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신어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양산·물금, 오봉산의 파노라마 전경. 오른편에 있는 부산 금정산 자락과 고당봉은 짙은 안개에 가려 어슴푸레 형태만 언뜻 비친다. 사진/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낙남정맥의 시작점 동신어산(459.6m). 낙동강을 시작으로 산이 일어나, 멀리 지리산까지 남해안을 달려가는 낙남정맥의 산줄기. 그 출발점이 김해 상동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만으로도 동신어산 산행은 낙동강을 근거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뜻있는 산행이 된다.

이번 산행은 매리공단 입구 현대레미콘 옆 산길 배수로를 들머리로 하여 267m봉, 동신어산 능선, 동신어산 정상에서 다시 되돌아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다. 이 코스는 낙동강의 여유로운 흐름과 영남알프스의 선명한 마루금, 김해의 여러 산줄기가 첩첩이 조망되는, 빼어난 풍광이 가히 일품이다.
 
소감마을 가는 길로 들다보면 길 오른쪽 매리공단휴게소가 보인다. 휴게소 주인부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터에 주차를 한 후 현대레미콘 쪽으로 향한다. 쉴 새 없이 레미콘 차량이 드나들고 공장의 기계음은 쨍쨍하다. 레미콘 공장 왼쪽으로 대구부산고속도로 소감천교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 밑으로 배수로가 있는데, 그 배수로가 동신어산 들머리가 되겠다. 원래 소감마을 입구 버스정류소 앞이 동신어산 들머리이지만 대구부산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180m봉과 동신어산 줄기가 단절이 되어버렸다.
 

▲ 들머리에서 본 대구부산고속도로 소감천 다리. 동신어산과 180m봉을 갈라놓았다.
산맥의 출발지라서 그런지 동신어산은 들머리부터 계속되는 급한 오름세다. 배수로 윗부분에서 오른쪽으로 동신어산 산길이 나 있고, 나뭇가지에는 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여러 산악회의 리본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 대구부산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뒤로 낙동강, 그 여유로운 물길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강 너머로 양산의 오봉산이 보이고, 멀리 부산 금정산 고당봉이 어슴푸레하다.
 
본격적으로 숲으로 든다. 언제나처럼 숲은 나그네에게 호젓한 산길 하나 내어준다. 그리고 새 몇 마리 풀어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게 한다. 그래서 그 길 따라 가면 그들의 속살을 속속들이 보게 되고, 점점 그들을 닮아가게 된다.
 
청미래덩굴 넓은 잎은 두 팔 활짝 벌려 사람에게 안기려 하고, 고사리 군락은 은근슬쩍 나무숲 그늘에서 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수줍게 길마중하는 둥글래 이파리까지, 모두가 연두색 풋풋한 냄새로 싱그럽고도 상쾌하다.
 
산길은 가파르고 꼬불꼬불하다. 유독 참나무 낙엽들이 많이 쌓여있는 것도 특이하다. 때문에 부엽토 밟는 느낌이 아주 좋다. 푹신푹신 꼬불꼬불 기분 좋게 길을 오른다. 잠깐씩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 몇 점 숲에 내려앉고, 낙동강 물빛 또한 언뜻언뜻 나그네의 길안내를 자청하듯 따라온다.
 
▲ 267m봉 전망바위. 낙동강이 드넓게 다가오고 강으로 발 뻗은 동신어산 줄기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깐의 편한 길 뒤로 다시 오르막, 여전히 낙엽은 발목을 감는다. 한참을 숨차게 올라 267m봉 첫 번째 전망바위에 선다. 낙동강이 드넓게 다가오고 낙동강으로 발을 뻗은 동신어산 줄기도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물금 시가지와 양산신도시도 어렴풋이 조망된다. 1932년의 양산 농민 봉기 사건의 진원지인 메깃들도 보인다. 유독 메기가 많이 서식해서 붙여진 메깃들은, 비 냄새를 맡은 메기가 입만 뻐끔거려도 물에 잠긴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전해진다.
 
산줄기 중간쯤에는 제법 큰 너덜도 보인다. 267m봉과 동신어산을 잇는 능선이 여인의 허리처럼 날렵하다. 바위 밑으로 상수리나무가 도토리 몇 개 송송 맺어놓았다. 온 산색이 싱그러워 나그네 가슴마저 푸르디 푸르다.
 
계속되는 오르막. 경사가 급격하게 가팔라진다. 그래도 암석들이 줄지어 같이 오르니 그나마 낫다. 다시 전망바위. 매리공단과 대구부산고속도로 상동터널이 손에 잡힐 듯하다. 그 뒤로 멀리 산줄기들이 조망되는데, 금동산, 석룡산, 무척산 등이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낙동강 너머 영남알프스의 여러 능선들도 하늘과 접하여 진중한 몸짓들이다.
 
267m봉 정상부 초입. 바위들이 산길 계단을 만들고 자잘한 돌들은 발길에 차인다. 급하게 길을 오르다 잠시 전망쉼터에서 뒤돌아보니, 낙동강 맞은 편 오봉산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 '수라도'의 배경인 양산 화제마을 앞 '화제들'이 보이고 오봉산 기슭으로 돌아드는 '황산배리길'도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진 모습이 구절양장이다. 낙동강 위로 자전거 길을 조성한 모습도 보인다.
 
