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원 우리동네사람들 시민학교 교장.

민족의 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지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형제들은 함께 차례상도 차리고 술판도 벌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훌쩍 성장한 조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라며 호기롭게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챙겨주기도 한다. 친가·외가의 삼촌에다 이모까지 돌아가며 용돈을 주니, 제법 주머니가 두둑해진 아이들은 대형마트의 완구점으로 달려간다. 비싸서 못 샀던 변신자동차를 사기도 하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값비싼 인형들을 사기도 한다. 엄마가 "집에 있잖아"라고 하면 아이들은 "그거랑 이거는 다른 거란 말이야. 그것도 모르면서"라며 눈을 흘긴다. 어른들은 아이와 승강이를 해보지만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할까 봐, 하나밖에 없는 내 손주가 기가 죽을까 봐 걱정돼 결국은 아이에게 지고 만다.
 
'에잇포켓(eight pocket)'이란 말이 있다. 저출산 시대에 한 자녀에게 '올인'하는 소비 트랜드를 반영한 신조어다. '조부모, 외조부모, 부모'를 합쳐 어른 6명이 아이 한 명을 위해 지갑을 연다는 의미의 '식스포켓(six pocket)'에다 결혼을 안 한 이모와 삼촌의 지갑을 여니 '에잇포켓'이란 얘기다. 실제로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유아용 전동차도 6세 조카를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주는 이모와 삼촌들이 눈에 띈다.
 
삼성카드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완구업계의 2016년 카드 사용금액이 2013년보다 57% 늘었다고 한다. 소비가 가장 크게 늘어난 연령대는 40대(74%)이고, 60대(73%) 이상도 만만찮다. 손주에게 장난감을 선물하려는 50~60대의 소비 수요와 조카에게 줄 선물을 찾는 미혼의 이모나 삼촌의 구매 심리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이러다 보니 아이들의 방은 장난감으로 넘쳐난다. 부족함을 모르는 아이들. 비싼 레고 장난감도 조립 한번 하고 나면 끝이고, 실바니안 인형세트도 반나절을 넘기지 못한다. '그게 얼만데'라고 외쳐본들 소용없다. TV에서 새로운 상품광고를 보면 또 사 달라고 부모를 졸라댄다. 장난감을 사기 위해서는 없는 기념일도 만들어내야 할 판이다. 부모들은 "추석, 설날에다 크리스마스까지 일 년에 어린이날이 4번인 것 같다",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들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라고 푸념한다. 장난감이 이제는 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장난감을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있다. 부모들은 부족한 시간, 사랑, 관심을 물질로 보상해 버린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드레아 브라운은 <소비에 중독된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매일 너무 사고 싶어 안달하는 장난감이나 군것질이 아니라, 부모나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함께 뛰어놀 공간과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아동 소비는 충족되지 못한 심리적 욕구에 대한 대리만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뛰어놀 공간과 시간을 주라고 말한다.
 
남자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쥐어주고 학교에 가서 공을 차고 오라고 하면 아마 하루 종일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여자아이들 서넛이 개울가에 앉아 소꼽놀이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아이들에겐 친구와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만 있다면 흙투성이 축구공이 최고의 장난감이고, 개울가 돌멩이와 이름 모를 풀들이 최고의 놀이도구인 것이다. 비싼 레고도 친구들이 있어야 흥이 나고, 화려하고 예쁜 인형도 친구가 있어야 뽐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친구를 찾아줄 생각을 못하고 있다. 아니 어려워하고 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들이 없다. 다들 방과 후에 학원이나 공부방으로 간다. 부모의 욕심에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아이들은 외로운 나머지 TV나 스마트폰 속의 게임이나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혼자 노는 건 놀이가 아니다. 논다는 건 함께여야 한다. 친구가 없다면 엄마, 아빠라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황선준, 황레나 부부는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에서 아래와 같이 얘기하고 있다. '스웨덴 부모들은 자녀에게 부모의 시간을 기꺼이 선물한다. 물질적인 지원은 그 다음의 일이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간이 더는 부모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아이를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계획하고, 행여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계획 자체를 수정한다.'
 
모든 게 부족했던 부모 세대. 그 때는 부족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친구를 찾고 골목을 누볐다. 부족해서 놀이를 개발하고 장난감을 만들었다. 모든 게 풍족한 지금의 아이들. 부모들은 이들에게 '부족함'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부모의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길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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