 부릅니다. '모노(物)'가 물건이란 뜻이니 가야의 물품이 곧 명품이었던 시대가 있었던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쓰코시 백화점 같은 데서는 이런 명품브랜드의 '신상품'이 들어오면 '唐物入荷'라 쓴 현수막을 내려뜨리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야의 어원인 카라의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처음으로 가야와 접촉하고, 가야의 문물을 수입하던 전통에서부터 처음으로 외국이란 관념이 탄생했으며, 그 상대였던 카라 다시 말해 가야가 그 대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는 겁니다.


■가야는 가장 가까운 외국
이렇게 옛 가야사람은 왜인들이 최초로 만났던 외국인이었고, 그들로부터 선진 물품과 문화를 수입한, 외국의 대명사였습니다. 가야가 중국은 물론 삼한과 삼국을 제치고 가장 먼저 왜인과 교류하게 되었던 것은 그들과 가장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처럼 허리띠같이 좁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을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일관계의 시작은 바로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일본열도 서북단의 큐슈 사이의 교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해뉴스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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