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정이 판화가.

‘어제 아침 서울에 사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형! 9시 반 기차 탔는데 부산역 12시 도착 예정입니다. 역 분수대 앞에서 봅시다”라고 했다. 시간 맞춰 부산역엘 나갔다. 갑자기 무슨 일로 왔는가, 궁금했다. 고령인 그의 부친이 부산에 계시기에 혹시, 해서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오래기간 신문의 시사만화가로 활동하였고 은퇴한 지금은 대학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 방송의 시사프로에 고정출연도 하는 등 70대 나이에도 몹시 바쁘게 산다. 그런 그가 모처럼 “오늘 하루는 시간이 비어서 형 얼굴도 한번 보고 같이 밥도 먹고 낮술도 한잔 하고 그럴라고 왔어요”라고 했었다.
 
암튼, 둘이는 12시에 만나서 자갈치로 갔고 그는 양념 타는 냄새가 그립다며 안주로 곰장어구이를 시키곤 낮술 한 순배 걸치고 나자 “술 배 밥 배 따로라던가? 점심을 먹자”며 갈치구이정식을 먹자고 했다. 바쁜 와중에 서울서 귀한 걸음을 한 셈이라 두툼하고 때깔 좋은 놈을 구워내는 집을 찾았으나 둘의 눈에 차는 집을 찾지를 못했다. 최상의 어물은 신새벽에 고급손님의 발길이 잦은 부자지역으로 부리나케 다 배송되고 없다나 뭐라나?
 
아쉽지만 회정식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옛날 욕쟁이할머니의 고래고기 좌판이 있던 근처의 좌판에 앉아 소주 두 어 병을 마시고 나니 시간이 얼추 오후 5시가 됐다. 그는 그때서야 “참! 형 나 7시 기차표요”라고 하기에 기차시간에 허둥대지 않아도 되도록 둘은 일단 일어나 부산역 근처의 예전에 자주 갔던 군만두집으로 옮겨 배갈 두 병을 비웠다. 그는 어둑어둑한 부산역광장을 가로질러 7시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윗 글은 지난 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서 조금 첨삭을 한 것인데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보고 안부 댓글을 달았다.
 
필자도 60년대에 모 일간지에 시사만화를 그렸었다. 당시에는 각 일간지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린이판을 발행하였는데 필자가 만화를 연재하던 그 신문의 어린이판에 이홍우 화백이 아동만화를 연재했었다. 그와는 오래된 그런 인연이다. 또 박재동 화백은 그 당시 만화가 지망생으로서 습작한 만화 꾸러미를 들고 필자를 찾아 온 적이 있었다. 그 후 본가가 부산인 이홍우 화백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박재동 화백은 직접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가 모 방송의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내용의 프로그램 담당자가 박재동 화백이 필자를 찾는다고 연락해 와 박재동 화백이 무대에서 “선생님∼”이라고 두어 차례 부르면 나가서 포옹을 하는 쑥스러운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기도 하다.
 
두 작가와의 그런저런 인연으로 보아 필자와 두 작가는 각별한 인연이랄 수 있다. 박재동 화백은 소위 대표적 좌파매체로 분류되는 ‘한겨레신문’의 만평작가 출신이다. 위 글에서 후배로 지칭되는 시사 만화가는 대표적 우파매체인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을 28년간 연재한 이홍우 화백이다. 두 작가는 우리나라 시사만화계의 양 진영를 대표하는 작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두 작가의 포지션이 필자의 개인적 입장에서는 불편하기만 하다. 
 
민중미술의 태동기이던 70~80년대 박재동 화백이 참가한 당시 민중미술단체의 대표적 그룹 중 하나였던 ‘현실과 발언’ 전에 이홍우 화백의 캐릭터 ‘나대로선생’을 수구세력의 꼭두각시로 패러디한 작품이 출품된 적이 있었다. 이렇듯 두 작가의 활동 영역이나 이념적 성향이 서로 대척점에 있기에 필자로선 이홍우 화백을 만나면 박재동 화백 이름을 안 꺼내게 되고, 반대로 박재동 화백을 만날 때는 이홍우 화백을 들먹이지 말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해를 이은 탄핵정국이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양 진영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어제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가령 누군가 내게 박재동 화백과 이홍우 화백 두 작가가 촛불과 태극기를 내민다 한다면 나는 둘 다 마다하고 인연의 소중함을 보듬을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여럿 중 두어명이 회색인의 비겁함이라며 힐난을 했다.
 
세상사가 그리 간단하던가? 다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얽힌 무리 중의 한명이거늘 작금과 같은 계절에 나만이 회색인 일까? 그든 저든 개의치 않지만 작금같이 극으로 치닫는 양 진영의 대립이 오래 끌면 끌수록 내 이웃, 애먼 소시민들의 살기가 더 팍팍해질 것이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빨리 안정되길 소원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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