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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맞닿은 천지 그 아련한 윤슬에 삿된 맘도 기껍고(3)무척산(모은암 ~ 천지 ~ 신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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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10.11 13:47
  • 호수 44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가을이 내려앉은 무척산 천지연못. 고요하고 아련한 감흥이 절로 일어난다. 천지나 백록담처럼 분화구 호수를 제외하고는 산 정상부 호수로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무척산 오르는 길, 완연한 가을이 길마중을 나왔다. 억새풀 하얀 꽃들이 햇살에 눈부시고, 오동나무 넓은 잎이 바람에 서걱댄다. 노송을 휘감고 오르던 칡덩굴은 서로 똬리를 틀 듯 부둥켜안고 가을을 맞고 있다. 이번 산행은 생림면 무척산 주차장을 들머리로 하여 모은암, 천지 연못으로 해서 정상인 신선봉에 올라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 산행이다.


경사진 길을 슬슬 오르다가 모은암 쪽을 올려다본다. 열흘 새 바위를 감고 있던 담쟁이덩굴은 단풍이 들었다. 바위 위에 뿌리 내린 소나무들도 여윈 햇살에 더욱 고즈넉하다. 본격적인 가을산행 시즌이 온 것이다. 산행 들머리인 모은암 밑 주차장. 상수리 열매가 지천으로 떨어져 발길에 차인다. 아무렇게나 자란 돌감나무 아래에는 방울 토마토만한 돌감이 어지러이 뒹군다. 맛을 보니 떫다. 진하게 떫은 돌감 맛에 화들짝 놀랜다. 조그마한 녀석이 떫기는 둘째 가라면 서럽겠다.
 

   
▲ 모은암 경내. 가락국 2대왕인 거등왕이 어머니인 허왕후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일설이 전해진다.

사부작거리며 오르다 보니 정상 가는 길과 모은암 가는 길의 갈림길이 나온다. 모은암 쪽으로 길을 잡는다. 바윗돌로 계단을 만들었다. 곧이어 무척산의 첫 바위절벽. 그 위세가 대단하다. 절벽 주위로 큰 바윗돌 두 개가 더 큰 너럭바위를 이고 고인돌 형태를 만들고 있다. 그 안으로 비바람을 피할 공간이 있어 그 누군가의 기도처로 사용했을 수도 있었겠다. 바위 곳곳에 오래된 이끼가 그 세월의 더께를 웅변하고 있다.
 
병풍을 치듯 한 석벽을 끼고 모은암을 오른다. 돌계단 사이로 소담한 돌탑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으로 고목 몇이 나무그늘을 만들어 절집 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싸릿대 숲 속에서는 가락국의 푸른 물결 소리가 들리듯 가을바람이 찰박찰박 철썩인다.
 
모은암. 무척산 바위에 둘러싸인 경내는 그야말로 도리천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명징한 평화로움이 있을까? 올라온 길 모두를 풀어놓고 있는데 풍경소리가 들린다. 어느 설법이 이 풍경소리만 하랴? 업장을 덜어주듯 그 무심의 웅숭깊음에 새삼 고개를 끄덕인다.
 
오래된 나무들이 가을바람을 매달고 합장하고, 굳건히 서 있는 바위들은 또 그렇게 천 년의 세월을 견딜 태세이다. 일설에 의하면 가락국 2대왕인 거등왕이 어머니인 허왕후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모은암. 가락국의 어머니를 모셨기에 더욱 주위가 경건한 것일까? 온몸이 가려울 정도로 적요하기만 하다.
 
산신각으로 오른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길이 나 있고, 그 바위 안 협소한 공간에 산신각을 들여앉혔다. 산신각에서 바라보니 멀리 조악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이 보인다. 대웅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니 관음전이 나온다. 일반 건축물이 아니고 석벽 바위굴 속에 관음전을 만들었다. 바윗돌로 석단도 쌓고 그 옆으로 돌을 메워 관음상을 앉혔다. 바위 속에 봉안된 관음상, 그 정지된 시간에 촛불만 바람에 펄럭일 뿐이다.
 
   
▲ 모은암 대웅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만나는 관음전. 석벽 바위굴 속에 봉안된 관음상이 이채롭다.
모음암에서 내려와 기도원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곧 이어진 전망바위. 생철마을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멀리 낙동강이 실처럼 흐르고 있다. 삼랑진 철교도 아스라이 보인다. 주위를 돌아보니 상수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상수리나무에서 바람이 둥지를 틀고 있다.
 
