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농지의 11%를 차지하고 있는 칠산서부동에서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박정훈 객원기자

수확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김해 농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만 있다. 농사에 드는 각종 비용은 껑충 뛰었지만 농산물 가격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해의 주요 작물인 벼의 수매가는 제자리걸음이고 배추와 상추는 폭락했다. 화훼 농가들은 기름값 폭등으로 농사를 속속 포기하고 있다.

■ 생산비 못 미치는 수매가에 한숨
이달 초 경남도청 앞 광장에 햇벼 28t이 쌓였다. 생산비를 밑도는 추곡 수매가에 분노한 농민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경남도는 오는 12월 31일까지 공공비축미 5만9천428t을 매입한다고 밝혔다. 가격은 벼 1등급 기준으로 40㎏들이 한 포대에 우선지급금 4만7천 원으로 결정됐고 내년 1월 중 정산한다.
 
농민들은 도의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 여름 잦은 비로 생산량이 떨어졌는데, 매입가마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해시 상동면 김수천(54) 씨는 "농기계, 유류, 비료 등 농사에 필요한 비용이 거의 20%이상 올랐다"며 "반면 추곡 매입가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농민들은 정부가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농민들을 희생양으로 농산물 저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해농민회 한 관계자는 "풍년일 때는 공급량이 많다고 수매가를 낮추고 생산량이 떨어져 쌀값이 오를 만하면 비축미를 풀어 가격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공공비축미 제도를 폐지하고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쌀 등 중요한 농산물은 국가 차원에서 수급 계획을 세우고, 일정량 이상을 수매 또는 계약재배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농민회 경남지회 관계자는 "생산비조차 보전해 주지 못하는 공공비축미제도를 농민과 정부, 소비자가 협의를 통해 매입가를 결정하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로 바꾸는 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 김장철 다가오자 배추 가격 폭락
지난 20일 찾아간 김해지역 최대 배추재배 지역인 대동면 감천마을 일대 농가들은 온통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 곳 농민들이 지난 19일 대동농협으로부터 올해 가을배추값이 포기당 400원으로 책정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올 9월부터 3천300㎡ 규모로 가을배추를 재배하고 있는 서병길(65) 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서 씨는 작년 이맘때에 수확한 가을배추는 포기당 1천200~1천500원에서 팔려 올해도 배추농사에 기대를 걸고 있던 차였다.
 
서 씨는 "두 달간의 배추농사로 400만 원을 벌었지만 종자 값, 인건비, 농약과 비료 값을 제외하면 100만 원도 채 남지 않는다"며 "10년 전에도 500원은 받았는데 올해는 10년 전만도 못한 가격"이라고 한숨을 토했다. 서 씨는 또 "대동면의 농민 중에는 빚만 늘어나 농사는 일찌감치 손을 놓고 중국에서 배추를 싸게 사들인 뒤 국내에서 되파는 사람도 생겼다"고 밝혔다.
 
상추농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동면 예안리의 장병근(53) 씨는 지난달 초부터 4천㎡ 농지에 상추를 40일간 재배해 지난 19일 부산 엄궁동 농수산물 시장에 상추 158㎏를 내다팔았다. 세금을 제외하고 12만 원이 장 씨의 통장에 들어왔다. 이는 수확에 필요한 3명의 인건비 15만 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장 씨는 "모종 값만 100만원 정도 들었는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받아 500만 원 이상의 적자가 났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상추는 시세 변동이 심한데 따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격을 적게 받는다고 수확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 고유가에 농사 포기 직전 화훼농가
김해시 대동면의 한 화훼농가는 아직도 장미 하우스 안에 불을 때지 못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은 하우스 안에 불을 때야 하는 시기다. 기름값이 너무 올라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보겠다는 생각이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가장 큰 한숨을 내쉬고 있는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화훼농가들이다. 지난해에만 해도 면세유 한 드럼(200ℓ)에 17만 원 정도 하던 것이 올해는 21만 원까지 뛰었다. 3천300㎡가량 되는 한 구역 당 면세유 80드럼이 필요하다.
 
경기가 안좋다 보니 꽃의 수요가 많이 줄어 단가도 떨어졌다. 기름·농약·비료 값, 인건비를 제외하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10~15%정도 매출이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훼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동지역은 5년 전에 비해 화훼농가가 반으로 줄었다. 화훼 농사를 포기한 농민들은 꽃을 심었던 하우스를 엎고 토마토나 상추 등으로 재배 작물을 바꾸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도 화훼농가에는 걱정거리다. 대동에서 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농민은 "FTA가 체결되면 화훼 선진국들이 높은 기술력으로 밀고 들어올 것"이라며 "우리나라 화훼농가들이 경쟁력에서 뒤처지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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