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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명의 영혼이 잠든 산에 올라 추모의 돌탑 하나 더 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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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2.02.21 09:38
  • 호수 62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암벽 길을 오르기를 몇차례,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 키우고 있는 암벽 정상엔 '그곳에 오르고 싶은 山 돗대산 381m'라는 팻말이 매달려 있다. 사진=한명수 abighead@hanmail.net

중국 민항기 사고가 난 지 10년이 다되어간다. 2002년 4월 돛대산 정상부 밑 237m봉에 추락했으니, 한 달여 뒤면 벌써 10주기가 되는 것이다. 해서 이번 산행은 허망하게 산화한 129명의 사고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기리는 위령돌탑에 추모의 마음 하나 얹기 위해 돛대산을 오르기로 한다.

안동 한일여자고등학교 입구를 들머리로 하여 안동체육공원~천불사 약수터~평상 쉼터~돛대산 정상~237m봉 위령돌탑~산재고개 갈림길 이정표~김해경전철 지내동역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버스를 타고 한일여고 정류소에서 내린다. 한일여고는 안동공단의 산 증인인 한일합섬에서, 직원들과 직원 자녀들의 '교육복지'를 위해 설립한 학교. 뜻이 아름다운 이 학교를 산행 들머리로 삼아 기껍다.

시작부터 가파른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오른다. 봄날 같은 언덕배기에는 자장면집도 보이고, 유치원도 보인다. 봄이 시작된다는 우수(雨水) 앞이라, 밭에서 고랑을 매는 사람도 몇몇 눈에 띈다. 밭둑에는 겨울초와 봄동, 풋마늘 등속이 제 생기를 다해 푸릇푸릇하다.

   
▲ 천불사 대나무울타리를 끼고 산행이 시작된다.

좀 더 오르니 안동체육공원. 어린이놀이터를 지나고 풋살구장, 물놀이장을 지나쳐 오르는데, 갑자기 "와~" 하는 함성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알고 보니 대운동장에서 '대한축구협회장배 전국고교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 오현고와 부산 개성고 경기가 한창이다. 많은 관중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오현고가 한 골을 추가해 3-0으로 앞서고 있는 중이다.

얼마간 그들의 경쾌하고 패기 있는 경기를 지켜보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등산로 초입. 산화경방원 아저씨가 "어서 오이소"라며 인사를 건넨다. 인상이 후덕하다. 천불사 대나무 울타리를 끼고 임도가 시작된다.
 
온화한 봄볕이 더없이 따사롭다. 조금 걷다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대지에 봄기운이 아롱아롱하다. 산을 오르는 이의 마음도 아롱아롱해진다. 하지만 그 고운 봄기운이 상공의 찬 공기와 만나 시야가 흐려지지나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돛대산에 오르는 김에 멀리 김해공항 활주로라도 봐야 할 것 같아서다. 봄 소풍 가듯 설렁설렁 오르다보니 길가에 자그마한 바위 하나 서 있다. 흘낏 쳐다보다가 깜짝 놀란다. 바위 윗부분이 어디서 많이 본 형상이다. 친근한 얼굴의 미륵불이다. 경주 남산 어디에선가 보았던, 미소가 그윽한 마애불의 얼굴. 처처불심(處處佛心)이라고 '뒹구는 돌멩이 안에도 부처의 마음이 있다'는 말이 불현듯이 다가온다. 길가에 뒹굴 듯 자리한 바위덩이에 부처의 얼굴이라니, 자연의 조화 속은 오묘하기 이를 데가 없다.

비 온 후라 곳곳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얼었던 땅이 녹아 대지의 푸른 기운은 더욱 선명하다. 온 땅의 물관에서 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천불사 약수터에도 약수가 샘솟 듯 철철 흘러넘친다. 물맛을 보니 뒷맛이 쌉싸래하다. 겨울을 뚫고 솟아난 약수의 맛이 이런 것인가 싶다.

   
▲ 평상 쉼터 부근에 있는 판석.

