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 복원이 뜨거운 화두로 등장했다. 가야사 복원이 주요 국정 과제로 채택되면서 시작된 일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해상 강국을 이루었던 가야. 무려 600여 년에 걸쳐 고구려, 신라, 백제와 어깨를 겨루면서 철기 문화를 꽃피웠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던 가야사. 김해, 함안, 고령 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멀리 바다 건너 일본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옛 가야인의 숨결을 찾아가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와 송원영 대성동고분박물관 팀장 등 두 전문가가 <김해뉴스> 회의실에서 만났다.

 

 

 

송원영 팀장(이하 송) : 고대사 연구가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삼국에 치중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가야사가 소외된 느낌이 있습니다.
 
이영식 교수(이하 이) : 정확한 지적입니다. 우리가 초·중·고교를 다니던 시절 국사교과서에서 언급된 가야 문화는 '가야금'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송 : 하지만 가야가 한반도 남부 낙동강 유역을 거점으로 이웃나라인 백제, 신라, 고구려 등과 경쟁과 교류를 거듭하면서 철기문명을 꽃피운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이 : 그뿐 아니라 대한해협을 건너 왜와도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해상왕국을 이뤘던 나라가 가야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가야를 비롯해서 고구려, 신라, 백제에다 왜까지 포함해 서로 경쟁하면서 패권을 다투던 열국쟁웅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송 : 이처럼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야사를 역사의 변방으로 취급하는 학계의 풍토는 자칫 균형감각을 잃은 연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 당연하지요. 그런 기존 학계의 좁은 시야 때문에 동북지역에서 천년 왕국을 이루었던 부여사가 중국사에 편입되어 버리는 아픔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가야사 역시 그런 공백을 틈타고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런 공백을 만든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먼저 반성할 부분도 많습니다.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송 : 동감합니다. 하지만 고대사를 연구할 수 있는 문헌 사료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으로 제한된 현실적인 한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 바로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임무가 아니겠습니까. 기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에 기록된 가야계 인물까지 발굴해서 잊혀졌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연구자들이 할 일이지요.
 
송 : 새로운 유물을 발굴해서 기존 문헌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할 고고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까지 발굴된 가야 관련 고분 등의 대부분이 각종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들이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한 후에 진행된 발굴 작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 발굴 작업마저 행정기관이 주도하다 보니 1~2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기초 체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습니다. 가야사 연구의 중심 무대가 되어야 할 고분군 분포 조사도 안되어 있고 가야인의 정체성을 확인할 형질조사도 안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 상대적으로 선진국인 일본과 비교할 때 객관적인 연구 수준이 뒤떨어지면서 그 격차가 확대되다 보니 국제사회의 시선이 일본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송 : 고대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뼈아픈 지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야사 복원의 폭을 넓혀야겠지요. 바로 그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로 채택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가야사 복원 작업이 지자체별로 진행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연구 방향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 쟁탈전이 벌어지는 이면에 연구 인력마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 : 행정적인 측면에선 중앙정부 차원에서 가야사 복원 업무 전체를 담당할 컨트롤 타워가 마련되어야 하겠지요. 직접적으로 연구를 담당할 학예사들의 신분이 불안정한 것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송 : 가야사를 복원할 연구 방향이 정립되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이 : 저는 연구자 입장에서 가야사 연구자들이 문헌사료를 대하는 시야부터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담긴 사료가 우리 역사의 앞모습을 보여준다면 일본서기에 담긴 기사들은 우리역사의 뒷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사료들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라졌던 가야계 인물을 일본 서기에서 발굴해 복원을 시키는 일이 함께 진행되어야만 가야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송 : 고고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야계 유민들이 살았던 주거지를 비롯해서 도기, 철기, 마구 등 가야계 유물들이 일본 열도 전반에 걸쳐서 발굴되었습니다. 그런 유물들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것이 가야사 연구자들이 할 일이지요.
 
이 : 과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열도에서 발굴된 한반도 계통 유물들은 모두 백제계 유물로 치부하던 풍토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가야사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고대사에서 왜와 가장 활발하게 교류한 나라는 가야였고 그 유물 중 상당수가 가야계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지요. 제가 김해뉴스와 손잡고 '가야 찾으려 일본 간다' 시리즈를 기획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송 : 하지만 가야사 복원 작업의 흐름은 김해와 함안, 창녕, 합천, 고령 등이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 낙동강문화권에서 가야사의 뿌리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 흐름을 따라 제가 마련한 시리즈 역시 1단계로 김해와 함안, 창녕 등에 서려 있는 '옛 가야인들의 숨결'을 느껴 본 후에 2단계로 '가야 찾아 일본 간다'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정리=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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