계속해서 바위 병풍 속을 헤치고 길을 오른다. 바위절벽 군데군데 소나무들이 매달려 세월의 흔적을 곱씹고 있다. 그 옆으로 통천문, 여근바위 등 바위의 특징을 살린 이름표들을 달고 있는 절벽들이 연이어 서 있다.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바위 앞에서 자연의 경지가 거방함을 새삼 느낀다.
 
바위 사이로 나무숲과 하늘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치솟았다가 가라앉는다. 바람소리는 경구를 읊듯 높은 소리로 '우우~'거린다. 마치 바위 밑에서 산의 설법을 듣는 듯하다.
 
적당히 숨이 찰 무렵, 바위 절벽 하나가 떡 버티고 섰다. 직벽 바위 밑으로 수십여 명이 편하게 쉬어 갈 수 있을 크기의 너럭바위가 자리를 내어준다. 한림벌도 보이고 삼랑진 곁 낙동강이 윤슬에 반짝인다. 산허리로 고개를 돌리니 상수리 열매가 바람에 후드득 떨어진다.
 
계속되는 산길. 바위를 휘돌아 오르는 산길인데도 무척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배려의 마음이 깊다. 조금 험하다 싶으면 편안한 길이 나오고, 힘들다 싶으면 전망바위에서 잠시 쉬게 한다. 그리고 절경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무척산은 웅혼하면서도 품이 넉넉한 산이다. 허왕후의 온화한 미소가 느껴지는 산이기도 한 것이다.
 
편한 장소에서 잠시 쉬며 계곡 너머의 산허리를 본다. 장군바위, 탕건바위 등 기암괴석들이 무척산 중턱에 뿌리박고 있다. 모두들 부드러우면서 단단하다. 아주 잘 다듬어져 매끈하기도 하다.
 
그들을 뒤로 하고 오솔길 같은 산길을 오른다. 갑자기 어렴풋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천지폭포다. 폭포라 하기엔 좀 앙증스럽지만 큰 바위를 중심으로 물줄기가 제법 맵게 떨어진다. 정상 부근의 천지에서 발원이 된 폭포이다.
 
숲에 싸여 계속 길을 오른다. 사방을 보아도 나무숲과 왔던 길, 가야 할 길만 보인다. 길은 휘고 또 휘어 산을 휘돌아 오르고 있을 뿐이다. 정상부에 가까워지려는지 바람이 거세다. 잠시 그 바람을 맞으며 오르니 순간 눈앞이 탁 트이며 시원해진다.
 
   
▲ 너럭바위. 수십명은 족히 쉴만한 자리를 내어준다.

무척산 천지. 백두산 천지처럼 산의 정상부에 있는 호수다. 천지나 백록담처럼 분화구 호수를 제외하고는 정상부 호수로는 유일하다. 또한 그 크기나 수량이 호활하고 전망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호수 둘레만 300m에 이를 정도다.
 
천지 주위로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쑥부쟁이가 보랏빛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잠시 통천정(通天亭)에 앉아 호수를 바라본다. 고요하면서도 아련한 감흥이 절로 일어난다.
 
다시 정상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능선 같은 오솔길을 잠시 오르내린다. 숲이 깊어 어둑하다. 발치에 피어난 구절초 꽃이 그래서 더욱 희고 밝다.
 
정상의 막바지 경사가 잠시 급해진다. 나무뿌리가 불쑥 솟아 허방을 만든다. 기우뚱 넘어질 뻔한다. 무척산이 정상을 내어주기 전 "이놈, 정신 차려라!" 하고 법장을 두드리는 듯하다. 그 나무뿌리를 계단 삼아 딛고 오른다.
 
다시금 전망바위. 눈이 부시게 시원한 풍광이다. 한림벌 전체가 자잘한 산에 싸여 펼쳐지고 그 뒤로 팔봉산, 월봉산, 백월산, 마봉산 등이 구름처럼 병풍 치듯 둘러 서 있다. 낙동강의 유유자적한 흐름도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부터 정상까지 능선길이다. 산지사방 양 옆으로 다 트였다.
 
   
▲ 무척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망. 한림벌, 삼랑진, 낙동강 등의 풍광이 병풍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이다. 해발 702.5m의 무척산 신선봉. 불모산, 신어산과 더불어 가락국 전설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김해의 3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천태산이 윽박지르듯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그 뒤로 영남알프스의 제(諸)산들이 첩첩으로 대간을 이루고 있다. 그 밑으로 낙동강이 삼랑진에서 매리로 흐르며 그 물길을 유장히 펼친다.
 
