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곧 문을 닫는 외동 임호초 앞 경화당문구의 선반이 텅 비어 있다.


김해 전역 8년 사이 75곳 폐업
혼자 운영해도 인건비도 안돼
대형매장·온라인에 경쟁 밀리고
학습준비물은 학교서 모두 지원



외동 임호초에서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학생들이 우르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자신의 키만한 책가방을 맨 초등학생 한 명이 문구점 앞에 선다.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를 들고 500원 짜리를 건넨다. 그 뒤로 초등학생 손님들이 문구점을 기웃거린다. 이들의 주머니에서는 100원, 500원 동전이 나온다. 연필, 공책 등 학용품으로 가득해야할 문구점 안 수납장은 텅 비어 있다. 빨간 줄이 그어진 원고지에 먼지가 수북하다. 문구점 곳곳에는 '경문당 가게 정리 전품목 50% 할인' 종이가 붙어 있다.
 
학교 앞 '경문당문구'의 신화자(59·여) 사장은 곧 20년 동안 운영했던 문구점 문을 닫는다. "아쉬워서 어떡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문구점을 부동산에 팔려고 내놓은 뒤 이틀 간 잠을 못 잤다. 문구점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다 키웠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하루 10만 원도 벌기 힘들다. 나 혼자 운영하지만 인건비도 못 번다"고 말했다.
 
임호초 주변에 있는 문구점은 경문당문구를 포함해 단 두 곳이지만 과거 다섯 곳이 경쟁할 때보다 상황은 더 나쁘다고 한다. 신 씨는 "이전에는 하루 매출 100만 원을 기록한 적도 많았다. 10평 남짓한 작은 가게이지만 직원 5명을 둘 만큼 장사는 잘됐다. 과학의날, 어린이날만 되면 문구점은 아이들로 북적댔다. 2000년대 들어 대형매장이 연이어 등장하고, 학교에서 준비물을 대량 구매하면서 학교 앞에 문구점이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학교 앞 문구점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의 '생활업종통계지도'에 따르면, 2006년 211곳이었던 김해의 문구점은 2014년 136곳으로 줄었다. 8년 사이에 75곳이나 문을 닫은 것이다.

▲ 한 어린이가 삼계동의 문구점에서 장난감을 고르고 있다.

학교 앞 문구점의 몰락에 대해 문구점 주인들은 연이은 대형매장 설립, 온라인 구매 증가, 교육청의 학습준비물 지원 정책을 꼽는다. 이중 마지막 이유가 가장 결정적이라고 한다. 경남도교육청은 1998년부터 학습준비물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학습준비물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경제적·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학교별 기본운영비에서 학생당 연간 3만 원 이상의 학습준비물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학교는 학교장터(S2B)에서 입찰을 통해 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김해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지난해 김해지역 58개 초등학교의 학습준비물 지원예산은 총 8억 4980만 원이었다.
 
삼방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정 모(55) 씨는 "19년째 문구점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습준비물 지원책을 시행한 이후 각 학교들은 학교장터를 통해 준비물을 모두 구입한다. 우리 문구점도 학교장터 입찰 시스템에 등록돼 있다. 하지만 공장에서 직영으로 납품받는 도매업자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아예 계약에 나설 엄두를 내질 못 한다"고 말했다.
 
삼방동에서 19년 째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백 모(45·여) 씨는 "2000년까지 학교 인근 문구점은 열 곳이 넘었다. 10여 년 사이에 다 문을 닫고 단 두 곳만 남았다. 10년 전만 해도 직원 5명을 고용해서 일을 했다. 지금은 2명만 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등·하교 시간에 가장 붐볐다. 이제는 붐비는 시간이 없다. 느낌으로는 김해지역 문구점의 60~70%가 줄어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삼계동에서 문구업을 하는 한 모(42·여) 씨는 "과거 주변에 다른 문구점 두 곳이 더 있었는데 지난해 모두 문을 닫았다. 다른 곳이 문을 닫으면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착각이었다. 하루 매출이 20만~30만 원 정도다. 월 임대료 60만 원 맞추기도 빠듯하다. 방학에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학기 중에 돈을 벌어야 한다. 학교들이 준비물을 대량 구입하다보니 세월히 흐를수록 운영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외동에서 문구업을 하는 김 모(60·외동) 씨는 "대형매장들 때문에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문구류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장난감이 있다. 매년 매출이 10% 이상 감소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학교 앞 문구점들은 이처럼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청의 학습준비물 지원 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학부모 송 모(40·여·율하동) 씨는 "부모들이 일일이 알림장을 챙기지 않아도 학교에서 준비물을 구비해 주니 정말 편하다. 소매 문구점은 대형매장이나 프랜차이즈 문구점보다 비싸 잘 이용하지 않는다. 예산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앞 문구점의 하소연이 터져나오자 경남도교육청은 학교 인근 소매문구점 이용 확대방안을 뒤늦게 마련했다. 학교 별 학급준비물 구입예산의 15% 이상을 소매문구점에서 이용하라고 권고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교육청의 권고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소매문구점보다 가격이 저렴한 학교장터나 온라인 구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김해교육지원청의 '2014년 학습준비물 문구점 구매 현황'에 따르면 김해지역 초등학교 학습준비물 예산 8억 4980만 원 중 4.7%인 3099만 원만 인근 문구점에 쓰였다. 김해대곡초등학교 관계자는 "학교 인근 문구점은 학교가 원하는 학습준비물을 갖추기 어렵고 물품도 적은데다 대량 구입하기도 어렵다. 온라인 쇼핑이나 학교장터를 이용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경남도교육청은 학습준비물 지원 예산 확대를 고려하고 있어 앞으로 학교 앞 문구점의 몰락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도교육청 초등교육과 관계자는 "저소득층 학생 등은 학습준비물 마련에 부담을 느낀다. 이에 학습준비물 지원 예산 확대를 검토 중이다. 현재 연간 초등학교 1인 당 3만 원인 금액은 앞으로 좀 더 늘 수 있다. 이는 박종훈 교육감 공약 사항이다"고 말했다.
 
김해소상공인센터 양정봉 센터장은 "학교 앞 문구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구용품만 판매할 것이 아니라 문구와 팬시 등 복합 업종으로 거듭나야한다. 또한 문구 도매업체, 프랜차이즈업체, 온라인 쇼핑몰 등에 맞서 가격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구점끼리 똘똘 뭉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야한다. 가까운 부산의 경우, 동네 서점들이 살아남기 위해 '부산서점 협동조합'을 만들어 입찰을 같이 보고 있다. 문구점도 온라인 카페 등을 만들어 구매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방안 등도 모색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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