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가야의 발상지인 김해시는 지역 전역에 문화재가 분포돼 있다. 이 가운데 봉황동, 동상동, 부원동, 구산동 등 김해의 구도심에 주요 문화재들이 집중된 양상이다.
문화재가 산재한 이 지역은 겉으로 봤을 때 수로왕의 능이 있고 왕궁터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일지 모르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생활여건 개선과 마을 개발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문화재로 인해 개발도 못하고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는, 문화재구역 이면의 모습을 살펴본다.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1월 22일 금관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에 대한 발굴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일대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김해 문화재보호구역 44만㎡
 구도심 대부분 매장문화재

 개발 행위땐 현상변경 필수
 유물 나와 발굴조사하기도

 인근 지역 주택 노후화 심각
"주민 참여·시 지원 확대해야"


 

지난해 가야시대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지에서 유력 세력의 생활근거지와 토기류가 잇따라 발굴됐다. 발굴조사에서 4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대형 거주지 10여 기와 토기 수백 점이 나오며 이곳이 가야시대 왕궁터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문화재, 보물이 나오면 과연 좋은 일일까? 문화재구역, 문화재보호구역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문화재 보호는 곧 개발행위 제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해구도심에 문화재 집중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구역은 문화재 구역, 문화재보호구역,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등으로 나뉜다.
 
문화재구역은 문화재가 위치해 있는 구역을 말하며, 문화재보호구역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는 일정한 지역에 대해 문화재 보호를 위해 특별히 지정해 관리하는 구역을 뜻한다. 김해시에 따르면 문화재구역은 42만 1224㎡이며, 문화재보호구역은 문화재구역에 사적 제261호인 대동면 예안리 고분군 인근과 가야왕궁터로 추정되는 봉황동 유적지 인근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총 44만 1136㎡이다. 최근 김해시가 문화재청에 구지봉 인근 9만 2000㎡에 대해 보호구역 지정 신청을 하기도 했다.
 
이외 주변의 자연경관이나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공간으로서 문화재와 함께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곳을 문화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또 땅 속에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 있다.
 
김해시에 속한 문화재는 보물 2건, 사적 9건 등 79건으로 진주시 182건, 밀양시 148건, 합천군 162건 등에 비해 경남지역에서 문화재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김해 구도심 전역이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다. 김해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큰 사찰이 있으면 그 안에 불상, 그림 등 여러 가지 문화재가 함께 있어 경남 타 지역의 문화재 수가 김해보다 많은 편이다. 그러나 가야의 수도인 김해는 구도심 전역을 포함한 지역 곳곳이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그 면적을 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 문화재보호구역에 포함된 봉황동 일대에 낡은 주택들이 방치돼 있다. 시는 왕궁터 복원을 위해 사유지 매입을 모두 마친 상태다.

 ■까다로운 건축·개축 요건
이처럼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한 김해에서 건물을 짓고 고치는 등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지정 문화재의 경우 문화재보호법을, 도지정 문화재의 경우 경남 문화재보호 조례를 따르며 현상변경 허용기준은 구역별로 나뉜다.
 
구도심 대부분이 이같은 문화재구역 등에 포함되다 보니 주민들이 건축·개발 행위 등에 제한을 받고 있다. 동상동에 위치한 A교회 역시 문화재로 인해 개축에 애를 먹었다.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 있는 교회는 2014년부터 시 문화재과, 도 문화재심의위원회와 현상변경 과정 등을 논의했다. 2016년 협의를 통해 약 한 달간 시굴조사를 벌인 결과 통일신라~조선시대의 우물터 흔적이 나와 두세 달을 거쳐 추가 정밀발굴조사를 벌여야 했다. 사업시행자인 교회는 시굴조사, 정밀발굴조사 등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다행히 수년 전부터 법이 바뀌어 대지면적 792㎡·연면적 264㎡이하인 소규모 건축, 대지면적 2644㎡·연면적 1322㎡이하인 농어업·공장 시설물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시굴조사 비용을 지원해주지만 이 과정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봉황동의 한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다보니 사업자들도 이익이 남지 않는다며 문화재구역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국가에서는 일방적으로 보호해야한다고 줄만 그어놓고 땅 주인이나 주민들의 피만 말리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구도심은 자연히 개발 없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봉황동 주민 우 모(58) 씨는 "다들 오래된 집 뿐이다. 다른 곳은 둘째 치고 도시가스가 안 되는 것이 가장 불편하다. 도시가스 설치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도 있는데 설치 과정이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들어서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개발 제한에 발목 잡힌 김해
특히 가야왕궁터로 추정되는 봉황동 일대는 40~50년 전에 지어진 낡은 주택이 많아 재건축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주택가 곳곳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된 빈 집들도 많았다. 시가 이 일대 11만 326㎡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 신청해 2007년부터 부지 매입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일대 지가는 감정가로 평당 200만 원선이지만 그 기준으로 보상을 받아서는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집을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보호구역 내 거주하고 있었던 한 70대 주민은 "문화재보호구역이라서 그런지 시세가 안 올랐다. 보상가로 다른 곳에 집을 살 수 없으니 옮겨갈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시는 법적인 선에서 평당 300~400만 원 수준의 보상을 실시해 수년 만에 사유지였던 문화재보호구역을 모두 매입했다. 현재는 지난해 추가된 보호구역 3523㎡에 대한 매입만 남아있다.
 
보호구역에 대한 매입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됐지만 구도심 전체는 여전히 문화재에 묶여 개발에 제한을 받고 있다. 다행히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재도약을 꿈꾸고 있지만 생활여건 개선에 대한 숙제는 남아있다. 생명나눔재단 임철진 사무총장은 "이곳에 땅을 두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주거환경이 개선되면 모두 이 곳에 살 사람들이다. 김해의 중심인 구도심을 살리는 것은 김해 전체를 살리는 것이다. 주민 참여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구도심이 살아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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