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동중 야구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 읽기에 집중하고 있다.

1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리자 약속이나 한 듯 도서관으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큰 키에 짧은 머리, 추운 겨울에도 햇볕에 그을린 얼굴. 바로 김해시 내동중학교 야구부 선수들이다. 지난 23일, 김해시 내동 내동중학교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에서 시간 보내는 게 즐거워요." 올해 야구부 주장을 맡은 상훈(15) 군은 쉬는 시간이면 도서관을 찾는다. 오죽하면 주변 친구들이 상훈이를 찾을 때 도서관부터 들를 정도다.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빡빡한 훈련스케줄이 잡혀 있지만 상훈이는 쉬는 시간이면 이곳에 온다. 야구 관련 서적을 읽기 위해서다. 부주장인 동근(15) 군도 얼마 전 <사이시옷>이란 책을 읽고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인권문예대회에 '야구부가 생각하는 인권'이란 글을 응모했다.
 
도서관을 자주 찾다보니 야구부 선수들에게는 '매도야'라는 별명도 붙었다. 요즘 유행하는 '차도남(차가운도시남자)'처럼 '매일도서관오는야구부'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운동하기에도 바쁜 야구부가 독서도 열심히 하다 보니 금세 소문이 났다. 그래서 지난 17일 김해시에서 주최한 단체 독후활동에서 10개 단체(참여 인원 5천7백여 명) 가운데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운동은 물론 독서도 열심히 한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았다.
 
내동중 야구부 학생들이 이렇게 독서에 관심을 가지기까지는 박창선(31) 사서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박 사서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사서 선생님이 사랑하는 내동중 야구부 귀염둥이들'이란 카페를 만들어 밤낮으로 아이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우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책을 추천해 주는가 하면, 시험기간이 되면 수업에 들어가지 못한 야구부 학생들을 위해 다른 학생들의 노트를 스캔해 카페에 올려둔다. 게다가 올해 8월엔 5일 간의 일정으로 독서캠프도 열었다. 캠프 중간엔 야구부 학생과 감독, 코치까지 참여하여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낭독회를 열었다. 박 사서는 "야구부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야구부 학생들이 책을 읽고 발표까지 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박 사서와 야구부의 인연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사서는 "야구부 감독님이 영어나 한문 등 숙제를 내주면 학생들은 교무실 가는 게 창피해 도서관으로 자주 들고 왔다"며 "특히 지난해 주장이던 채화 군이 전학가면서 '우리 야구부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는데 마음이 울컥했다"고 말했다. 박 사서는 그 후로 학생들의 독서 지도를 하는 것은 물론 시험기간엔 공부도 도왔다.
 
그렇게 학생들과 가까워지다 보니 박 사서는 "처음엔 롯데 이대호 선수도 몰랐는데, 자연스레 저도 야구에 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학생들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묻어났다. 그는 요즘 시간이 날 땐 학생들의 경기를 응원하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모습을 틈틈이 찍어 카페에 올린다. 상훈 군은 "카페에 가면 추억이 많아 컴퓨터 할 때마다 매일 들여다 본다"고 자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근이도 사서 선생님 덕분에 '꿈'이 생겼다고 말한다. "한비야 선생님의 책에선 '도전'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예전에는 무턱대고 고등학교만 가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젠 이대호 선수처럼 멋진 '롯데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동근이는 밝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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