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 인제대 교수.

지난 11월 28일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정교과서 시안으로 <현장검토본 국사교과서>를 공개하고, 지난달 23일까지 열람케 하면서 여론을 수렴했다. 그러나 지난달 27일에 발표한 내용은 국정교과서 채택결정 1년 유예와 검인정교과서 병행이었다.
 
<현장검토본>에서 김해의 관심사인 가야사서술을 훑어 본 감상은 우선 '과거로 돌아간 국정교과서'란 것이었다. <고등학교한국사>나 <중학교역사> 모두 가야사 서술의 기본을 '전·후기에 모두 단 하나의 가야연맹체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가설에 의지했다. 1~3세기 전기가야의 김해, 5~6세기 후기가야의 고령이 맹주였던 가야연맹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광복 후 이른바 '6란=6가야 신화'로 만들어졌던 '가야연맹설'은 30년 전의 리모델링을 거쳐 교과서에 쓰여 왔던 낡은 상상이었다.
 
학계에서는 이미 20년 전에 '전후기단일연맹론'을 부정했고, 김해김씨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 주관의 가야사정책위원회도 '가야연맹사'가 아니라 '가야각국사의 재구성'이란 표제로 연구결과를 간행한 바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함께 전하는 '포상팔국전쟁'처럼 가야끼리 싸운 기록은 있어도 고구려, 백제, 신라를 상대로 가야제국이 함께 전쟁을 치렀다는 '연맹'의 기록이나 고고자료는 없다. 세계유산등재를 추진하는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언급할 수 없었던 것은 김해와 고령만 주목했던 '가야연맹설' 때문에 함안의 아라국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한국사>와 <중학교역사> 모두 '4세기 경 백제의 발전상' 부분에서는 '근초고왕이 가야를 압박하고 남해안의 해로를 장악했다'면서 역사지도에 북쪽의 백제가 가야로 진출하는 모양을 화살표로 표시했다. 이 기술의 근거는 우리가 그토록 믿지 못하는 <일본서기> 신공황후기에만 있는 것이다. 이 전쟁은 일제식민사관의 대표였던 츠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 같은 사람도 인정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제는 백제 근초고왕이 창원 가야의 탁순국왕에게 왜왕과의 교섭을 중개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만 인정될 뿐이다. 더구나 <중학교역사>의 지도처럼 백제가 북쪽에서 가야로 진출했다는 것은 <일본서기> 자체에도 없다. 남해안의 가야국에게 중개를 부탁했을 뿐 해로를 장악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런 문제점들은 비전문가의 무지이거나 지난 30년 동안 가야사연구의 발전을 전혀 돌아보지 못했던 졸속의 소치다. 단적인 증거로 <고등학교한국사>는 변한의 철 생산을 소개하면서 김해 대성동2호분에서 출토된 200여 장의 철정덩어리 사진을 제시했다. 철 생산을 전하는 <삼국지>는 아무리 늦어도 3세기 후반 이후가 될 수 없지만, 대성동2호분은 4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고분이다.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기록과 고고자료가 '짬뽕'이 된 것이다. 이런 무지와 졸속 때문에 가야를 무시하던 과거의 선입관이 교과서에 그대로 포함됐다.
 
다만 가야사의 서술 분량을 늘린 사진 제시는 설득력의 고양이란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 좋지 않은 자료들만 고르고 동일한 사진을 반복해 써야 했는지 역사관이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가야문화가 일본에 미친 영향의 경우 중·고교과서 모두 동일한 가야토기와 왜의 스에키 사진을 실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같은 유물만 보는 학생들이 가야의 발전을 알게 될 수는 없다.
 
교과서는 '4세기 후반 신라와 가야의 건국과 성장'에서 1~2세기의 청동거울과 희뿌연 가야토기를 제시했지만, 현장에서는 근년에 대성동91호분에서 로만글라스, 91호·88호분에서 금빛 찬란한 용무늬 금동제 허리띠장식과 마구가 발굴됐다. 시대도 맞지 않는 녹슨 청동거울과 희뿌연 가야토기는 삼국에 비해 가야를 저급한 수준으로 보이게 한다.
 
수많은 오류와 문제점을 다 거론할 순 없지만, 독도에는 그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임나일본부설'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일본과 교류하는 청소년들을 발가벗겨 맨손으로 내보내는 것 같아 불안하다. 김해인의 관심사인 가야사 서술만 보아도 국정교과서는 '올바르지 않은 교과서'라 할 수밖에 없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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