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평생 물이 넘쳤던 마을에 물이 사라졌어요."

지난해 10월 김해 장유 한 자연마을에서 취재 요청이 왔다. 금병산을 타고 사시사철 마을 곳곳으로 흘러 내려오던 물이 말랐다는 것이다.

'물이 좋은' 마을이라고 해서 수가마을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곳은 신석기, 가야시대 유물과 패총이 발견될 만큼 역사가 오래된 곳이지만 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 장유신도시개발 등으로 지금은 25가구 정도가 남아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피해를 주장하는 윗수가마을은 다섯 가구밖에 남지 않았고 모두 70세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물마름 현상이 2년 전부터 부전~마산 복선전철 공사로 금병산에 터널을 뚫으며 시작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이를 밝힐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공사 업체는 물마름 현상이 터널 공사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2016년~2017년 유난히 적었던 강수량 자료를 제시했다. 이에 환경단체와 함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환경영향평가서를 제공 받았지만 전문 용어로 채워진 자료를 일반인이 해석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문가를 찾아가 문의한 결과,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터널 공사를 하면서 지하수가 유출돼 지하수위가 저하되지만 그 수준이 심각하지는 않다는 답을 얻었다. 결국 공사가 마을 물마름에 영향을 끼칠 만큼 심각하다는 증명을 하기 어려워 취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수가마을 옆에 있는 부산시 소재의 마을에서 다시 제보 전화가 왔다. 제보 내용은 수가마을과 같은 마을이라고 해도 될 만큼 비슷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공사 업체 측 역시 지하수 유출이 지표수에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가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금병산 터널 공사를 시작으로 인근 마을에 공통으로 발생한 물마름 현상. 터널 공사로 지하수위가 저하된다면 지표수 감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당연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증명해 보이라는 업체 측의 요구에 주민들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상황 속에 통쾌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기사 하나를 접했다. 지난 3월 미국의 한 고등법원이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회사들에 "암 경고 라벨을 붙여야 한다"고 판결했다는 것이다. 해당 판결문에는 "커피회사가 생원두를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화학적 화합물의 위협이 미미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며 판결의 이유가 나와 있었다.

주목할 점은 커피에 포함된 발암물질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심각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해' 이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를 물마름 현상에 대입해보면 주민들이 물마름 현상이 터널 굴착 때문인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업체 측에서 이 현상이 터널 굴착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여야 하는 것이다.

김해에는 각종 개발과 도로 공사로 물마름 현상과 비슷한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그때마다 주민들은 피해를 호소하지만 이를 객관적·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 때도 많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간 잘 살던 마을에 갑자기 공사 업체가 들어와 발생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공사로 발생하는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 측에서 처리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다. 그러나 업체들은 공사 인허가 문제에는 불을 켜는 반면 마을의 피해는 여전히 주민들에게 남겨져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업체의 열심이 주민 피해에도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