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재미 없을 땐 시장으로 가 보라. 그곳엔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물건을 사고 팔면서 오가는 그들의 대화가 있고 다양한 표정이 있다. 시장사람들에게 장사는 생계요 생활이다.
삶이 권태로울 여유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대형마트의 쓰나미를 힘겹게 넘으며 재래시장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상인들에겐 힘이 느껴진다. 이들의 보람과 애환을 들어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남편 따라 채소 노점상 시작해 1년만에 점포 얻은 후 27년째
손님들이 찾는 좋은 물건 들여다 놓으니 가게도 점차 커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어야지 … 대형마트 생긴다는데 걱정"

▲ 지난 12일 부원동 새벽시장에 위치한 '영아상회' 주인 최덕자(왼쪽) 씨가 손님에게 채소를 팔고 있다.
오전 4시 30분, 김해시 부원동 새벽시장은 남들보다 일찍 아침을 준비하는 시장상인들로 북적인다. 시장 한켠, 드럼통에 장작불을 쬐는 상인들에게 이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장사를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영아상회' 주인 최덕자(58·여) 씨를 꼽았다.
 
'영아상회'는 가게 출입문이 따로 없다. 길가에서도 가게 안쪽 구석구석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가게 입구는 활짝 열려 있다. 가게 안까지 찬바람이 들어와 입김까지 하얗게 나오고 있었지만 최 씨는 전기난로 하나만 켜둔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손님들은 시장을 찾고 있는데 물건을 파는 상인이 춥다고 가게문을 닫아놓고 기다릴 수는 없잖아? 지나가면서 물건을 봐야 손님들이 들어오지 안 그렇나?"
 
최 씨는 이곳 새벽시장에서 27년간 장사를 해왔다. 1978년 진영에 사는 남편 김동석(61) 씨와 결혼해 김해에서 가정을 꾸린 최 씨는 1984년 남편이 부원동 새벽시장 길가에서 채소 노점상을 하기 시작하자 수로왕릉 근처에서 운영하던 만화가게를 처분하고 남편과 같이 노점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점상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가게를 얻어 '영아상회'를 열었다.
 
"노점상 하며 채소 팔 때 장사가 참 잘됐지. 10여년 전만 해도 부원동 새벽시장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 있어서 외지로 오가던 사람들이 장을 봤거든. 2000년도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외동으로 옮긴 뒤에 손님이 뚝 끊겨 고비가 왔었지.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
 
아침 8시 손님들이 최 씨 가게 앞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덩달아 최 씨의 몸이 바쁘게 움직였다.
 
"영아 엄마! 고무장갑이랑 비누 파는교?" "팔지! 저기 있네!"
 
콩나물을 봉투에 담는 최 씨가 물건이 있는 위치를 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큰딸 이름이 혜영이라서 가게 이름을 '영아상회'라고 지었어. 근데 손님들이 신기하게 알고 다들 '영아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가게를 열 때 딸아이가 6살이었는데 장사한 돈으로 공부시켜 대학 보내고 일본에 유학까지 보냈더니 벌써 시집갈 나이가 다 됐지 뭐야."
 
'영아상회'에는 부식과 생활용품 등 없는 게 없다. 요즘 상회가 점차 사라지고 대신 크고 작은 '마트'가 생겨나고 있지만, 최 씨의 가게는 웬만한 마트보다 물건 종류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채소장사를 주로 했는데 사람들이 찾는 물건을 하나 둘씩 더 갖다 놓다 보니까 가게가 커졌지.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좋은 물건을 가져다 놓으니까 찾는 단골손님이 점차 늘더라고. 요즘엔 창원이나 진영에서 찾아오는 단골손님들도 많아."
 
최 씨는 수 백 가지가 넘는 물건 값을 다 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건을 납품하는 도매점 전화번호도 죄다 외운다. 최 씨는 20년 이상 장사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외운다고 말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면 신기할 정도다.
 
오후 1시, 새벽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접고 서서히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최 씨는 저녁 6시까지 가게 문을 열어 둔다. 오후 늦게까지 최 씨의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쯤 되면 피로가 갑자기 몰려와. 남편이 좀 거들어주면 한결 수월한데 6개월 전부터 다리가 좋지 않아 일을 거들어 주지 못하고 있거든. 그래도 별 수 있나? 혼자라도 장사를 계속해야지. 그나저나 조금 있으면 시청 앞에 큰 마트가 들어선다던데 참 걱정이야. 우리 같은 시장상인들만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닌지 몰라."
 
최 씨는 삶의 터전으로 오랫동안 뿌리내린 새벽시장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대형마트와 경쟁에서도 꿋꿋하게 이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장함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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