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원 우리동네사람들 시민학교 교장.

나는 4년째 놀고 있다. 한 달에 한번 기적의도서관 앞마당에서 아이들이랑 놀고 있다. 추워도 놀고 더워도 놀고. 그렇게 놀다 보니 소문이 나서 매번 100명 훌쩍 넘는 인원이 함께 놀다 간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도 놀고, 율하천에 놀러 왔다가도 놀고, 알고도 놀고, 모르고도 놀고…. 엄마 손을 꼭 잡은 세 살짜리 아기도 놀고, 자전거를 타다 눌러 앉은 초등학교 6학년 '형아들'도 놀고, 아이도 놀고, 어른도 놀고…. 2시간을 그렇게 놀고 나면 "왜 진작 몰랐을까요?" "어떻게 하면 다음에도 놀아요?" "또 언제 놀아요?" "우리 지역에서는 이런거 안 해요?"라며 아쉬움에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다.
 
4년을 그렇게 놀다 보니 별의별 아이들을 다 본다. 갓 배운 사방치기 재미에 흠뻑 빠져 그만 가자는 엄마 외침에도 "조금만~ 조금만~" 하며 떼쓰는 여자 아이, 난생 처음 긴줄넘기를 하다 발목을 부딪혀 아파하면서도 결국엔 뛰어 들어오기에 성공하고 기뻐하는 여자아이, 줄다리기 한번 졌다고 삐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 흥분해서 항의하던 남자아이, 그 어느 여자아이보다 더 고무줄놀이를 잘하던 남자아이, 벌칙이니 달려라 해도 달리고 상이니 달려라 해도 또 달리는 아이들….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것인 양 그렇게들 논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들에게 놀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좁은 운동장, 과밀학급, 학원에 방문학습까지. 친구를 사귀려고 학원에 가고, 체력을 키우려고 학원에 간다. 그러니 제대로 실컷 놀아 본 기억이 전무하다. 그나마 짬을 내서 논다는 놀이가 스마트폰 게임이거나 멍 때리면서 TV를 보는 게 전부다. 게다가 어른들은 잠시도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떠들지 마라,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 공부해라, 숙제해라, 놀 거면 책 봐라.
 
조카 이야기를 해야겠다. 조카는 어릴 때 영재소리를 들었다. 말하기 전부터 간판 글자를 읽을 줄 알았단다. 당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번은 조카랑 잡기놀이를 한 적이 있다. 쫓아오는 조카를 피해 방향을 바꿨더니 조카는 몸의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엎어져 손바닥과 무릎에 찰과상을 입었다. 마음먹은 대로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조카는 울었고, 울음소리에 달려온 아빠는 다친 아들이 안쓰럽고 화가 났던지 첫마디에 "내가 뭐랬어. 뛰지 말랬잖아. 그러게 뛰니까 넘어지지". 다쳐서 우는 조카를 보며 원인을 제공한 나는 미안하고 죄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넘어지니까 뛰지 말라는 어른들의 황당한 주장에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뛰어야 한다. 넓은 공터를 달리고 달려야 한다. 한바탕 에너지를 빼고 나서 놀아도 어른들은 그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게 아이들이다. 그렇게 뛰어야 조카처럼 갑작스런 방향전환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뛰어야 하고 넘어져야 하고 또 뛰어야 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그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미래 인재의 6가지 조건 중 하나로 '놀이(play)'를 꼽았다.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에서 '노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구글, 페이스북, 픽사, 디즈니 등 세계적 기업들은 직원들의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업무 속에 놀이를 결합하고 있다. 올해 초 인공지능 열풍을 일으켰던 '알파고'는 더 이상 지식의 많고 적음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학입시 전형은 수시전형을 더욱 강화해 일찍부터 진로를 확정하고 준비해 온 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창의적이고 협력적이며 리더십이 강한 직원을 뽑고 있다. 이것은 아이들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놀았는가에 달려 있다.
 
논다고 하면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노는 동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그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아이들의 '그저 노는 것'에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죽고 살고, 이기고 지고, 다투고 화해하면서 관계를 배운다.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남과 협력하고, 잘 놀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 게임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단번에 '리셋'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움은 몰입과 집중력을 키운다. 하나의 일에 집중해서 즐거움을 느껴 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이여,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또 목숨 걸고 놀 친구들을 찾아줘야 한다. 어느 학원이 좋은지, 어느 체험이 좋은지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말라. 내 아이랑 함께 물놀이할 친구, 함께 캠핑 갈 친구, 함께 공놀이할 친구를 찾아 줘야 한다. 그리고 그냥 지켜봐 줘야 한다. 여름방학이다. 그 시작을 지금 하면 어떨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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