길은 계속 치받는 오름세다. 숨이 턱에 닿을 때쯤 267m봉 정상에 닿는다. 때마침 뻐꾹새가 운다.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새소리다. 시원한 바람이 계곡으로부터 불어온다. 낙동강은 더욱 넓게 펼쳐져 유장하고, 물금의 증산은 떡시루 얹은 듯 동그마니 앉아 있다. 정상 부근의 다복솔 한 그루, 오는 바람 가는 바람 다 맞고 앉아, 지나온 세상사 일을 훤히 다 꿰는 듯하다.
 
길을 잠시 내린다.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바위마다 이끼가 파랗게 자라고 있다. 곧이어 동신어산 능선으로 오른다. 이 길도 계속되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암벽을 돌아가기도 하고, 타고 넘기도 한다. 자갈돌이 미끄러지며 발아래로 구른다.
 
능선으로 오르다 보니 산수화를 닮은 바위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일필휘지의 진경산수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깎아지른 낭떠러지와 기암괴석의 봉우리들, 그 사이사이로 깊은 협곡까지 있다. 고사리 등속이 낙랑장송처럼 곳곳에 자라고 있는데, 마치 '몽유도원도'의 한 부분을 재현해 놓은 것 같다.
 
▲ 몹시 험한 비탈이 지속되는 동신어산 산행길. 급경사와 암석, 참나무 낙엽구간 등을 지나다 보면 산은 어느새 사위를 넓고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바위를 내어준다.
잠시 참나무 낙엽구간. 작년 늦가을의 낙엽이 여태 발목 깊이까지 쌓여 있다. 낙엽색도 윤기가 있어 늦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서벅서벅 사박사박 계속해서 낙엽 밟는 소리와 동행한다.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가쁜 숨이 넘어갈 즈음 넓은 터가 보이고, 허리 휘어진 소나무 두어 그루 힘들게 버티고 섰다. 계속 능선을 따르니 어느새 환하게 사방의 조망이 트인다. 시원한 동신어산 능선의 시작점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장쾌한 산 아래의 전망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파노라마 사진 한 장이 눈에 새겨지듯 다가오는 것이다.
 
낙동강을 따라 천태산, 토곡산, 오봉산, 금정산이 이어서 길을 따르고, 화제들과 물금들, 양산신도시와 화명신도시가 일시에 펼쳐진다. 낙동강 안쪽으로 동신어산 줄기와 절벽이 아찔하고, 각성산과 영산낙동강교, 대동들 비닐하우스가 햇빛에 반짝인다.
 
능선 길 쪽으로는 뾰족하게 솟은 동신어산과 새부리봉이 겹쳐서 보인다. 그 뒤로는 백두산과 이어지는 481m봉과 까치산으로 이어지는 522m봉, 신어산 줄기가 길게 뻗어 있다. '육첩, 칠첩' 첩첩으로 겹쳐진 능선들이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늘어서 있는 것이다. 그윽하게 이어진 산그리메가 마치 한 폭의 수묵담채를 보는 듯하다.
 
바위 능선을 타고 동신어산으로 향한다. 바위 능선 양쪽으로는 천 길 낭떠러지다. 그 앞에 서니 오금이 저린다. 기기묘묘한 바위들 대부분이 수석을 전시해 놓은 것처럼 빼어나다. '자연'이 '자연을 닮은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절벽 아래로는 참나무 군락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참나무 군락 위로 유월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산이 지겹지 않게 다양한 길을 내어주며 올망졸망하다. 숲으로 들었다가 잠시 나와서 호쾌한 전망을 보여주고, 낙엽 길과 바위 길을 번갈아 오르내리면서 쏠쏠한 산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계속해서 오솔길을 걷는다. 다복솔이 앞서가며 길을 안내해주고, 산길은 동신어산의 풍경을 숨겼다가 내어놓았다가 한다. 곧이어 시야가 트이며 동신어산 정상에 도착한다.
 
▲ 동신어산 정상석 아래로 멀리 낙동강과 물금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서 있고, 그 옆 바위 위에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정상석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 동신어산 459.6m'라고 새겨져 있다. 동신어산 줄기가 확연하게 이어져 낙동강 쪽으로 흐르고, 물금들 전체가 한눈에 확 다가온다.
 
잠시 쉬며 낙남정맥으로 가는 길을 바라본다. 길 앞으로 새부리봉이 보인다. 그 길 따라 낙남정맥 마루금은 계속해서 남해바다를 끼고 지리산으로 향할 것이다. 그래, 잘 가라, 낙남정맥아! 푸른 물길과 함께 흘러 흘러서 지리산 영봉과 함께 하여라.
 
한참을 아쉬운 듯 정상에 머무르다 하산을 준비한다. 언제나 내리는 길은 여유롭고 편안하다. 길가 돌멩이도 도란도란 말을 걸어오고, 나뭇가지에 달린 연두색 이파리도 살랑살랑 몸을 기대어 온다. 부드러운 흙길도 좋고 탄탄한 바윗길도 좋다. 숲길을 오르내리다가 간혹 열리는 산 아래 전망에 시원하게 가슴 터지기도 하고, 낙동강을 따르다가 신어산 줄기를 따르기도 한다. 새소리 반가이 듣다가 햇빛 좋은 전망바위에 앉아 바람소리도 듣는다. 절벽 위로 황조롱이 한 쌍 크게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다. 나그네도 그렇게 힘찬 비상을 꿈꾸며 하늘로 떠도는 것이다. 그렇게 산과 더불어 산이 되는 것이다.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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