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도로에서 자동차는 마차보다 절대 빨리 달려서는 안 된다. 자동차의 시속 제한속도는 교외 6.4㎞, 시내 3.2㎞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전방 55m 앞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다고 소리치고 후방 55m에서 자동차가 지나갔다고 붉은 깃발(야간에는 붉은 등)을 흔든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무조건 정지해야 하고 말을 놀라게 해서도 안 된다.'

1865년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에서 최대시속 30㎞의 증기자동차 출현에 마부와 기관차업자의 로비로 제정된 황당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다. 1차 산업혁명(석탄·증기기관)을 주도했던 영국이 2차 산업혁명(전기·대량생산)에서 독일에 뒤지고 독일 자동차 기술을 수입해 가솔린 자동차를 생산하는 후발국으로 전락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그 후 3차 산업혁명(정보통신)을 거쳐 지금의 4차 산업혁명에 이르렀다.

정부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만이 특정 경제행위를 할 수 있도록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정부의 이러한 인위적 정책에 의해 얻어지는 독점적 이익을 지대(렌트)라고 한다. 이러한 지대를 획득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로비 등의 활동을 벌이는 것을 지대추구행위라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에 따르면 개도국의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하는 이유는 권력자와 가까운 곳에 살아야 각종 이권을 얻기 위한 로비가 한층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누가 더 큰 그릇 속에 잘 융합해서 멋진 비빔의 가치를 만드느냐'하는 주도권 다툼이다. 비빔 그릇이 크고 견고 할수록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고, 비빔 콘텐츠가 맛깔스러울수록 경쟁력 있는 승자독식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한국 전통의 비빔밥은 세계 최고이고 이미 글로벌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전 세계 기내식 가운데 가장 인기 메뉴 중 하나가 되었고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한국 비빔밥 광고가 화제가 된지도 오래다. 미국 TV 프로그램에서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날씬한 몸매관리의 비결이 비빔밥이라고 소개한다.

우리 4차 산업의 비빔밥 제조 과정은 어떠한가. '개인정보보호법'은 빅데이터 활용을 가로 막고 있고 사행성 투기로 몰린 암호통화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 훌륭한 비빔밥을 만드는 데는 자연의 맛과 색상이 다양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성공적인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도 복잡한 이해관계의 경제 주체들이 구성의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 밥그릇 지키려는 지대추구 행위 보다는 국가 경제 전체를 위한 양보와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스마트폰 앱으로 차량을 불러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풀앱 규제 개선 정책토론회에서는 택시업계 단체가 단상을 점거했다. 정보통신과 의료를 융합한 원격의료는 의료단체의 집단 반발로 18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고 약사회는 상비약 편의점 확대를 위한 복지부 회의를 자해 소동으로 무산시켰다. 변협은 세무사법 개정에 항의해 삭발과 거리투쟁에 나섰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선상카지노에 내국인 출입 허용을 추진했으나 강원랜드 수익성 악화를 내세운 폐광 주민들의 시위로 없던 일이 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모든 걸 쪼개고 분석하던 20세기 환원주의는 끝났다. 21세기는 섞여야 아름답고, 섞여야 강해지고, 섞여야 살아 남는다."고 했다. 이제 우리 모두 자신과 이질적인 것에 경계를 낮추고 화합, 융합, 조화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민족 고유의 비빔밥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이다. 다들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의 이익이 손톱만큼이라도 영향을 받으면 절대 반대하는 것이 집단의 속성이다. 사람 중심을 외치는 현 정부가 훌륭한 비빔밥을 만들 자신과 역량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국민대토론회나 신고리 원전 때와 같은 '공론화 위원회'를 가동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해뉴스 /강한균 인제대 명예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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