약수터 옆으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돛대산의 수문장처럼 버티고 섰다. 따뜻한 볕에 녹은 흙길은 푸슬푸슬 밟는 느낌이 좋다. 푹신한 산길을 여유롭게 오른다. 왼편으로 신어산 방향의 379m봉 전망바위가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돛대산 능선이 선암마을 쪽으로 흐르고 있다. 숨이 찰 무렵 신어산~돛대산 능선 갈림길에 당도한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곧 바로 평상 쉼터. 숨을 잠시 고르고 평상에서 왔던 길을 조망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한대로 원경의 전망이 흐리다. 서낙동강 강물만 어슴푸레 반짝이며 펼쳐질 뿐이다.
 
다시 돛대산으로 향한다. 길 앞에 누가 세웠는지 돌탑 하나 서있고, 돌탑 앞 판석에는 '天下第一景觀臺 仙遊峰(천하제일경관대 선유봉)'이라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판석 뒤 오솔길로 해서 정상으로 향한다.
 
솔가리가 발밑에서 부드럽게 밟힌다. 뾰족하게 침을 세우던 솔잎도 이렇게 모로 누우면 한없이 부드럽다. 오르는 길섶으로는 진달래나무와 참나무들이 사이좋게 열을 지어 산을 오른다. 험하지 않은 능선이 꼬불꼬불 계속 이어진다.
 
곳곳의 소나무 발치와 바윗돌에 물오른 이끼가 되살아나고 있다. 초록의 기운이 드세다. 부드럽고 윤기 흐르는 푸른 벨벳을 두른 것 같다. 곧 있을 봄의 생명력을 예감한다.
 
서서히 김해평야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서낙동강의 유장한 흐름과 중사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그때쯤 능선 중간 중간에 작은 바위암벽들이 길을 막고 선다.
 
   
▲ 돛대산 정상 부근 암벽에서 발견한 석이버섯.

바위를 잡고 한참을 오르자니 바위에 가시랭이 같은 것들이 집힌다. 오호, 바위에서 채취되는 석이버섯이다. 아주 귀한 버섯이 암벽 끄트머리에 흰 꽃처럼 피었다. 돌이 피워낸 꽃, 돌 꽃이다. 그래 돌 꽃 속에서도 봄은 피어난다. 차가운 돌 속에서도 와야 할 것들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암벽 길을 오르기를 몇 차례,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 키우고 있는 암벽정상에 선다. 소나무 가지에는 '그곳에 오르고 싶은 山 돗대산 381m'라는 정상팻말이 매달려 있다. 그 뒤로 까치산과 백두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장척산 줄기와 생명고개, 멀리 신어산 동봉으로 흐르는 능선이 시원스레 뻗어 있다.
 
정상팻말에서 조금 더 가니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서니 김해 시가지 쪽이 조망된다. 분성산 밑으로 어방동, 활천동이 보이고 멀리 임호산과 함박산의 능선도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우리가 내려갈 능선도 봄볕에 노곤하게 드러누웠다.
 
길을 더 가니 또 고만한 바위암벽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정상석이 서 있다. 말하자면 이곳이 돛대산 정상이라는 이야긴데, '돛대산 380m'라고 명시해 놓았다. 아까 정상팻말의 높이보다 1m가 낮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정상석이 있는 곳이 낮아 보인다.
 
   
 
여하튼 이곳에서는 조금씩 끊기긴 했지만 멀리 부산의 금정산과 백양산 능선도 어렴풋이 보이고, 낙동강과 대동벌의 비닐하우스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김해공항 쪽은 뿌옇게 시야가 흐려 보이지가 않는다. 돛대산에서 조망하는 김해공항 활주로 모습은 아쉽게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하산을 한다. 올라왔던 바위암벽 길을 되돌아 내린다. 암벽이 다하고 능선 오솔길이 시작되면 왼쪽 샛길 주위 나뭇가지에 산악회 안내리본이 알록달록 걸려있다. 그 길로 내려간다. 볕을 안고 내리는 길이다. 안온하다. 길 중간에 나그네보다 앞서 간 이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고라니 발자국이다. 어디서 후닥닥 거리더니 고라니가 놀라 도망치는 소리였나보다. 왔던 길을 뒤돌아보니 돛대산 정상부의 암벽이 눈에 들어온다. 암벽 밑으로는 작은 너덜도 막 굴러 내릴 듯 자리를 지키고 섰다.
 
