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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땐 탁 트인 바다, 올라갈 땐 파란 하늘 수많은 예술인 태어나게 한 ‘통영문화의 성지’(18) 통영 서피랑 마을
  • 수정 2017.10.23 09:55
  • 게재 2017.10.18 10:06
  • 호수 343
  • 12면
  • 이경민 기자(min@gimhaenews.co.kr)
▲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포토존 서피랑 등대.

 

동피랑과 달리 쉬엄쉬엄 걷기에 최적
빨간색 등대 조형물 앞 인증샷 인상적
빼곡히 들어선 주택, 힘들었던 삶 설명

박경리 소설서 모티브 99계단 그림 눈길
‘서피랑 공작소’ 점령한 소녀들 환한 웃음
단순 관광지보다 문학 감성 여행지 기대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토록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갓, 소반, 경대, 문갑, 두석장, 나전칠기 등)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모른다(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 서문 중에서).'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은 통영이다. 그의 작품 <김약국의 딸들>에는 실제 마을의 지명과 이웃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김해에서 창원, 고성을 지나 한 시간 반 만에 통영에 닿았다. 목적지인 서피랑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댔다. 언덕 위로 살짝 드러난 작은 정자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정표의 화살표를 따라 '서포루'로 향했다.

통영은 조선 후기 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을 통할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의 기지였다. 이 때문에 포를 설치해 쏠 수 있는 포루들을 갖추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훼손됐다. 수 년 전 복원되면서그 자리에 정자가 세워졌다. 통영성을 기준으로 동포루, 서포루, 북포루라고 하지만 사실 동피랑, 서피랑, 북피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피랑은 절벽, 벼랑의 순 우리말이다.

동피랑은 이미 벽화마을로 유명 관광지가 됐다. 서피랑은 동피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사색에 잠겨 쉬엄쉬엄 걷기 좋은 조용한 곳이다.

▲ ‘서피랑 공원’ 정상에 위치한 서포루.

서피랑 마을에는 박경리의 생가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를 기리는 장치들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서포루로 가는 길 옆 벽에도, 그리고 긴 의자에도 박경리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향은 삶의 기초다. 특히 문학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밑천이다.' 통영이 그의 문학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어디선가 달콤한 금목서의 향이 풍겨왔다. 잠시 의자에 앉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했다. 높아진 가을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었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구름이 없는 하늘 사진은 꼭 바다를 찍어 놓은 듯 푸르기만 하다. 문득 하늘과 바다를 구별하기 위해 조물주는 구름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색 등대 조형물 앞에서는 유치원생들의 인증 샷 찍기가 한창이었다.

서포루에서 내려다 보면 눈앞에 통영의 입체지도가 펼쳐진다. 저 멀리 바다와 그 위를 떠가는 배, 조그만 항구, 그리고 다닥다닥 빼곡히 들어선 수많은 주택들.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지만 땅이 척박해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기는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상 서포루에 올랐으니 다음은 99계단을 따라 내려갈 차례다. 재미있는 엉덩이 조형물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지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조금 더 내려오니 계단과 계단 옆 벽에 나비 그림이 알록달록하게 그려져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이 박경리의 미완성 소설 <나비야, 청산 가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꾸몄다. 서피랑 마을 골목 곳곳에는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따라 걷다 보면 모든 길은 서포루로 통한다. 계단에는 박경리 어록이 쓰여 있다. 

▲ 박경리의 소설 <나비야, 청산 가자>를 모티브로 꾸민 99계단.

그림이 있는 벽 맞은편에는 음악정원이 조성돼 있다.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좁고 기다랗게 이어졌다. 등대에서 본 아이들이 저 멀리서 폴짝폴짝 뛰어왔다. 그들이 달려온 길을 따라가니 피아노 계단이 나타났다. 사람의 발이 닿으면 센서로 감지해 소리를 내도록 설계돼 있다. 실제 연주가 가능한 국내 최대 5옥타브 피아노 계단이다.

99계단 끝에는 빨간 대문이 인상적인 '서피랑 공작소'가 자리하고 있다. 담을 허문 집에 굳게 닫힌 대문이라니, 그 조합이 낯설었다. 담이 있던 자리는 체험학습을 나온 소녀들이 점령했다. 학생들은 이곳에 서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옆에선 한 남자가 학생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서피랑 지기'라고 소개했다.

문화기획자이자 문화관광해설사인 이장원 씨는 2년 전 창원에서 통영으로 왔다. 그는 '서피랑 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서피랑 마을 조성과 홍보에 매진하고 있다.

이 씨는 "통영은 많은 예술가들이 자라고 머문 도시다. 박경리뿐만 아니라 시인 김춘수, 청마 유치환과 그의 형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도 모두 통영 출신이다. 첫 사랑을 찾아 통영을 찾았던 시인 백석은 애틋한 마음을 담아 '통영'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영 문화예술의 성지가 서피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단순한 관광지라기보다는 문학적인 감성으로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서피랑 공작소 전경(왼쪽). 체험학습을 나온 여중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재 서피랑 공작소는 변화 중이다. 갤러리와 문화체험공간인 '살롱 드 피랑'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11월부터는 간헐적으로 예술시장도 열릴 예정이다.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다시 서포루를 향해 계단을 올랐다. 내려오며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어디든 배경은 파란 가을하늘이다. 내려올 땐 탁 트인 바다에, 그리고 올라갈 땐 끝없이 높은 하늘에 푹 빠졌다. 그제야 갑자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통영이 여태껏 수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늘과 바다가 만들어준 깊고 넓은 세상이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키워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해뉴스 /통영=이경민 기자 min@


▶통영 서피랑 마을 /경남 통영시 서호동 141-3(서피랑 공작소 기준).
가는 방법 = 김해여객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통영종합버스터미널 이동, 도남동 방향 101번 버스타고 서호시장 정류장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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