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거리의 벽화를 배경으로 한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모습. 이중섭 거리는 서귀포시가 가진 다양한 '미래문화자산' 중 하나다. 이현동 기자
이중섭 거리의 벽화를 배경으로 한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모습. 이중섭 거리는 서귀포시가 가진 다양한 '미래문화자산' 중 하나다. 이현동 기자

 

 '문화도시조성사업'은 지역의 특색 있는 예술·문화자원을 발굴·활용해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발전을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김해시는 두 번의 도전 끝에 지난 1월 제2차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됐다. 
슬로건은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역사문화도시 김해'다. 경상남도 최초이자 '역사전통중심형' 도시로서도 최초다. 
 김해시가 한 번 고배를 마시고 재도전을 준비할 동안 1차 법정문화도시가 된 7곳(서귀포·부천·원주·청주·천안·포항·부산 영도구)은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1년 간 준수한 성과를 냈다. 
 이에 <김해뉴스>는 김해보다 앞서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된 도시들의 성과를 확인하고 시사점을 찾기 위해 앞으로 3회에 걸쳐 '문화도시 김해, 청사진을 그리다' 기획을 게재한다. 
문화도시 선정 이후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와 강원도 원주시가 그 대상이다. <편집자주>



 지역만의 라이프스타일 담아
 문체부 평가서 우수 도시 선정

 지역 대표 ‘구억리 옹기마을’
 역사·제작과정 담은 책자 발간
 호근동 생태관광 탐방로 조성

 소라의성, 이중섭거리 등 자리
 책방연대는 동네책방  한계 극복

 작년부터 노지문화 발굴사업 등
 시민 참여 197개  프로그램 추진
“문화도시 비전 주체는 시민돼야”



인구 19만여 명, 872㎢ 면적의 서귀포시는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문화 서귀포'를 문화도시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여기서 '노지'(露地)란 '하늘을 지붕과 벽으로 가리지 않은 땅'을 뜻하며 '노지문화'란 '자연환경에서 빚어낸 삶의 문화'를 일컫는다. 이는 곧 '서귀포만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단어이면서도 자연에서 빚어진 삶의 문화라는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노지문화라는 새로운 용어가 사용됐다.
 
 
■105개 마을에서 105가지 노지문화로
 
서귀포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핵심주체는 시민이다. 그래서 서귀포 105개 마을에 숨쉬는 시민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각기 다른 105개 노지문화가 된다.
 
서귀포의 마을들은 지리적으로 붙어있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전혀 다른 세계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 있는 표선리, 숲속 오솔길로 유명한 하천리, 양지바른 광활한 농경지가 있는 무릉1리, 너르고 평평해 겨울감자 농사가 잘되는 상모3리 등 105개 마을은 저마다 특이한 수식어를 달고 있다.

 

서귀포시 구억리마을 모습. 마을 특산품인 옹기로 담벼락 곳곳이 장식돼 있다.
서귀포시 구억리마을 모습. 마을 특산품인 옹기로 담벼락 곳곳이 장식돼 있다.

 

이들 중 구억리는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제주를 대표하는 옹기마을로 재탄생했다. 그동안 구억리는 지역 전통 굴(가마를 뜻하는 제주방언) 중 가장 오래된 '노랑굴', '검은굴'이 남아있는 옹기 생산지 정도로만 생각됐지만 문화도시 사업은 구억리 옹기를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 밖으로 끌어 냈다. 구억리마을회는 지난해 12월 '노랑굴 검은굴 구억리 그릇이야기' 책자를 발간했다. 구억리 마을에 남아있는 옹기들의 모습과 구억리 마을의 역사, 풍경, 옹기 제작과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구억리마을 강동완 전 이장은 "옹기는 제주도에서도 구억리마을만이 갖고 있는 특산품이자 문화다. 이를 마을주민 개개인의 스토리와 연계해 글과 사진으로 정리하고 책으로 엮은 곳은 구억리마을이 최초"라며 "다른 마을에도 '우리도 준비만 잘 하면 콘텐츠 사업화가 가능하겠구나'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책을 보고 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도 생겼다. 앞으로 이런 작업들은 서귀포시에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억리마을에 위치한 옹기문화전수관 내부 작업실 모습.
구억리마을에 위치한 옹기문화전수관 내부 작업실 모습.

 

 
■우리들의 찬란한 오늘이 문화
 
서귀포 105가지 노지문화는 오래된 역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시민들이 사는 오늘, 마을주민들이 걷고 있는 길, 생활방식과 그들의 미래를 바꿔줄 교육까지 노지문화는 다양하다. 
 
