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만 모래조각가가 해운대모래축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선주 기자
김길만 모래조각가가 해운대모래축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선주 기자

 

양산미술협회 가입 8년째
해운대·양산서 활동 활발
명동공원에 작업장 만들어
도심 속 모래조각 전시도



지난달 28일 햇볕이 내리쬐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에서 수많은 모래조각들이 누군가의 손으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무젓가락으로 모래조각 작품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모래 조각가' 김길만 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는 사람 몸집의 수십 배가 되는 모래 더미가 놀이터인 마냥 자유자재로 오르내렸다. 씻겨져 내려가는 모래와 흙 사이로 보이는 투박한 손을 보니 모래와 함께한 세월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김 작가는 1987년부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어렸을 때 우연히 친구와 바닷가에 왔다가 모래를 만져봤는데 그 촉감이 정말 좋았다. 아직도 그 촉감을 잊지 못한다"며 "형편이 너무 어려워 미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모래가 돈이 안 드는 미술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래조각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처음 만든 작품이 '인어'였다. 이후 매주 주말마다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혼자 조각 공법을 연습했다. 그에겐 백사장이 집이요, 안식처 그 자체였다. 비가 오면 모래 쌓기가 힘들 것인데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수십 년. 그의 모래조각 작품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국내 활동하는 모래조각가는 몇 명되지 않는다. 전 세계로 영역을 확장해도 김 작가는 여느 모래조각가와는 다른 그만의 특별함이 있다. 바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나무젓가락이 비결이다. 그는 모래조각 작품을 나무젓가락으로 만든다.
 
김 작가는 "다양한 도구로 모래조각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있지만 나무젓가락으로 모래조각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제가 유일할 것"이라며 "나무젓가락이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는 그 쓰임새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2000년 미국 시카고 몬트로스 해변에서 모래조각 작품을 선보였다. <시카고 선 타임스> 1면에 '한국에서 온 모래조각가'로 소개됐으며, 당시 작품인 '새 천년을 맞이하는 용' 사진도 실렸다. 김 작가는 "내가 서봤던 무대 중 가장 큰 곳이 아닐까 싶다"며 "아직까지 신문을 집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각가로서 활동한 지는 30년이 넘었지만, 양산미술협회에 가입한 지는 올해로 8년째다. 제조업에서 일하며 주말마다 작품 활동을 해 온 그는 2년 전 회사를 정년퇴임하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야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작품 활동을 쉬는 날이면 도서관을 찾아 미술책을 보면서 상상력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그는 2000년에 양산으로 이사왔다. 이곳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굳이 부산 해운대까지 가서 작품 활동을 해야 하냐고 했다. '모래만 있으면 양산에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모래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 지인이 지금의 김일권 양산시장이다. 김 시장은 최근 김 작가와의 약속을 지켰다. 김 작가는 모래사장을 찾지 않고도 도심 속에서 모래조각을 전시하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에 양산에서는 처음으로 모래조각 작품을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봄, 여름, 가을 테마로 매번 작품이 바뀐다. 이번 봄 테마는 양산문화예술회관 광장, 신도시 물금워터파크, 양산역 환승센터 등 3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는 해운대모래축제 작품이 완성되면 다음달 10일부터 전시되는 여름 테마 모래조각을 위해 양산으로 돌아가 작품 스케치를 해나갈 계획이다.
 
김 작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해외에서 활동을 더 해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현지에서 볼 수 없어서 아쉽다"며 "앞으로 국경이 있는 곳에서 모래조각을 만들어 보는 등 작가로서 꿈과 기대를 품으며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이선주 기자 sunju@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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