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슬퍼요." 리안 타티아나(27) 씨가 말했다. 타티아나 씨는 7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왔다. 푸른 눈에 금발의 미녀가 가득한 그곳에서 타티아나 씨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타티아나 씨는 고려인이다. 그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졌다.
 
"언제나 배척 당했죠. 친구들은 늘 러시아말로 고향에 돌아가라고 말했어요." 타티아나 씨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국인과 결혼함으로써 돌아오게 된 고국에서도 타티아나 씨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타티아나 씨의 조부모는 일제강점기 때 탄압을 피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 이후 러시아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게 됐다. 타티아나 씨의 기억 속 할머니는 언제나 한국어를 사용하며 고국을 그리워했다. 조부모로부터 이어진 고국에 대한 향수를 품고 도착한 한국에서 타티아나 씨는 생각보다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 문화부터 언어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던 탓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18살이면 결혼 적령기라고 말해요. 20살에 결혼한 저는 늦은 축이었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결혼을 일찍 했냐며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답답하기만 했죠." 타티아나 씨가 말했다.
 
조부모가 사용하던 한국어가 실제 한국어와 다르다는 점도 소통에 방해가 됐다. 타티아나 씨는 우선 한국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교재는 한국드라마였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받아 적었다. 남편과 시부모가 뜻을 알려주면, 타티아나 씨는 그것을 외웠다. 단어가 하나하나 쌓이면서 타티아니 씨의 외로움도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려인은 불을 끄는 것을 '불을 죽인다'라고 표현한다"며 "처음엔 이런 사소한 차이가 문제가 됐는데 지금은 남편과 함께 그 때를 회상하며 웃을 정도로 한국생활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 오면서부터 쭉 머문 김해는 타티아나 씨에겐 제 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는 "김해지역의 길은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라고 웃으며 말했다.
 
타티아나 씨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두 아이가 태어났다. 일터도 생겼다. 타티아나 씨는 지난해부터 김해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김해지역 내 외국인에게 도서를 대출해주는 '지구촌도서관' 운영이 그의 담당 업무다.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완벽한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타티아나 씨지만, 그를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 조금 어색한 한국어 때문이다.
 
"고려인인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정말 외국인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이방인은 떠날 고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저를 외국인이라고 부르면 제겐 갈 곳이 없어지는 거예요. 저는 한국인이에요." 타티아나 씨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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