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정이 판화가.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다 집사람에게 전화로 목욕하게 보일러 좀 틀어 놓으라, 고 했다. "아직은 겨울날씨 못잖으니 집에서 목욕하다가 감기 들면 약값이 더 듭니다. 더군다나 요즈음 같은 환절기에는 더 하지요. 그러니 집에서 목욕할 생각하지 말고 오는 길에 목욕탕에서 하고 오세요"라는 반응이 나왔다. 투덜대면서도, 하긴 그것도 그렇다 싶어 목욕탕으로 갔다. 주차를 하고 호주머니를 뒤져 미리 잔돈으로 목욕비를 챙겼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곳에서는 요금 받는 직원이 나이 좀 든 손님을 보면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경로대상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느라 그러는 모양이었다. 나이 든 입장에서는 마치 요금 할인을 받으려고 검색받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그래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목욕탕이어서 이용할 수밖에 없다. 대신 언짢은 기분을 피하기 위해 일반요금을 미리 챙겨 줘 버리고 들어간다. 경로우대 여부에 대한 업소의 방침을 명확하게 팻말 같은 걸로 밝히는 게 맞지, 경로대상 여부를 목욕탕 직원의 눈대중에 의존하는 것은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 예의상 맞지 않다.
 
목욕탕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열탕에 몸을 담근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목 둘레에 물결이 일어 탕 속으로 누군가 들어 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처사님은 잘 사셨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하고 눈을 뜨니 맞은편에서 한 사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두고 하는 소린가 본데 민머리다. 언뜻 봐서 몸에 문신이 없어 조폭은 아니고, 근처 절집의 승려인가 싶었다. 그는 "욕심을 버리면 되지요"라고 또 한소리를 했다.
 
아마, 열탕의 물이 뜨거워 눈을 감고 참느라고 애쓰는 표정이 승려의 눈에는 고단한 삶에 찌든 중생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이러다간 발가벗은 탕에서 선문답 놀이하게 생겼다 싶었다. "여보쇼! 그런 것은 수행 정진하는 그네들이나 하지, 산 밑에 사는 나 같은 중생에게야 가당찮은 노릇이지요"라고 한마디 내뱉고 탕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물에 몸 지지는 것을 훼방 놓고는 어줍잖게 가르치려 드는 게 마뜩찮았다.
 
일진이 수상한 날이 있다더니, 일상의 불편한 것들이 겹치는 딱 그런 날이었다. 목욕을 끝내고 옷을 입은 뒤 휴게실 평상에 걸터앉아 양말을 신고 있었다. 이발사인지 세신사인지? 아무튼 목욕탕 직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놀러가다가 사고 난 걸 가지고 정부가 다 물어줘야 하고, 세상 참 좋다"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TV에는 노란리본을 단 세월호 희생 학생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인터뷰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혼자서 그냥 구시렁거리면 됐지,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게 마치 "맞아요"라고 동의하라는 것 같아 부아가 났다. 그래서 "당신이 잘못 알고 있네요.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학생들이 놀러 간 게 아니고 수학여행 간 거거든요. 그냥 여행이 아니라 수학여행 간 거요"라고 거듭 일러주었다.
 
TV에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 장면이 나오면 또 무슨 신소리를 할까 싶어 얼른 일어났다. 사실관계에 근거하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서 맞장구라도 쳐 주길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길로 목욕탕을 나섰다. 목욕을 하고 나면 심신이 개운해야 할 텐데 되레 거꾸로다. 목욕 한 번 하기 참 힘들다 싶어 실소를 하며 전화기를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두 개다. 하나는 촛불집회에 나오라 하고, 다른 하나는 태극기집회에 동참하라는 거다. 발신자는 둘 다 나와 막역한 사이도 아닌 사람들이다. 둘 다에 수신 차단을 걸었다. 연락처 삭제는 당연히!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