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우 김해뉴스 독자
이미우 김해뉴스 독자

어느덧 다시 봄은 왔다. 코로나로 인해 황량하기만 하던 거리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새싹이 돋아나며 거리의 활기도 함께 솟아나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누군가를 만나 재잘재잘 사소한 것까지 떠들고 싶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는 것 조차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럴 것이다. 나 또한 내 삶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의 내 삶은, 마치 여행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나'를 찾는 여행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늘, 어떤 대명사들로 소비되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막내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자식으로 불렸다.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군가의 아내였으며,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게 됐다. 살아가면서 이름을 가지곤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진 못한 것이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 하고 살아왔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것이 뭐가 나쁘나며 스스로 만족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문득, 나도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인사를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엄마'였다. 그렇게 내 이름을 찾지 못한 채 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중에 나 역시 가끔은, 내가 누군지 잊어왔던 것도 같다.
 
아들이 지방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주저없이 아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연고 하나 없는 곳에 아들 하나만을 보고 내려온 것이다. 남은 생 역시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도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갑작스레 코로나가 찾아왔다. 밖으로 쉽게 나갈 수도,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할 수도 없어졌다. 아무도 없는 곳에 멍하게 누워 무료하게 혼자 있으니 적적함이 몰려왔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혼자였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고, 돌아보면 괜찮은 삶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색이 많아지는 날이 잦아졌다.
 
나는 이대로 나 자신을 찾지 못한 채로 타인에 의해 규정된 삶을 살아가도 괜찮을까?
 
내 나이 이제 50대 중반. 지금에서야 내 이름을 찾고 싶어졌다. 학원을 다니며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고, 어렸을 적부터 다니고 싶었던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다. 이러한 과정이 꼭 꽃피는 것처럼 아름답고 바라보자면 즐거운 풍경처럼 느껴진다. 마스크는 답답하지만,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사람들과 함께 봉사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겁다.
 
삶의 반이 지나서야 내 인생에도 또 하나의 꽃이 핀 것이다. 나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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