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 인제대 교수.

온 나라가 요동치고 있는데 한가롭게 인도에 다녀왔다. 사실 한가롭다는 건 어폐가 있다. 최근 몇 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주제로 인제대 박물관대학이 기획, 운영했던 마지막 일정이었다. 평생교육프로그램의 주관자로서 현지답사까지 인솔할 책임이 있었다. 인도, 인도의 사람·역사·문화를 다룬 강의를 1년이나 듣고 두 차례 독서토론회, 음식·요가 체험, 그리고 무용·영화 등의 문화체험을 한 뒤에 떠났던 현지답사 여행이었다. 그렇기에 온 국민이 '어이없는 대통령'에 분노하는 와중에도 취소할 수 없었던 여행이었다.
 
"나마쓰테~."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심지어 식전 기도로도 쓰는 인도식 인사말이다. 반드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야 제대로 인사가 되는 까닭이 있다. '나는 당신 안의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란다. 아인슈타인이 그 뜻을 물었을 때 마하트마 간디는 "나는 온 우주가 들어 있는 당신의 내면에게 절합니다"라고 답했단다. 상대의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니 경배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도는 3억 3천만 이상의 신이 존재한다는 다신교 세계이니 상대방의 신도 나의 신처럼 존중하겠다는, 가치상대주의적인 다양성의 존중이다. 온 우주가 반영된 작은 단자로 인간을 정의했던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같은 인간존중의 인사가 "나마쓰테"인 모양이다. 자동차들이 어슬렁거리는 소를 피해 다니고, 야밤에 술집도 흥청거림도 없는 인도의 진지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인사말이다.
 
인도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서 극치를 이룬다. 새벽부터 구경한다거나 성수로 목욕한다고 북적이는 강가 한 쪽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푸른 연기가 영겁의 정적처럼 피어오른다. 배로 다가가 불태워지는 시신과 지켜보는 가족들, 그리고 금잔화 화환에 묶여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주검을 들여다 본다. 나는 누구이고,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 건지처럼 촌스럽지만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게 하는 절대적인 분위기다.
 
갠지스 강이 힌두교의 인도인은 물론, 세계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힘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르는 유구한 역사적 전통과 거기서 비롯된 진지함에 있다. 갠지스 강 자체가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목욕하며 눈물 흘리는 힌두교도가 감동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화장 풍경이 중국의 천하명승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하는 야외 오페라처럼 스펙터클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세계인에게 그 힘든 길을 제 발로 오게 하고, 더럽고 무질서하고 탁하기만 한 여명의 갠지스가 사랑스럽기까지 한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라나시를 떠나 <삼국유사>가 허왕후의 고향으로 서술했다는 아유타, 곧 아요디야의 가락공원을 찾았다. 김해시장 격인 금관지주사는 1076년 <가락국기>에서 '아유타국'이라고만 했지만 1285년경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아유타 앞에 인도의 '서역'을 덧붙였다. 사실 '인도공주'의 전설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허왕후뿐 아니라 2~3대 거등왕과 마품왕의 왕비까지 배출했던 허왕후 집단은 왕족의 수로집단과 대등한 왕비족이었다. 가락국의 절반을 차지했던 왕비족이었건만 왕릉의 대성동고분군을 비롯해 3천 년 이상 김해의 가야고분에서 인도계통의 유물이 출토된 적은 없다. 그래서 48년 허왕후와 함께 온 장유화상이 불교를 전파했다는 일부의 주장과 다르게 교과서는 고구려의 372년과 백제의 384년을 우리 불교의 초전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북북서쪽으로 200㎞ 정도를 13시간이나 걸려 겨우 도착한 아요디야에는 허왕후의 고향을 기념한다고 김해김씨의 가락종친회가 만든 가락공원과 김해시가 세운 기념비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버스 전조등을 비춰가며 안으로 들어서자 김해김씨와 허씨, 그리고 그 사위와 며느리들까지 자기 외할머니를 만났다면서 묘도 사당도 아닌데 술과 제수를 차려 절을 올린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인도공주'로 생각하기 어려운 증거를 제시하면서 장광설을 폈건만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만들어진 역사'와 '만들어지는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꾸렸던 일정이었건만, 나이든 학생들 일부는 핏줄이 땡긴 댄다. 마침 버스 전조등 안으로 어린 동생을 업은 아요디야의 한 소녀가 들어섰다. 허왕후가 시집 올 때 나이쯤 됐을까. 얼굴은 새카맣고 짙은 쌍꺼풀에 턱 선이 아주 가늘다. 허옇게 찢어진 눈에 둥글넓적한 얼굴로 절하는 '후손'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우짜믄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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