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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현장, 말없이 지켜본 서울 도심 오지 마을활력 충전! 여행&나들이 (26)서울 서촌마을
  • 수정 2018.02.07 11:09
  • 게재 2018.02.07 10:32
  • 호수 359
  • 15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윤동주가 오르내리며 시상을 가다듬었다는 ‘시인의 언덕’ 이곳에 서면 서울 사대문 안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1930년대 모더니스트 이상이 살던 집
손기정 가슴에 일장기 지운 이상범 가옥

7080 향수 자극하는 카페 겸한 대오서점
미술관으로 변신한 화가 박노수 작업 공간

연립 주택 들어선, 윤동주 하숙집
그림 속 ‘수성동 계곡’은 옛 모습 그대로




오래된 기와집에 낡은 한옥이 이어지는 골목길. 일제강점기 경복궁 안뜰에 들어선 조선총독부 건물이 8·15 광복과 더불어 정부종합청사로 변신하는 등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의 현장을 말없이 지켜보았던 서울 도심 오지 마을, 서촌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서울 도시철도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5분가량 걸어가면 1930년대 모더니스트 '이상의 집'이 나온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 더 날아 보자구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구나"
 
파격적인 문체로 식민지 젊은이의 자기 소모적인 정서를 그렸던 시인 이상이 살았다는 집이다. 복합 문화공간으로 꾸며 놓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 젊은 시절 이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좁은 공간에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하려고 몸부림쳤던 이상의 흔적을 되살려 놓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상의 집에서 7분가량 오르막길을 걸어가면 한국화가 이상범 가옥이 있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일하던 시절,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로 옥고를 치렀던 화가가 살았던 집이다. 단아하게 꾸며진 한옥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범이 그린 산수화를 걸어놓은 안방과 작업 공간을 복원해 놓았다. 전통 한지에 먹물로만 그린 동양화를 감상하는 묘미도 있지만, 화가가 가졌던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볼 흔적이 없어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이상범 가옥에서 불과 2분 거리에는 여류 시인 노천명이 살았다는 집이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로 시작되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듯 맑고 깨끗한 성품을 지녔던 시인 노천명.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관변단체에 동원되고 한국전쟁 때는 '월북 문인'들을 만났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을 만큼 모진 세파에 시달렸던 사연을 되짚어 보고 싶었지만, 대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비탈길을 따라 10여 분간 올라가면 1951년에 문을 열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헌책가게, 대오서점이 있다. 한때는 대형서점들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해 폐업을 고려할 만큼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서울시민들이 힘을 모아 되살렸다는 헌책방이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사고파는 서점이라기보다, 7080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현장으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요즘은 드라마 촬영장으로 자주 활용되는 장소다.
 

▲ (사진 위에서부터)새로 단장한 이상의 집,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대오서점, ‘성하의 뜰’을 전시중인 박노수 가옥, 연립주택이 들어선 윤동주 하숙집 터, 진경산수화에 등장하는 수성동 계곡.

 
대오서점에서 10분가량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면 화가 박노수 가옥이 보존되어 있다. 1937년 친일 관료 윤덕영이 딸이 사용할 별장으로 지었다는 서구식 건물을 1973년 서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박노수 화백이 사들여 생활공간이자 작업 공간으로 썼던 곳이다. 2011년 박 화백이 세상을 떠나면서 서울시에 기증한 집을 미술관으로 꾸며 놓은 실내 공간이 고풍스럽게 다가온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성하의 뜰'이라는 주제로 박노수 화백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동양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산수화를 서양 물감으로 그려낸 현대적 감각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박노수 가옥에서 불과 2분 거리에는 '시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터가 남아 있다.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재학하던 시절 하숙했던 집이 있던 곳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을 뿐 옛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잠시 숙연한 가슴을 안고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1분 거리에 수성동 계곡이 나온다.
 
조선 시대 화가,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에 등장하는 계곡이다. 천재 시인 이상과 여류 시인 노천명에다 화가 이상범과 박노수를 거쳐 민족 시인 윤동주…. 주어진 삶의 무게만큼 짐을 지고 서촌 길을 걸었던 그때 그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화가 정선이 그렸던 수성동 계곡은 그림 속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곳이 없다"던 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과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일까. 허무한 마음을 떨칠 길 없어 계곡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어가면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서울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에서 시인 이상과 윤동주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려오는 가슴을 안고 내리막길을 걷노라면 윤동주 문학관을 눈에 들어온다. 마을 물탱크를 개조해서 건립한 문학관이라고 했다. 안쪽에는 시인의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우리말로 시를 쓰다가 경찰에 체포돼, 머나먼 이국땅 후쿠오카 감옥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식민지 청년 윤동주는 그렇게 삶을 마감할  운명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탄할 만큼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다간 윤동주.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다소 진지해진 가슴을 안고 서촌 기행을 마감했다.

김해뉴스 /서울=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서울 서촌마을
가는방법=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서 도시철도 1호선을 환승해서 종로 3가역에 내린 후 3호선으로 갈아탄 다음 경복궁역에 내리면 서촌마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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