호근동 마을 안길 여행 프로젝트도 그렇다. 이 마을은 2019년 환경부가 주관한 생태관광마을 사업에 선정된 바 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 노지문화를 생태관광에 접목시키는 시도를 했다. 이렇게 탄생된 것이 '노지문화탐험대'다. 탐험대는 마을 안길을 활용해 노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생태관광 탐방로를 만들었다. 탐험대는 탐방로를 통해 마을사람들에겐 잊혀진 안길의 기억을 끄집어내 추억을 되살리게 하고 관광객들에겐 오랜 돌담길이 지닌 매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독립예술가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서귀포의 현재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문화도시 사업에 참여했다. 노지문화 생태예술페스타를 위한 예술가 리서치에 참여하고 있는 김누리 작가는 서귀포여자중학교를 소재로 영상작업과 프로젝트 기획을 진행 중이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서귀포여자중학교가 어떤 공간이었는지, 이곳에서 일상을 보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공간과 그 속의 삶이 주고받은 영향과 과정을 실험한다. 
 
다른 작가는 난개발로 사라지는 지역 공간을, 또 다른 작가는 해녀 공동체의 생활 문화사를 중심으로 노지문화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제의 유산, 내일의 보물…미래문화자산
 
문화도시 관점에서 서귀포시의 강점은 '미래문화자산'이다. 미래문화자산이란 문화재·기념물·유산 등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미래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충분한 유·무형의 문화자산을 뜻한다. 공간·자연·역사 뿐만 아니라 기술·음식·개인소장품·서적 등 고유한 자산들도 포함된다. 대표적으로는 유형자산인 소라의 성, 이중섭 거리(이중섭 폭낭)와 무형자산인 서귀포책방연대 등이 있다. 
 

소라의 성 전경.
소라의 성 전경.

소라의 성은 누가 어떤 용도로 지어졌는지 등의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다소 미스터리(?)한 2층 높이 건물이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원 숙소나 전망대로 지었다는 설이 있지만 검증된 바는 없으며 현재는 시민 북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누구나 무료로 입장해 서귀포 바다를 보며 책을 읽을 수 있으며 가끔 시민참여형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미지의 공간이 문화휴식공간으로 재탄생한 사례다. 
 
이중섭 거리에서는 다양한 기념품 가게나 이색 카페 등은 물론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생가, 이중섭 폭낭 등의 문화유산들을 만나볼 수 있다. 화가 이중섭이 약 1년간 머물렀던 생가가 이곳에 보존돼 있으며 이중섭 미술관에는 이중섭의 작품 원화와 관련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서귀포 책방연대는 물리적 공간을 거점으로 운영해야만 하는 동네책방의 한계를 극복하고 책방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기획된 단체다. 어떤바람, 인터뷰, 돈키호테북스 등 9개 책방이 뜻을 모아 3회에 걸쳐 '문화도시 책방데이' 행사를 열었다. 
 
어떤바람 김세희 대표는 "서귀포는 책방 간 거리가 멀고 문화공간도 많지 않다. 어떤바람 역시 이 지역 유일한 동네책방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며 "작은 책방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면 지역주민들에게 충분한 문화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책방데이 행사를 통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귀포 책방연대 참여책방 중 1곳인 '어떤바람'.
서귀포 책방연대 참여책방 중 1곳인 '어떤바람'.

 

 
■시민참여 구심점,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
 
서귀포시의 '노지문화'는 전국 모범사례로도 인정받았다. 문체부가 전국 7개 1차 법정문화도시를 대상으로 1년차 성과평가를 진행한 결과 서귀포시는 '우수' 도시로 선정됐다. 마을문화 콘텐츠화사업 노지문화탐험대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문화도시 책방데이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열악한 문화·물리적 환경을 극복하고 문화도시의 방향성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지난해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는 5개 분야 총 15개 추진과제, 33개 세부사업, 197개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 2만 3500명에 달하는 시민이 참여했으며 178명의 예술가, 87명의 시민활동가, 76명의 기획자도 함께 했다. 
 
지난해부터 센터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도시 서귀포 프로젝트'는 크게 △생태문화씨앗, △창의문화농부, △미래문화텃밭, △서귀포다운 문화도시 브랜드, △시민주도 문화도시기반 구축 다섯 가지 분야로 나뉜다. 
 
'생태문화씨앗' 분야는 노지문화를 발굴하고 콘텐츠화 해 전체적인 생태계를 만드는 작업이다. '창의문화농부'는 서귀포에 없는 대학교의 산학 연계 역할을 맡는 사업이다. 여기서 양성된 전문 인력들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까지 하는데 이렇게 나온 결과물들이 유통·판매되도록 거점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미래문화텃밭'이다. 
 
'서귀포다운 문화도시 브랜드'는 다른 지역에서도 서귀포하면 떠올릴 수 있는 서귀포만의 문화브랜드를 구축하는 작업으로 이 모든 사업 과정에 적용되는 기본 원칙이 '시민주도 문화도시기반 구축'이다.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 이광준 센터장은 "문화도시 사업은 일정한 기준을 꾸준히 충족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기간 내에 사업을 완료한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여기서 말하는 기준은 각 도시가 스스로 세운 비전을 지속적으로 실행해가고 있는지 여부다. 행정은 주기적으로 인력이 교체되기 때문에 이 비전을 실현할 주체는 필연적으로 시민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이현동 기자 hdlee@gimhaenews.co.kr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 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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