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옛 서적 인용해 근본 설명
 일본서 인기절정 마상재 소개도
“몸 이해해야 정신 제대로 알아”



조선 시대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봉희(棒戱). 막대기로 공을 쳐서 구멍에 집어넣는 놀이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긴 채로 공을 쳐 골대에 집어 넣는 군사 무예인 격구(擊毬)에서 유래했다. 군사들의 전투 훈련이 민간으로 흘러들어 골목길 놀이로 변화한 이 사례는 무예가 문화의 산물이란 걸 잘 보여 준다.

<무예 인문학>은 '싸움 기술'로만 여기는 무예에 담긴 역사·문화·철학적 의미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20년 넘게 칼을 잡은 검객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무예 관련 고전을 비롯해 <논어> <도덕경> 등 역사·철학서를 인용해 '몸의 인문학'으로서 무예의 근본을 설명하고 있다.

무예의 흐름에도 운율이 있다는 점에서 무예는 한 편의 시와 같다. 검법에서는 치고, 베고, 찌르는 동작과 공격, 방어의 움직임이 뭉쳐 '세(勢)'를 이룬다. 갑작스럽게 공격하는 자세를 '산시우(山時雨)'나 '유성출(流星出)'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검무는 무예의 예술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춤과 무예가 만나 탄생한 검무는 무예의 본성과 춤의 아름다움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조선 시대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검법인 '본국검법'이 신라 화랑의 검무에서 유래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말과 함께 무예를 펼치는 마상재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통신사 일행의 호위 무관으로 간 마상재인들의 뛰어난 기마 실력에 일본 최고 지도자 관백이 재방문을 요청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근래 마상재는 무예가 아닌 곡예에 가깝다는 힐난도 나오지만, 저자의 경험을 빌리면 달리는 말 위에서 하는 훈련은 담력과 무게중심 기술을 기르는 우수한 기병 무예다.

저자는 나아가 무예의 이치가 세상의 도리,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무예는 자기 몸과의 '전투적 소통'이다. 자신의 의지와 몸의 흐름이 일치하려면 몸 상태와 한계부터 인지해야 한다. 무예에서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뤄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세상살이의 핵심 이치이기도 하다.

상대와의 겨루기는 또 어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상대를 인정하는 일이다. 모든 무예는 상대성을 바탕으로 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이해해야 나의 자유로운 몸짓이 가능하다. 상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그저 혼자 움직이는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강인한 정신력'만 강조하고 몸을 무시한다. 저자는 정신을 이해하려면 정신을 담는 그릇인 몸을 이해해야 하며, 몸과 정신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정신만큼 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최근 대선 후보들은 TV 토론에서 자신의 정책과 가치를 알리고, 때론 상대를 인신공격하는 등 치열한 '정신 겨루기'를 벌였다. 그러나 횟수에 비해 후보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다. 한 번쯤 말씨름 말고 진짜 씨름을 해 보면 어땠을까.

책은 맨손 무예의 하나로 씨름을 소개한다. 맨살과 맨살이 직접 닿아 서로의 땀과 열기를 교환하는 가장 섬세하고 친밀도 높은 무예라 하니, 후보들은 상대를 인정하고 유권자는 후보들의 그릇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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