편안한 길이 계속된다. 호젓하고 참한 길이다. 그것도 잠시, 조금 큰 산길과 만난다. 그 길 따라 사람 마음도 활개치듯 몸짓이 커진다. 그러기를 몇 분. 벤치가 있는 소나무 밑에 다다른다. 노송 밑의 벤치라~, 그것도 볕을 받고 있는…. 그래, 봄볕이 좋아 잠시 쉰다.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까? 참 오랜만의 호사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눈 녹듯 편안해진다.
 
잠시 더 내려가니 뜻밖에 임도가 나타난다. 잠깐의 황망함은 접어두고 봄볕을 품고 내린다. 마사를 밟는 소리가 사각사각 경쾌하다. 한소끔 오르막을 오르니 237m봉이다. 돌탑 하나 보인다. 중국민항기 CA-129편 희생자 위령돌탑이다. 잠시 주위를 정리하고 묵념을 한다. 희생자들의 영면을 빌고 또 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해본다.
 
   
▲ 정상 바로 앞 암벽이 멀리 김해를 굽어보고 있다.

작은 봉우리 하나 가볍게 넘고 내리니 체육시설. 솔밭 사이로 체육기구들이 조화롭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시원하고 길섶에는 딸기덩굴이 벌써 푸른 잎을 틔우고 덩굴 순을 뻗고 있다. 그리고 보니 오리나무 가지 끝에도 푸른 물이 들었다.
 
곧이어 산재고개 사거리 갈림길. 갈림길에서 선암마을 능선 길을 버리고 지내동 방향으로 하산한다. 이러구러 늙은 참나무도 쓰다듬어 보고, 마삭덩굴이 나무를 휘감아 올라가는 것도 쳐다보며 터덜터덜 걷다보니 해경사 지붕이 보인다. 강아지 한 마리 길손을 반기느라 '콩콩' 짖는다.
 
멀리 경전철 지내역이 보인다. 서낙동강이 노송가지 사이로 글썽이고 있다. 밭에는 완두콩이 제 잎 펼치느라 시끄럽고, 몇몇 아낙네 호미질 하다가 봄날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매화나무의 꽃눈이 더욱 커졌다. 곧 꽃잎을 터트릴 기세다. 온 가지 끝에는 푸른 물이 파랗게 오를 대로 올랐다. 그렇게 마지막 겨울 속, 봄은 시나브로 오고 있음인 것이다.


Tip. 중국민항기 추락사고 희생자 위령돌탑
돛대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237m봉에는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희생자 위령돌탑이 한 기 서있다. 사람 키 높이만한데, 돌탑 치고는 꽤 큰 규모이다. 사람들이 당시 추락현장 주위를 오며가며 하나씩 추모의 마음을 얹어 조성한 것이다. 그만큼 사고희생자를 향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컸을 터이다.
 
돌탑 앞에는 다음과 같은 김해의용소방대 대원 명의의 위령비문을 세워 놓았다. "2002년 4월 15일 중국민항기CA-129편 추락사고로 희생된 129명의 혼을 달래며… 김해시 의용소방대 본대 대원일동"
 

   
 
중국민항기 추락사건은 2002년 시계를 확보하지 못한 중국민항기 CA-129편이 김해공항으로 회항하던 중 돛대산에서 추락한 대형 항공기 참사 사건이었다. 한국인 탑승객 137명 중 129명이 사망한 대형 항공기 참사였다.
 
참사 이후 10여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도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때문에 중국민항기 사고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구천을 떠도는 억울한 영혼들의 영면도 미뤄지고 있다. 아직도 마음 한 곳에 고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에게는, 희생자들의 적절한 보상만이 이 참사의 악몽을 마무리짓는 일이 될 것이다.
 
돌탑 주위를 정리한다. 꺾인 나뭇가지도 치우고, 바람에 날려온 비닐봉지도 배낭에 넣는다. 고개 숙여 묵념을 한다. '사랑이 크면 그리움도 큽니다.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부디 편안히 영면하세요. 영면만이 그들을 사랑하는 큰 방법입니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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