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한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형곤
김해한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형곤

여러분은 '중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흔히들 떠올리는 모습은 헝클어진 머리와 붉은 얼굴로 술병과 함께 누워있는 노숙자의 모습이나, 음주운전과 가정폭력 같은 문제행동일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중독에 걸린 사람을 술이나 도박으로 인생을 망치는 방탕한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도, 보호자도, 혹은 치료자조차 중독 환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선입견은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됩니다. 중독에 대한 왜곡된 관점은 '부정(denial)'이라는 방어를 강화시키는데, 부정이란 나 또는 내 가족이 이런 몹쓸 상태에 빠졌을 리 없다는 굳건한 믿음을 말합니다. 
 
중독의 치료과정은 곧 중독이라는 질병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 즉 부정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점은 중독은 당뇨, 고혈압, 각종 암과 마찬가지로 의학적 질병이라는 사실입니다. 중독이라는 상태는 뇌의 변연계와 전전두엽의 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뇌질환'입니다. 간과하기 쉬운 또 다른 사실은 중독환자 가운데 중독에 빠지기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당뇨, 고혈압, 암에 걸리기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중독이라는 불운은 예기치 않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중독으로 이끄는 요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각종 트라우마입니다. 
 
불의의 사고, 자연재해와 산업재해, 일상 생활에서의 충격적인 경험들은 트라우마가 됩니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에 흔적을 남깁니다. 해소되지 않은 트라우마는 우리를 잠식하고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괴로운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시나요? 대부분은 가까운 사람에게 달려가 위로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집 밖에서 다치고 돌아오면 엄마 품에 안겨서 울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상처받은 심신을 회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안전한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술, 도박, 마약, 폭식, 자해, 쇼핑과 같은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대부분의 대상들은, 즉각적으로 괴로움을 해소해 주고 기분을 전환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괴로움을 대처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반복한다면,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많은 중독환자들이 삶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방임과 학대와 같은 가정에서 시작되는 발달 과정의 트라우마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중독자 자녀(COA·Children Of Addicts)들이 그렇습니다. 중독가정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트라우마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중독 환자들이 가족력을 가지고 있고, 중독가정에서 성장하며 정서적, 신체적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과거력이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안전한 대상이 되어주어야 할 부모가 그들에게는 트라우마를 주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술을 마시는 겁니다. 연구에 따라 결과가 다양하나 물질남용 환자들 가운데 12~34%(여성의 경우 30~59%)에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를 동반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사실 중독은 고통을 대처하는 한 방식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처법이 더 큰 고통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더 무서운 점은 이렇게 중독이 된 환자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마주친다면 아마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진화과정에서 무리를 이루며 생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획득한 '공감'이라는 능력이 있습니다. 공감의 눈으로 상처받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입니다. 이 관점은 우리 자신의 생존에도 유리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중독의 달콤한 유혹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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