정상은 이미 가을이 깊다. 참나무들은 온몸에 단풍이 들었고 소사나무는 낙엽 지며 제 몸의 옷들을 떨어내고 있다. 그 곳서 잠시 가을을 맞으며 망연자실 서 있는 것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가을 오후 햇살이 나무숲으로 들어온다. 아직 푸른 잎들이 빛을 받아 선명한 초록빛을 낸다. 그 길로 앞서 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호젓하고 여유롭다. "푸드덕, 꾸~엉 꾸~엉" 갑자기 풀숲에서 꿩이 날아오른다. 낯선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가 보다.
 
다시 천지. 호수를 끼고 길을 걷는다. 노송 세 그루가 천지 옆에 뿌리 내리고 가지를 물가로 늘어뜨리고 있다. 마치 목마른 말처럼 목을 축이고 있는 형상이다. 곳곳에 밤송이가 뒹굴고 있고 바람에 물살이 찰랑인다.
 
내려오는 길이 더욱 여유로워서 일까? 계곡 물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린다. 그 물소리에 귀를 씻는다. 잠시나마 삿된 소리에서 벗어나니 적이 기껍다. 참으로 그 물소리 시원하고도 청량하다. 이러구러 내려오다 다시 보는 탕건바위. 햇빛이 이울어 마주한 풍경은 더욱 또렷하고 선명하다. 계곡 골골의 모든 것들이 확연하게 펼쳐진다.
 
   
▲ 부부연리지 나무. 수로왕과 허왕후가 환생한 듯 하다./천지연못에서 발원된 천지폭포. 앙증맞지만 물살이 제법 세다.

오르는 길에는 잠시 비껴두었던 부부연리지 나무에 선다. 가지와 가지가 서로 붙어 서로의 수액이 통하고, 그리하여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나무. 마치 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이 무척산에서 부부나무로 환생한 듯하다. 나무의 사랑도 이러할진대 우리네 속세의 사랑은 어떠한가? 생각할수록 한없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다시 병풍 같은 바위를 끼고 하산한다.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속세로 하산하는 것이다. 환속하는 불자의 마음이 이러할까? 아서라, 통함의 경지를 화두에 올려보지 못한 범부가 알 턱이 없음이다. 너럭바위로 느지막이 해가 이운다. 낙동강의 물색은 환해지고 산색은 더욱 깊어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조화로움에 넋을 놓고 앉았다. 하산하며 바라보는 바위들은 불쑥불쑥 더 크고 깊어 보인다. 겁이 덜컥 난다. 이런 산세를 품었다가 내려왔나 싶어 의아해진다. 아! 그렇구나. 무척산은 가락국의 큰 산. 꿈속처럼 홀연히 번성하다가, 홀연히 사라진 설화의 나라. 그 가락국처럼 무척산도 그런 성정이었으리라. 허왕후의 품처럼 엄격하지만 자애롭고 너그러운 산.
 
하산하며 산을 되돌아본다. 산을 품고 떠나는 길손을 온화한 미소로 배웅하는 국모(國母)의 산. 무척산이 해거름에 넉넉하게 쉬고 앉았다.

Tip.수로왕 묏자리 수맥 잡으려 만든 무척산 천지연못
무척산은 가락국 설화가 곳곳에 서려있는 산이다. 수로왕의 아들 거등왕이 모후인 허왕후를 기리기 위해 지은 모은암과 무척대사가 창건했다는 백운암, 수로왕이 쌓았다는 마현산성 등에서 가락국의 이야기가 은은하게 피어난다.
 
그 설화 중 하나가 천지에 얽힌 이야기이다. 김해지리지에 의하면 수로왕이 158세에 세상을 뜨자 수릉왕묘(首陵王廟) 조성을 위해 묏자리를 파는데, 갑자기 물이 솟아나면서 수맥이 잡히지 않아 애를 먹는다. 이에 허왕후와 함께 아유타국에서 온 신보(申輔)가 '무척산 정상에 연못을 파면 묏자리의 물이 없어질 것'이라 예견을 한다. 그 말을 좇아 무척산 정상부의 땅을 파니 물이 솟구쳐 고이고, 수로왕 묏자리에는 물이 끊겨 무사히 장례를 치렀다고 전해진다. 이때 물이 솟구쳐 만들어진 연못이 지금의 무척산 천지라는 것.
 
가만 보면 천지에 얽힌 설화나 모은암의 설화나 모두 '수로왕 부부의 사후'를 이야기한다. 이 무척산에 그들의 사후를 맡겨놓은 형국인 것이다. 그만큼 무척산의 엄결하면서도 푸근한 성정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사진=한명수 a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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