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동배움나루 문해교실 어르신들이 지난 9일 졸업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9일 내동배움나루 문해교실 졸업식
어르신 15명 초등학교 학력 인증
내달부터 우암·활천초 등서 진행



'우리 교실은 언제나 웃고 있다/ 선생님 질문에 맞으면 좋아서 웃고, 틀리면 놀린다고 웃는다/ 우리 교실은 언제나 참새들로 북적댄다/ 선생님 한 마디에 이 말하고 저 말하며 재잘대는 참새 같다/ 우리 교실엔 언제나 향기가 난다/ 꽃보다 더 진한 사람 향기가 난다(우리 교실·최소옥)'
 
지난 9일 김해내동초 2층 강당에서 '김해내동배움나루 문해교실 졸업식'이 열렸다. 칼바람 부는 바깥 날씨와 달리 강당은 '사람 향기'로 따뜻했다. 강당 한 쪽에 설치된 게시판에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졸업모자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어르신들의 자녀들은 지난 3년 간 활동을 담은 어르신들의 일기장과 시, 사진을 찬찬히 훑어봤다. '3년이란 세월이 3일처럼 지났다', '학교를 다니는 소원을 풀어서 행복했다'는 글귀는 가족들의 마음에 짙은 감동의 파도를 남겼다.
 
"김해내동배움나루 문해교실 졸업생들이 입장합니다." 사회자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졸업모자를 똑딱핀으로 단단히 묶은 어르신들이 손녀, 손자 같은 내동초 6학년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색의 풍선으로 만든 출입문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김해내동배움나루 문해교실은 학습기회를 놓친 18세 이상 성인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교육부가 마련한 학력인증 문자해독 프로그램이다. 2014년 초등 1단계를 시작으로 2015년 1~2단계(초등학교 1~4학년 과정), 2016년 1~3단계(초등학교 1~6학년 과정)가 진행됐다. 전 과정을 모두 이수한 학생 15명이 이번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다. 
 
교육은 단계별 1년 과정이다. 매주 2~3회에 걸쳐 4~6시간씩 모두 160~240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교육 내용은 국어·수학 교과 영역, 재량 활동, 특별 활동 등이다. 문해교실 어르신 학생들은 여러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 내동초 어린이 학생들과 함께 급식도 먹고 소풍 등 각종 학교 활동에도 참여해 왔다.
 
어르신들이 자리에 앉자 빨간 장미꽃을 든 6학년 학생들이 어르신들 앞에 서 "졸업을 축하드립니다"라며 따뜻한 인사말을 건넸다. 어르신들은 "고맙다"며 학생들을 꼭 껴안았다. 학생들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경남도교육청 박종훈 교육감은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전달했다. 졸업장을 건네받은 어르신들은 박 교육감의 손을 꼭 잡았다. 박 교육감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직접 쓴 편지도 손에 쥐어줬다. 졸업장을 받은 어르신들은 지난 3년 간 활동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문해교실 김명환 담임교사는 축사에서 "목표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어르신들이 '학교에만 오면 아픈 것이 사라지고 밥맛도 좋다'는 말할 때마다 나도 행복했다. '이제는 길거리 간판을 읽을 수 있다'는 어르신의 편지를 받고 감격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졸업생 모두 팔팔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졸업생 오진학(84·여) 씨와 류수열(80) 씨는 느리지만 차분하게 답사를 읽었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한 운동회, 반짝이옷을 입고 간 소풍의 추억은 평생 못 잊을 겁니다. 매일 찾아갈 교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장님이 눈을 뜨듯 글자를 모르던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의 진심이 담긴 답사에 졸업식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오진학 씨는 "부산 수영구에서 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야 학교에 올 수 있었다. 멀고 먼 등굣길이었지만 학교에 오는 날은 정말 행복했다. 김명환 교사의 친절한 가르침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이 정말 아쉽다"며 눈물을 훔쳤다.
 
오 씨의 남편 박완서(84) 씨는 "아내가 학교 가는 날을 가장 즐거워했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학교에 갔다. 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한 아내가 자랑스럽다"며 부인에게 노란 프라지아꽃을 선물했다.
 
졸업생 강경분(82·여) 씨는 "3년이 금세 지나갔다.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야속하게 느껴진다. 졸업식을 앞두고 매일 울었다"고 말했다.
 
시부모인 오내용(77), 김내심(73) 씨와 함께 졸업하는 베트남 출신 호앙티뀐(27) 씨는 "남편의 나라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다니고 졸업한다는 게 감격스럽다"며 웃었다. 김 씨는 "40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한글을 몰라 수없이 속앓이했다. 한글을 배우는 게 소원이었다. 자상한 담임교사와 가족의 응원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며느리 윤소영(39·여) 씨는 "동서와 시부모가 3년 동안 학교를 정말 즐겁게 다녔다. 중학교 과정도 다니고 싶어한다. 배움을 놓친 많은 분들에게 문해학교는 큰 힘이 된다. 문해학교가 계속 운영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내동초 박은영 교사는 "내동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기 힘든 위치다. 문해교실은 이번 졸업식을 끝으로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 접근성이 좋은 활천초, 우암초에서 운영한다"면서 "김해에는 중학과정이 없다. 더 공부하고자 하는 어르신들은 부산 부경보건고교에 진학해야 한다. 하루 빨리 중등과정이 생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도교육청은 다음 달부터 내년 2월 말까지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초등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초등학교 1~6학년 수준 과정으로 운영되며,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올해 김해에서는 우암초(055-310-1857)와 김해활천초(055-333-2874), 한국사회복지학교(010-3310-1366)에서 진행한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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