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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살아낸 여성에게 바칩니다"강하고 담대한 '심시선'의 10주기
  • 수정 2020.10.27 15:50
  • 게재 2020.10.27 15:50
  • 호수 490
  • 10면
  • 김미동 기자(md@gimhaenews.co.kr)

"엄마 제사를 지내야겠어."
 
심시선의 10주기가 가까워지던 어느 날 첫째 딸 명혜가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남매가 모두 모여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동생들이 깜짝 놀라 "이제 와서?"라고 묻자 명혜가 대답한다.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작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이뤄진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은 작가이면서 미술가, 동시에 험난한 세상을 먼저 살아간 어른이었다. 그녀는 세계의 폭력성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시선으로부터,'는 시선의 생전 인터뷰와 그녀가, 혹은 그녀에게 남긴 글이 현재 시점과 맞물려 교차 서술된다. 마티아스 마우어, 2번의 결혼, 그녀가 바라보던 예술, 그녀가 주장하던 삶의 방식 등이 남은 자들의 이야기 앞에 놓인다. 그야말로 '심시선의 말'이다. 독자들은 그것을 통해 심시선이라는 인물을 가늠한다.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시선은 늘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과격한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매번 놀라게 했지만,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섬세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 하겠냐, 제사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고 말하며 강경하게 제사 문화를 반대했던 시선. 그런 시선의 의견을 존중해왔던 가족들은 심시선의 10주기를 맞아 특별한 제사를 준비한다.
 

▲ ‘시선으로부터,’의 저자인 작가 정세랑. 사진제공=문학동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그때까지 각자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과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은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하와이 호놀룰루 미술관에는 심시선의 누드화 '마이 스몰 퍼키 하와이안 티츠'가 있다. 마티아스 마우어가 그린 것이다. 마티아스 마우어는 심시선을 독일로 데려간 남자이자, 시선을 '문제적 여자'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전성기에 자살한 후 끝없이 애도 받아온 비운의 예술가다. 사람들은 마우어와 시선을 일생일대의 사랑이었던 것처럼 말한다.
 
"나는 경험 부족에서 비롯한 잘못된 판단으로, 유명하고 힘있는 남자의 손에 떨어진 여러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를 파멸시키지 않았다. 그는 나를 사랑해서 죽은 게 아니다."
 
시선의 가족들은 '마이 스몰 퍼키 하와이안 티츠' 앞으로 모인다. 그들은 잠시 작품을 감상한 후 '시선의 어떤 본질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그림에서 돌아선다. '애도할 사람은 애도하고 화를 낼 사람은 단호히 화를 내고 돌아서는 것이 괜찮은 마무리'라고 생각하면서.
 
'제사 비슷한 것'을 끝낸 시선의 가족들은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비이성적이고 말도 안 되게 폭력적이다. 그러나 괜찮다. 그들은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시선으로부터,'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자그마치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작품이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해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의 면모가 돋보인다.
 
정세랑의 소설은 독자의 마음보다 몇 발자국씩 앞선다. 한 걸음을 생각하면 다섯 걸음을, 열 번을 생각하면 스무 번을 앞서나가는 듯하다.
 
그녀의 소설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다. 여러 길을 펼쳐놓은 듯 보이지만, 문고리를 열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내면의 가장 확실하고 강렬한 세계를 열게 될 것이다.
  
김해뉴스 김미동 기자 m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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